금천(禁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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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전면에 외부와의 경계를 상징적으로 보이기 위해 조성한 개천.

개설

조선시대 궁궐 진입부에 있는 개천은 주술적으로 악귀를 쫓는다는 의미를 강조하여 금천(禁川)이라 했다. 풍수지리적으로 궁궐의 앞쪽에 물이 흘러야 배산임수가 구현되기 때문에 금천은 명당수(明堂水)라고 불리기도 했다. 금천은 궁궐의 정문을 들어서서 처음 나오는 마당을 가로지른다(『태종실록』 11년 9월 5일). 그러므로 공식적인 일로 궁궐에 출입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금천을 건너게 되어 있다. 금천을 건너는 행위는 속세의 사사로운 마음을 버리고 경건한 자세로 궁궐에 들어가는 상징적인 의식이 된다. 즉, 형식적인 궁궐의 경계는 궁궐의 문과 담장에 의해 나뉘지만 의식적으로는 금천을 건너는 행위에 의해 구분된다.

경계로서 금천의 의미는 국왕이 거애(擧哀)하는 장소로 이용된 사실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거애란 국왕이 머리를 풀고 슬피 울어 초상난 것을 알리는 행위로서 발상(發喪)이라고도 한다. 예를 들어 1778년(정조 2)의 거애(『정조실록』 2년 12월 4일), 1846년(헌종 12) 풍은부원군(豐恩府院君)의 상에 거애한 장소가 모두 금천교(禁川橋)이다(『헌종실록』 12년 10월 14일).

금천교는 금천을 건너는 다리를 의미한다. 금천교는 또한 궁궐에서 행사가 있을 때 신하들이 줄을 맞춰 서는 위치를 구별하는 경계로 기능하기도 했다. 경복궁의 경우 영제교(永濟橋)를 중심으로 북쪽에 2품 이상의 관원이 서고, 남쪽에 3품 이하의 관원이 정렬하였다(『세종실록』 23년 1월 11일).

조선시대 궁궐은 모두 금천과 금천교를 갖추고 있었다. 금천교의 이름은 궁궐마다 다르게 지었는데 경복궁의 영제교, 창덕궁의 금천교(錦川橋), 창경궁의 옥천교(玉川橋), 경희궁의 금천교(錦川橋), 경운궁의 금천교(禁川橋)가 이에 해당한다. 금천과 금천교를 통해 성(聖)과 속(俗)을 구별하는 방식은 궁궐뿐만 아니라 왕릉, 사찰 등 중요한 시설에 보편적으로 사용된 건축적 장치였다.

위치 및 용도

금천은 궁궐로 들어갈 때, 정문을 지나 다음 문을 지나기 전에 나타나는 마당을 가로질러 흐르는 개천이다. 금천은 궁궐 밖의 속세와 궁궐 안의 성스러운 공간을 구분 짓는 경계의 의미를 갖는다. 물론 배수로의 용도로도 사용한다.

변천 및 현황

경복궁의 경우를 보면, 금천교는 1411년(태종 11)에 창건되어, 1426년(세종 8) 어명에 의해 집현전(集賢殿)에서 영제교로 이름을 붙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다시 중건했다. 1926년 일제에 의해 수정전(修政殿) 앞뜰로 옮겨졌다가 1974년 이후 다시 근정전(勤政殿) 동쪽으로 옮겨졌고, 2001년 10월에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창덕궁의 금천교는 비단처럼 맑은 개울이라는 의미의 ‘금천(錦川)을 건너는 다리’라는 의미지만 나쁜 기운을 막는 개울이라는 금천(禁川)과 발음이 같기 때문에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창덕궁의 금천교도 1411년(태종 11)에 축조되었다. 이 다리는 임진왜란 때 불타지 않고 현재까지 보존되었다. 20세기 초 일본 학자가 조사한 기록인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에 실려 있는 금천교의 사진을 보면, 지금의 창덕궁 금천교는 일제 시기 동안 조금 북쪽으로 옮겨진 상태이다.

형태

금천은 궁궐마다 지형에 따라 그 위치가 다르나 대체적으로 담장을 따라 흐르고 있다. 금천을 지나는 금천교는 잘 다듬은 돌로 정성스럽게 지어지며 해태, 거북, 하마, 사자 등 악귀를 막는 동물들이 조각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체로 10~13m 남짓한 길이로 지어졌으며, 홍예(虹霓)를 튼 교각 위에 난간을 갖추었다. 또 금천의 주변은 석축(石築)으로 도랑을 막아 꾸미기도 하는데, 이를 어구(御溝)라고 한다.

참고문헌

  • 문화재청, 『조선시대 궁궐용어 해설』, 2009.
  • 신영훈 글·김대벽 사진, 『조선의 궁궐』, 조선일보사, 1999.
  • 이덕수, 『新 궁궐기행: 경복궁·창덕궁·창경궁·경운궁·경희궁·종묘의 건축과 역사읽기』, 대원사, 2004.
  • 이상해, 『궁궐·유교건축』, 솔출판사, 2004.
  • 홍순민, 『우리 궁궐 이야기』, 청년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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