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역관(講定譯官)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조선 정부가 통신사 파견에 앞서 사절의 일정, 파견 인원, 의식 등을 일본 측과 사전 협의하기 위하여 파견하는 역관.

개설

조선 왕이 일본 막부장군(幕府將軍) 앞으로 파견한 사절인 통신사(通信使)를 파견하는 데

앞서 일본 측(대마도)과 사전 협의하는 역관으로, 통신사의 일정(日程)을 비롯하여 외교 의식, 인원 구성, 공사예단(公私禮單)의 수량 등 제반 내용이 들어 있는 통신사강정절목(通信使講定節目)을 협의하여 정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담당 직무

조선후기 조선 정부는 일본 덕천막부(德川幕府)의 장군이 장군직을 계승할 때마다 그것을 축하하기 위하여 통신사를 파견하였다. 덕천막부에서는 새로운 막부장군의 승습이 결정되면 대마도주는 막부의 명령을 받아 장군직의 계승을 알리는 사신인 관백승습고경차왜(關白承襲告慶差倭)를 파견하여 그 사실을 조선에 알렸다. 그리고 곧이어 통신사 파견을 요청하는 통신사청래차왜(通信使請來差倭)를 파견해 오면 조선에서는 예조의 논의를 통하여 통신사의 파견을 결정한 후 삼사(三使)를 임명하고, 통신사 파견 준비에 착수하였다.

강정역관은 통신사 파견에 앞서 통신사 파견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통신사행 실시에 수반되는 제반 내용을 일본 측(대마도) 담당자와 협의를 통하여 통신사강정절목을 정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통신사강정절목을 정하는 절차로는 먼저, 일본 측(대마도)에서 통신사 절목을 소지한 차왜(差倭)를 조선에 파견하면 중앙에서 동래부에 역관이 파견되어 일본 측 사절인 차왜(差倭)와 협의하여 정하는 경우가 있었다(『순조실록』 10년 9월 16일), 이렇게 1차 결정된 사행절목은 조정의 심의를 거쳐 수정·보완되었다. 또한 마찬가지로 그 심의 과정에서 일본 측의 새로운 요구 사항이 있으면 상호 협의하기도 하였다. 한편 통신사 파견 기일이 결정되는 시점에 대마도에 문위행(問慰行)이 파견되는 경우에는 문위역관(問慰譯官)이 강정역관이 되기도 하여, 문위행에 참여한 문위역관의 업무 가운데 사행절목을 의논하여 결정하는 강정(講定) 임무가 추가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예컨대, 1643년(인조 21) 통신사행 때는 일본에서 차왜를 파견하여 통신사절목을 가져왔으므로 조정에서 동래부에 역관을 파견하여 강정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통신사 사행절목이 대마도에서 우선 강정된 경우는 1636년 통신사, 1655년 통신사, 1682년 통신사, 1719년 통신사, 1811년 통신사를 들 수 있다. 특히 1719년(숙종 45) 통신사행의 경우에는 1년 전인 1718년 통신사행 때는 사행절목의 강정을 주 임무로 한 문위역관을 파견하여 강정하였다.

강정절목의 내용은 통신사의 일정과 각종 의식을 비롯하여 삼사의 품계 및 수행원의 구성과 인원수, 외교문서와 예물 목록인 서계와 별폭(別幅)의 수령인, 서계의 형식과 피해야 하는 문자 등 매우 다양하고 상세하게 규정되었다. 또한 이전 사행에서 정해진 절목을 예로 하여 그때마다의 상황에 따라 별폭의 품목을 더하거나 글이나 그림에 능한 사람이나 활쏘기에 능한 사람, 양의(良醫)의 파견 등이 추가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통문관지(通文館志)』
  • 『증정교린지(增正交隣志)』
  • 『변례집요(邊例集要)』
  • 홍성덕, 「조선후기 문위행에 대하여」, 『한국학보』 16-2, 일지사, 1990.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