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리(甲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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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대금업자들이 곱절로 받는 이자.

내용

조선전기에는 이자율이 10분의 5인 장리가 유행하였으며, 빌려주는 기한도 7개월 정도로 월리가 7%였다. 조선후기에도 이와 같은 고리대 행위가 여전하였다. 고리대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높은 이율로 인하여 사채를 갚지 못한 채무자가 전당한 전답을 비롯한 재산을 빼앗기거나 혹은 채무자의 자녀가 억지로 노비가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갑리는 이자를 달마다 받기도 하였는데, 1년이 되지 않아 2배가 될 정도로 이자율이 매우 높았다. 곡물가가 높은 시기에는 갑리를 이용하여 이자만 몇 배에 이르기도 했다.

『속대전』 호전(戶典) 징채(徵債) 조에서는 ‘무릇 빚의 징수는 공채·사채를 물론하고 이자로 원금의 10분의 2를 넘기는 자는 장(杖) 80, 도(徒) 2년에 처한다.’고 하여 갑리를 금지하였다. 또한 부속으로 사채를 갑리로 주는 것이 발각되면 장 100, 유배하는 중벌에 처하도록 규정되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와 같은 법규가 여전히 지켜지지 않았다.

용례

近來富民生殖之道 至於甲利而極矣 生殖無有限節, 或有月捧其殖, 歲未周而至倍者 至於穀貴之時 一斗米折錢一兩 至秋索二兩 以米計之 殆過五六倍 小民安得不困耶(『숙종실록』 44년 9월 15일)

참고문헌

  • 『일성록(日省錄)』
  • 『속대전(續大典)』
  • 『고문서(古文書)』(서울대규장각 간행)
  • 『국어대사전』(李熙昇, 민중서림)
  • 최승희, 「조선후기 고문서를 통해 본 고리대의 실태」, 『고문서를 통해본 조선후기 사회신분사연구』, 지식산업사,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