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빈 김씨 묘"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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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陰曆丁未四月二十一日】 慶嬪金氏卒。 詔曰: "慶嬪年齡彌高, 而精力尙康, 病患雖重, 竊庶幾差復, 居然喪逝。 追念昔日禮待之隆眷, 愴懹曷以爲喩? 且今年乃入宮之週甲也, 尤用悵感。 依純廟甲申和嬪喪禮時故事, 凡百一遵擧行, 東園副器一部輸送。 成服日, 遣奉侍致祭, 祭文當親撰以下矣。"|출처=『고종실록』권48, 고종 44년(1907) 6월 1일 양력 1번째 기사}}
 
【陰曆丁未四月二十一日】 慶嬪金氏卒。 詔曰: "慶嬪年齡彌高, 而精力尙康, 病患雖重, 竊庶幾差復, 居然喪逝。 追念昔日禮待之隆眷, 愴懹曷以爲喩? 且今年乃入宮之週甲也, 尤用悵感。 依純廟甲申和嬪喪禮時故事, 凡百一遵擧行, 東園副器一部輸送。 成服日, 遣奉侍致祭, 祭文當親撰以下矣。"|출처=『고종실록』권48, 고종 44년(1907) 6월 1일 양력 1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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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권48, 고종 44년(1907) 6월 1일 양력 2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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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kquote|《경빈의 상사에 대해 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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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원 경(掌禮院卿) 남정철(南廷哲)이 아뢰기를, "이번 경빈(慶嬪)의 상사(喪事)와 관련하여 갑신년(1824)의 등록(謄錄)을 상고해 보니 예장(禮葬)으로 거행하였습니다. 이번에도 이대로 거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제칙(制勅)을 내리기를, "아뢴 대로 하라. 겸장례(兼掌禮) 김각현(金珏鉉)을 예장소 당상(禮葬所堂上)으로 삼아 일을 주관하게 하고, 상의(喪儀) 일체를 사의(事宜)에 맞게 거행하도록 각 해사(該司)에 각별히 신칙(申飭)하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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掌禮院卿南廷哲奏: "今此慶嬪喪, 取考甲申謄錄, 則以禮葬擧行矣。 今亦請依此擧行何如?" 制曰: "依奏。 兼掌禮金珏鉉爲禮葬所堂上, 辦理喪儀一切事宜, 另飭各該司擧行。"|출처=『고종실록』권48, 고종 44년(1907) 6월 1일 양력 2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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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권48, 고종 44년(1907) 6월 10일 양력 2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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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kquote|《탁지부에서 요청한 경빈 김씨의 장례비용을 지출할 것을 비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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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지부(度支部)에서 경빈(慶嬪) 김씨(金氏)의 예장비(禮葬費) 3만 원을 예비금 중에서 지출해 줄 것을 청의(請議)한 일로 인하여, 의정부(議政府)에서 의논을 거쳐 상주(上奏)하니, 제칙(制勅)을 내리기를, "재가(裁可)한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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議政府因度支部請, 議慶嬪金氏禮葬費三萬元, 豫備金中支出事, 經議上奏。 制曰: "可。"|출처=『고종실록』권48, 고종 44년(1907) 6월 10일 양력 2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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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권48, 고종 44년(1907) 6월 10일 양력 3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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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kquote|《김각현이 경빈의 묘소의 경계를 확정할 것을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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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소 당상(禮葬所堂上) 김각현(金珏鉉)이 아뢰기를, "경빈(慶嬪)의 묘소를 동서(東署) 앞 휘경원(徽慶園)을 옮겨모신 국내(局內) 서쪽 기슭의 손좌(巽坐)로 정하였습니다. 다시 간심(看審)한 후에 봉표(封標)하였으니, 지방관과 회동(會同)하여 경계를 정한 후에야 공사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내부(內部)로 하여금 해당 지방관을 더욱 신칙하여 거행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제칙(制勅)을 내리기를, "아뢴 대로 하라. 화소(火巢)의 사표(四標)를 간심하여 경계를 정하고, 백성들의 토지 등의 값을 궁내부(宮內府)에서 획하(劃下)하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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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葬所堂上金珏鉉奏: "慶嬪墓所, 以東署前徽慶園, 遷奉局內西麓巽坐爲定。 再看審後, 仍爲封標, 而會同地方官, 定界以後, 乃可始役矣。 令內部, 轉飭該地方官, 俾爲擧行何如?" 制曰: "依奏。 火巢四標看審定界, 火巢內民人田土等價, 自宮內府劃下。"|출처=『고종실록』권48, 고종 44년(1907) 6월 10일 양력 3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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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권48, 고종 44년(1907) 6월 14일 양력 4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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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kquote|《윤용구를 경빈 관상 서상자 서사관에 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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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소(禮葬所)에서 주청(奏請)하여 경빈 관상 서상자 서사관(慶嬪棺上書上字書寫官)에 윤용구(尹用求)를, 광중명 정 서사관(壙中銘旌書寫官)에 이재성(李載星)을, 비문음기 제술관(碑文陰記製述官)에 김학진(金鶴鎭)을, 서사관(書寫官)에 서긍순(徐肯淳)을 차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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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葬所奏差慶嬪棺上書上字書寫官尹用求、壙中銘旌書寫官李載星、碑文陰記製述官金鶴鎭、書寫官徐肯淳。|출처=『고종실록』권48, 고종 44년(1907) 6월 14일 양력 4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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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권48, 고종 44년(1907) 7월 5일 양력 1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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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kquote|《경빈 김씨의 장례를 지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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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빈(慶嬪) 김씨(金氏)의 장례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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葬慶嬪金氏。|출처=『고종실록』권48, 고종 44년(1907) 7월 5일 양력 1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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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실록』권1, 순종 즉위년(1907) 9월 30일 양력 1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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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kquote|《경빈의 장사를 지낼 때 수고한 관리들에게 시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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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빈(慶嬪)의 장사를 지내었을 때의 예장소 당상(禮葬所堂上) 이하에게 차등 있게 상을 주었으며, 당상 김각현(金珏鉉), 별간역(別看役) 유응렬(劉膺烈), 영선사 장(營繕司長) 심의석(沈宜碩), 6품 김택수(金宅洙)에게 모두 가자(加資)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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慶嬪禮葬時禮葬所堂上以下, 施賞有差。 堂上金珏鉉、別看役劉膺烈、營繕司長沈宜碩、六品金宅洙, 竝加資。|출처=『순종실록』권1, 순종 즉위년(1907) 9월 30일 양력 1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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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실록』권1, 순종 즉위년(1907) 11월 26일 양력 1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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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kquote|《경빈 김씨의 사당에 치제하도록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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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시(奉侍)를 보내어 경빈(慶嬪) 김씨(金氏)의 사당에 치제(致祭)하게 하였다. 태황제는 따로 봉시를 보내어 치제하게 하였다. 빈(嬪)으로 간택되어 입궁(入宮)한 지 60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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命遣奉侍, 致祭于慶嬪金氏廟。 太皇帝別遣奉侍致祭。 因揀嬪入宮回甲也。|출처=『순종실록』권1, 순종 즉위년(1907) 11월 26일 양력 1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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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실록』권2, 순종 1년(1908) 5월 18일 양력 2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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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kquote|《이명구 등에게 덕수궁에 문안드리고 종묘와 영녕전도 살피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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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侍從) 이명구(李明九)에게 명하여 덕수궁(德壽宮)에 나아가 문후(問候)하고 오게 하였다. 또 시종원 부경(侍從院副卿) 이회구(李會九)에게 명하여 종묘(宗廟)와 영녕전(永寧殿)에 나아가 봉심(奉審)하고 오게 하였다. 또 시종 보(侍從補) 김용진(金瑢鎭)에게 명하여 경빈(慶嬪)의 묘(墓)에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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命侍從李明九, 詣德壽宮, 問候以來, 又命侍從院副卿李會九, 詣宗廟 永寧殿, 奉審以來, 又命侍從補金瑢鎭, 慶嬪墓致祭。|출처=『순종실록』권2, 순종 1년(1908) 5월 18일 양력 2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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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실록』권3, 순종 2년(1909) 6월 8일 양력 1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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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kquote|《경빈 김씨의 상제를 지내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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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빈 김씨(慶嬪金氏)의 대상(大祥) 날이므로 시종(侍從) 김영갑(金永甲)을 보내어 치제(致祭)하게 하였으며, 덕수궁(德壽宮)에는 종2품 이완용(李完鎔)을 보내어 치제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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慶嬪金氏大朞, 命遣侍從金永甲致祭, 德壽宮, 命遣從二品李完鎔致祭。|출처=『순종실록』권3, 순종 2년(1909) 6월 8일 양력 1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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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실록』부록 권2, 순종 4년(1911) 6월 26일 양력 2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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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kquote|《완왕궁의 제향비와 궁묘의 경비, 용원의 소속을 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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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왕궁(完王宮) 제향비(祭享費)와 궁묘(宮墓) 경비(經費) 및 궁묘 용원(傭員) 정원(定員)을 순화궁(順和宮) 경빈묘(慶嬪墓)의 예(例)대로 하고, 장사계(掌祀係)에서 맡아 관리하며, 완왕궁 소속 전답(田畓)은 회계계(會計係)에서 맡아 관리하도록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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命完王宮祭享費, 宮墓經費及宮墓傭員定員, 依順和宮 慶嬪墓例, 屬于掌祀係管理。 同宮所屬田畓, 屬于會計係管理。|출처=『순종실록』부록 권2, 순종 4년(1911) 6월 26일 양력 2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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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실록』부록 권2, 순종 4년(1911) 12월 2일 양력 1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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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kquote|《이왕직 사무관을 파견하여 총독부 농상공부 출장원들이 각 능, 원, 묘의 경계를 정하고 조정할 때 입회하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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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직 사무관(李王職事務官)을 파견하여 총독부(總督府) 농상공부(農商工部) 출장원들이 각릉(各陵) 각원(各園) 각묘(各墓)의 경계를 정하고 조정할 때 입회하게 하였다. 【광릉(光陵), 경릉(敬陵), 창릉(昌陵), 온릉(溫陵), 희릉(禧陵), 태릉(泰陵), 효릉(孝陵), 강릉(康陵), 명릉(明陵), 익릉(翼陵), 홍릉(弘陵), 예릉(睿陵), 순창원(順昌園), 순강원(順康園), 소경원(昭慶園), 소녕원(昭寧園), 수길원(綏吉園), 휘경원(徽慶園), 숙의 나씨묘(淑儀羅氏墓), 안빈 이씨묘(安嬪李氏墓), 숙신 공주묘(淑愼公主墓), 소의 유씨묘(昭儀劉氏墓), 영빈 김씨묘(寧嬪金氏墓), 귀인 김씨묘(貴人金氏墓), 영조 대왕(英祖大王)의 첫째딸 묘(墓), 태왕 전하의 넷째아들 묘, 인성 대군묘(仁城大君墓), 명빈 김씨묘(明嬪金氏墓), 연산군묘(燕山君墓), 경빈 이씨묘(慶嬪李氏墓), 공빈 김씨묘(恭嬪金氏墓), 광해군묘(光海君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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派本職事務官, 立會于總督府農商工部出張員各陵園墓定界調製時。 【光陵、敬陵、昌陵、溫陵、禧陵、泰陵、孝陵、康陵、明陵、翼陵、弘陵、睿陵、順昌園、順康園、昭慶園、昭寧園、綏吉園、徽慶園、淑儀羅氏墓、安嬪李氏墓、淑愼公主墓、昭儀劉氏墓、寧嬪金氏墓、貴人金氏墓、英祖大王第一女墓、今太王第四男墓、仁城大君墓、明嬪金氏墓、燕山君墓、慶嬪李氏墓、恭嬪金氏墓、光海君墓】|출처=『순종실록』부록 권2, 순종 4년(1911) 12월 2일 양력 1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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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실록』부록 권3, 순종 5년(1912) 7월 1일 양력 1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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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kquote|《완왕궁의 제반 사무를 이왕직에 도로 소속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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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임자년(壬子年) 5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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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왕궁(完王宮)의 제반 사무를 전과 같이 특별 처리하던 것을 도로 이왕직(李王職)에 소속시키고, 일체의 재산은 추가로 정리하였다. 향사(享祀) 등의 절차는 장사계(掌祀係)에서 관장하고, 봄가을에 지내는 절향(節享)과 청명(淸明) 때의 기신묘제(忌辰墓祭)는 다른 원묘(園墓)의 예에 따라 시행한다. 제향 경비와 궁묘(宮墓) 경비 및 용원(傭員) 정원은 순화궁(順和宮) 경빈묘(慶嬪墓)의 예에 따라 규정을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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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陰曆壬子五月十七日】 完王宮諸般事務, 從前特別處理者, 還屬于本職, 一切財産, 另加整理。 享祀等節, 自掌祀係管掌, 春秋分節享、淸明忌辰墓祭, 依他園墓例施行。 祭享費、宮墓經費及傭員定員定額, 依順和宮 慶嬪墓例定規。|출처=『순종실록』부록 권3, 순종 5년(1912) 7월 1일 양력 1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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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실록』부록 권5, 순종 7년(1914) 7월 24일 양력 3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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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kquote|《인원을 파견하여 의릉과 경빈묘의 수리공사를 검사하도록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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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원을 파견하여 의릉(懿陵) 및 경빈묘(慶嬪墓)의 수리 공사를 검사하도록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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命派員檢査懿陵及慶嬪墓修理工事。|출처=『순종실록』부록 권5, 순종 7년(1914) 7월 24일 양력 3번째 기사}}
  
 
=='''지식 관계망'''==
 
=='''지식 관계망'''==

2020년 7월 21일 (화) 11:2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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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빈김씨묘(慶嬪金氏墓)
서삼릉 빈·귀인 분묘 집장지 경빈김씨 묘
식별자 RT039
분류 분묘
한글명 경빈김씨묘
한자명 慶嬪金氏墓
영문명 Tomb of Royal Noble Consort Gyung of the Gwangsan Kim clan
피장자 명칭 경빈(慶嬪) 광산김씨(光山金氏)
피장자 이칭 헌종 후궁 경빈 박씨
피장자 부 김재청(金在淸)
피장자 모 신명하(申命河)의 딸
피장자 생년월일 1832.08.27
피장자 몰년월일 1907.06.01
초장 연월일 1907.07.05
초장지 기록 휘경원(徽慶園) 구국내(舊局內)경빈김씨묘비
초장지 기록1 동서(東署) 앞 휘경원(徽慶園) 천봉( 遷奉) 국내(局內) 서록(西麓) 손좌(巽坐) 고종실록
초장지 기록2 고양군 숭인면 휘경리능원묘천봉안
문화재 지정여부 미지정
이장 연월일 1959..07.06
이장지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서삼릉 내
이장지 좌표(위도) 37°66'56.84"N
이장지 좌표(경도) 126°85'84.06"E
지문 大韓 慶嬪金氏之墓
지문 찬자 김학진(金鶴鎭) 찬(撰)/서긍순(徐肯淳) 서(書)
지문 소장처 조선왕릉 서부지구관리소



목차

내용

조선의 제24대 왕 헌종의 후궁인 경빈 김씨(1832~1907)의 묘 이다. 경빈 김씨의 본관은 광산으로, 아버지는 김재청(金在淸)이고 어머니는 신명하(申命河)의 딸이다.

1847년(헌종 13) 대왕대비가 저사(儲嗣)를 널리 구하라는 언교(諺敎)가 내려지고, 이를 계기로 같은 해 10월 간택되어 경빈에 봉해졌다. 1907년 4월 사망하였으며, 장례는 화빈(和嬪)의 상례에 준하도록 하였다.

같은 해 6월에는 경빈 관상 서상자 서사관(慶嬪棺上書上字書寫官)에 윤용구(尹用求)를, 광중명정 서사관(壙中銘旌書寫官)에 이재성(李載星)을, 비문음기 제술관(碑文陰記製述官)에 김학진(金鶴鎭)을, 서사관(書寫官)에 서긍순(徐肯淳)을 차출하였고, 7월에 장례를 치렀다.

경빈 김씨는 처음에 휘경원의 구(舊) 국내(局內)의 서록(西麓)에 안장하였다가 1959년 서삼릉 경내로 이장하였다.


조선왕조실록

『헌종실록』권14, 헌종 13년(1847) 7월 18일 을미(乙未) 1번째 기사

Quote-left blue.png 《대왕 대비가 빈청에 언교를 내려, 왕실 자손을 이을 처자를 구하도록 하다》

대왕 대비(大王大妃)가 빈청(賓廳)에 언교(諺敎)를 내리기를, "5백 년 종사(宗社)의 부탁이 오직 주상(主上) 한 몸에 있는데 춘추가 점점 한창 때가 되어 가도 자손의 경사가 아직 늦도록 없다. 불행히 곤전(坤殿)에게 병이 있는데 약으로 고치기를 바랄 수 없으니, 이것은 미망인(未亡人)과 왕대비(王大妃)의 심정이 답답한 것일 뿐더러 모든 국민이 바라는 마음이 같은 것이며, 오르내리시는 조종(祖宗)의 영(靈)께서는 그 바라고 기다리시는 바가 더욱이 어떠하겠는가? 오늘날의 큰 일로는 저사(儲嗣)를 널리 구하는 것이 급한데, 망설이고 말하지 않으며 헛되이 세월을 보낸다면 우려를 어찌할 수 없고 그칠 바를 모를 것이겠으나, 삼가 국조(國朝)의 전례를 따라 사족(士族) 가운데에서 처자(處子)를 가려 빈어(嬪御)에 둔다면 저사를 널리 구하는 도리가 오직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제 언문으로 조정에 하교하는 것은 매우 미안하나 이것은 실로 국가의 대계(大計)이므로 어쩔 수 없이 이처럼 누누이 하니, 경(卿)들은 종사의 큰 경사가 있을 도리를 생각해야 한다." 하였다.

大王大妃, 以諺敎下于賓廳曰: "五百年宗社之托, 惟在主上一身, 而春秋漸盛, 螽斯之慶, 尙今晼晩。 不幸坤殿有疾恙, 不可以藥治期望, 此非但未亡人曁王大妃情事悶鬱而已, 擧國顒望之心所同然也。 祖宗陟降之靈, 其所企待, 尤當如何? 今日大事, 廣求儲嗣爲急, 若趑趄不言, 虛度歲月, 則憂慮罔措, 不知所屆, 謹遵國朝已例, 揀選士族中處子, 置諸嬪御, 則廣嗣之道, 惟在於此。 今此諺敎于朝廷, 極爲不安, 而此實邦家大計, 故不得不如是縷縷, 卿等須思有宗社大慶之道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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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헌종실록』권14, 헌종 13년(1847) 7월 18일 을미(乙未) 1번째 기사



『헌종실록』권14, 헌종 13년(1847) 10월 20일 병인(丙寅) 1번째 기사

Quote-left blue.png 《김씨를 경빈으로 책봉하다》

김씨(金氏)를 경빈(慶嬪)으로 책봉하였다. 주부(主簿) 김재청(金在淸)의 딸이다.

冊金氏爲慶嬪, 主簿在淸女也。

Quote-right blue.png
출처: 『헌종실록』권14, 헌종 13년(1847) 10월 20일 병인(丙寅) 1번째 기사



『고종실록』권48, 고종 44년(1907) 6월 1일 양력 1번째 기사

Quote-left blue.png 《경빈 김씨가 졸하다》

【음력 정미년(1907) 4월 21일】 경빈(慶嬪) 김씨(金氏)가 졸(卒)하였다. 이에 대해 조령(詔令)을 내리기를, "경빈은 연세가 높아도 아직 정력이 강건하였으므로 병환이 깊긴 해도 내심 회복될 것이라고 기대하였는데 문득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지난날 극진하게 예우해 주던 은혜를 추념(追念)함에 처창한 심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올해는 입궁(入宮)한 지 주갑(週甲)이 되는 해이므로 더욱 비감에 잠기게 된다. 순묘(純廟) 갑신년(1824) 화빈(和嬪)의 상례(喪禮) 때의 고사(故事)에 따라 모든 일을 거행하고, 동원부기(東園副器) 1부(部)를 실어 보내라. 성복일(成服日)에는 봉시(奉侍)를 보내어 치제(致祭)하도록 하고, 제문(祭文)은 직접 지어 내리겠다." 하였다.

【陰曆丁未四月二十一日】 慶嬪金氏卒。 詔曰: "慶嬪年齡彌高, 而精力尙康, 病患雖重, 竊庶幾差復, 居然喪逝。 追念昔日禮待之隆眷, 愴懹曷以爲喩? 且今年乃入宮之週甲也, 尤用悵感。 依純廟甲申和嬪喪禮時故事, 凡百一遵擧行, 東園副器一部輸送。 成服日, 遣奉侍致祭, 祭文當親撰以下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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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고종실록』권48, 고종 44년(1907) 6월 1일 양력 1번째 기사



『고종실록』권48, 고종 44년(1907) 6월 1일 양력 2번째 기사

Quote-left blue.png 《경빈의 상사에 대해 명하다》

장례원 경(掌禮院卿) 남정철(南廷哲)이 아뢰기를, "이번 경빈(慶嬪)의 상사(喪事)와 관련하여 갑신년(1824)의 등록(謄錄)을 상고해 보니 예장(禮葬)으로 거행하였습니다. 이번에도 이대로 거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제칙(制勅)을 내리기를, "아뢴 대로 하라. 겸장례(兼掌禮) 김각현(金珏鉉)을 예장소 당상(禮葬所堂上)으로 삼아 일을 주관하게 하고, 상의(喪儀) 일체를 사의(事宜)에 맞게 거행하도록 각 해사(該司)에 각별히 신칙(申飭)하라." 하였다.

掌禮院卿南廷哲奏: "今此慶嬪喪, 取考甲申謄錄, 則以禮葬擧行矣。 今亦請依此擧行何如?" 制曰: "依奏。 兼掌禮金珏鉉爲禮葬所堂上, 辦理喪儀一切事宜, 另飭各該司擧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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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고종실록』권48, 고종 44년(1907) 6월 1일 양력 2번째 기사



『고종실록』권48, 고종 44년(1907) 6월 10일 양력 2번째 기사

Quote-left blue.png 《탁지부에서 요청한 경빈 김씨의 장례비용을 지출할 것을 비준하다》

탁지부(度支部)에서 경빈(慶嬪) 김씨(金氏)의 예장비(禮葬費) 3만 원을 예비금 중에서 지출해 줄 것을 청의(請議)한 일로 인하여, 의정부(議政府)에서 의논을 거쳐 상주(上奏)하니, 제칙(制勅)을 내리기를, "재가(裁可)한다." 하였다.

議政府因度支部請, 議慶嬪金氏禮葬費三萬元, 豫備金中支出事, 經議上奏。 制曰: "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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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고종실록』권48, 고종 44년(1907) 6월 10일 양력 2번째 기사



『고종실록』권48, 고종 44년(1907) 6월 10일 양력 3번째 기사

Quote-left blue.png 《김각현이 경빈의 묘소의 경계를 확정할 것을 아뢰다》

예장소 당상(禮葬所堂上) 김각현(金珏鉉)이 아뢰기를, "경빈(慶嬪)의 묘소를 동서(東署) 앞 휘경원(徽慶園)을 옮겨모신 국내(局內) 서쪽 기슭의 손좌(巽坐)로 정하였습니다. 다시 간심(看審)한 후에 봉표(封標)하였으니, 지방관과 회동(會同)하여 경계를 정한 후에야 공사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내부(內部)로 하여금 해당 지방관을 더욱 신칙하여 거행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제칙(制勅)을 내리기를, "아뢴 대로 하라. 화소(火巢)의 사표(四標)를 간심하여 경계를 정하고, 백성들의 토지 등의 값을 궁내부(宮內府)에서 획하(劃下)하라." 하였다.

禮葬所堂上金珏鉉奏: "慶嬪墓所, 以東署前徽慶園, 遷奉局內西麓巽坐爲定。 再看審後, 仍爲封標, 而會同地方官, 定界以後, 乃可始役矣。 令內部, 轉飭該地方官, 俾爲擧行何如?" 制曰: "依奏。 火巢四標看審定界, 火巢內民人田土等價, 自宮內府劃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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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고종실록』권48, 고종 44년(1907) 6월 10일 양력 3번째 기사



『고종실록』권48, 고종 44년(1907) 6월 14일 양력 4번째 기사

Quote-left blue.png 《윤용구를 경빈 관상 서상자 서사관에 임명하다》

예장소(禮葬所)에서 주청(奏請)하여 경빈 관상 서상자 서사관(慶嬪棺上書上字書寫官)에 윤용구(尹用求)를, 광중명 정 서사관(壙中銘旌書寫官)에 이재성(李載星)을, 비문음기 제술관(碑文陰記製述官)에 김학진(金鶴鎭)을, 서사관(書寫官)에 서긍순(徐肯淳)을 차출하였다.

禮葬所奏差慶嬪棺上書上字書寫官尹用求、壙中銘旌書寫官李載星、碑文陰記製述官金鶴鎭、書寫官徐肯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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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고종실록』권48, 고종 44년(1907) 6월 14일 양력 4번째 기사



『고종실록』권48, 고종 44년(1907) 7월 5일 양력 1번째 기사

Quote-left blue.png 《경빈 김씨의 장례를 지내다》

경빈(慶嬪) 김씨(金氏)의 장례를 지냈다.

葬慶嬪金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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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고종실록』권48, 고종 44년(1907) 7월 5일 양력 1번째 기사



『순종실록』권1, 순종 즉위년(1907) 9월 30일 양력 1번째 기사

Quote-left blue.png 《경빈의 장사를 지낼 때 수고한 관리들에게 시상하다》

경빈(慶嬪)의 장사를 지내었을 때의 예장소 당상(禮葬所堂上) 이하에게 차등 있게 상을 주었으며, 당상 김각현(金珏鉉), 별간역(別看役) 유응렬(劉膺烈), 영선사 장(營繕司長) 심의석(沈宜碩), 6품 김택수(金宅洙)에게 모두 가자(加資)하였다.

慶嬪禮葬時禮葬所堂上以下, 施賞有差。 堂上金珏鉉、別看役劉膺烈、營繕司長沈宜碩、六品金宅洙, 竝加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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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순종실록』권1, 순종 즉위년(1907) 9월 30일 양력 1번째 기사



『순종실록』권1, 순종 즉위년(1907) 11월 26일 양력 1번째 기사

Quote-left blue.png 《경빈 김씨의 사당에 치제하도록 하다》

봉시(奉侍)를 보내어 경빈(慶嬪) 김씨(金氏)의 사당에 치제(致祭)하게 하였다. 태황제는 따로 봉시를 보내어 치제하게 하였다. 빈(嬪)으로 간택되어 입궁(入宮)한 지 60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命遣奉侍, 致祭于慶嬪金氏廟。 太皇帝別遣奉侍致祭。 因揀嬪入宮回甲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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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순종실록』권1, 순종 즉위년(1907) 11월 26일 양력 1번째 기사



『순종실록』권2, 순종 1년(1908) 5월 18일 양력 2번째 기사

Quote-left blue.png 《이명구 등에게 덕수궁에 문안드리고 종묘와 영녕전도 살피게 하다》

시종(侍從) 이명구(李明九)에게 명하여 덕수궁(德壽宮)에 나아가 문후(問候)하고 오게 하였다. 또 시종원 부경(侍從院副卿) 이회구(李會九)에게 명하여 종묘(宗廟)와 영녕전(永寧殿)에 나아가 봉심(奉審)하고 오게 하였다. 또 시종 보(侍從補) 김용진(金瑢鎭)에게 명하여 경빈(慶嬪)의 묘(墓)에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命侍從李明九, 詣德壽宮, 問候以來, 又命侍從院副卿李會九, 詣宗廟 永寧殿, 奉審以來, 又命侍從補金瑢鎭, 慶嬪墓致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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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순종실록』권2, 순종 1년(1908) 5월 18일 양력 2번째 기사



『순종실록』권3, 순종 2년(1909) 6월 8일 양력 1번째 기사

Quote-left blue.png 《경빈 김씨의 상제를 지내주다》

경빈 김씨(慶嬪金氏)의 대상(大祥) 날이므로 시종(侍從) 김영갑(金永甲)을 보내어 치제(致祭)하게 하였으며, 덕수궁(德壽宮)에는 종2품 이완용(李完鎔)을 보내어 치제하게 하였다.

慶嬪金氏大朞, 命遣侍從金永甲致祭, 德壽宮, 命遣從二品李完鎔致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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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순종실록』권3, 순종 2년(1909) 6월 8일 양력 1번째 기사



『순종실록』부록 권2, 순종 4년(1911) 6월 26일 양력 2번째 기사

Quote-left blue.png 《완왕궁의 제향비와 궁묘의 경비, 용원의 소속을 정하다》

완왕궁(完王宮) 제향비(祭享費)와 궁묘(宮墓) 경비(經費) 및 궁묘 용원(傭員) 정원(定員)을 순화궁(順和宮) 경빈묘(慶嬪墓)의 예(例)대로 하고, 장사계(掌祀係)에서 맡아 관리하며, 완왕궁 소속 전답(田畓)은 회계계(會計係)에서 맡아 관리하도록 명하였다.

命完王宮祭享費, 宮墓經費及宮墓傭員定員, 依順和宮 慶嬪墓例, 屬于掌祀係管理。 同宮所屬田畓, 屬于會計係管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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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순종실록』부록 권2, 순종 4년(1911) 6월 26일 양력 2번째 기사



『순종실록』부록 권2, 순종 4년(1911) 12월 2일 양력 1번째 기사

Quote-left blue.png 《이왕직 사무관을 파견하여 총독부 농상공부 출장원들이 각 능, 원, 묘의 경계를 정하고 조정할 때 입회하게 하다》

이왕직 사무관(李王職事務官)을 파견하여 총독부(總督府) 농상공부(農商工部) 출장원들이 각릉(各陵) 각원(各園) 각묘(各墓)의 경계를 정하고 조정할 때 입회하게 하였다. 【광릉(光陵), 경릉(敬陵), 창릉(昌陵), 온릉(溫陵), 희릉(禧陵), 태릉(泰陵), 효릉(孝陵), 강릉(康陵), 명릉(明陵), 익릉(翼陵), 홍릉(弘陵), 예릉(睿陵), 순창원(順昌園), 순강원(順康園), 소경원(昭慶園), 소녕원(昭寧園), 수길원(綏吉園), 휘경원(徽慶園), 숙의 나씨묘(淑儀羅氏墓), 안빈 이씨묘(安嬪李氏墓), 숙신 공주묘(淑愼公主墓), 소의 유씨묘(昭儀劉氏墓), 영빈 김씨묘(寧嬪金氏墓), 귀인 김씨묘(貴人金氏墓), 영조 대왕(英祖大王)의 첫째딸 묘(墓), 태왕 전하의 넷째아들 묘, 인성 대군묘(仁城大君墓), 명빈 김씨묘(明嬪金氏墓), 연산군묘(燕山君墓), 경빈 이씨묘(慶嬪李氏墓), 공빈 김씨묘(恭嬪金氏墓), 광해군묘(光海君墓)이다.】

派本職事務官, 立會于總督府農商工部出張員各陵園墓定界調製時。 【光陵、敬陵、昌陵、溫陵、禧陵、泰陵、孝陵、康陵、明陵、翼陵、弘陵、睿陵、順昌園、順康園、昭慶園、昭寧園、綏吉園、徽慶園、淑儀羅氏墓、安嬪李氏墓、淑愼公主墓、昭儀劉氏墓、寧嬪金氏墓、貴人金氏墓、英祖大王第一女墓、今太王第四男墓、仁城大君墓、明嬪金氏墓、燕山君墓、慶嬪李氏墓、恭嬪金氏墓、光海君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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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순종실록』부록 권2, 순종 4년(1911) 12월 2일 양력 1번째 기사



『순종실록』부록 권3, 순종 5년(1912) 7월 1일 양력 1번째 기사

Quote-left blue.png 《완왕궁의 제반 사무를 이왕직에 도로 소속시키다》

【음력 임자년(壬子年) 5월 17일】 완왕궁(完王宮)의 제반 사무를 전과 같이 특별 처리하던 것을 도로 이왕직(李王職)에 소속시키고, 일체의 재산은 추가로 정리하였다. 향사(享祀) 등의 절차는 장사계(掌祀係)에서 관장하고, 봄가을에 지내는 절향(節享)과 청명(淸明) 때의 기신묘제(忌辰墓祭)는 다른 원묘(園墓)의 예에 따라 시행한다. 제향 경비와 궁묘(宮墓) 경비 및 용원(傭員) 정원은 순화궁(順和宮) 경빈묘(慶嬪墓)의 예에 따라 규정을 정한다.

【陰曆壬子五月十七日】 完王宮諸般事務, 從前特別處理者, 還屬于本職, 一切財産, 另加整理。 享祀等節, 自掌祀係管掌, 春秋分節享、淸明忌辰墓祭, 依他園墓例施行。 祭享費、宮墓經費及傭員定員定額, 依順和宮 慶嬪墓例定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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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순종실록』부록 권3, 순종 5년(1912) 7월 1일 양력 1번째 기사



『순종실록』부록 권5, 순종 7년(1914) 7월 24일 양력 3번째 기사

Quote-left blue.png 《인원을 파견하여 의릉과 경빈묘의 수리공사를 검사하도록 하다》

인원을 파견하여 의릉(懿陵) 및 경빈묘(慶嬪墓)의 수리 공사를 검사하도록 명하였다.

命派員檢査懿陵及慶嬪墓修理工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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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순종실록』부록 권5, 순종 7년(1914) 7월 24일 양력 3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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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학술적 성격의 저작물

1.고문헌

  • 이왕직(李王職) 예식과(禮式課), 『능원묘천봉안(陵園墓遷奉案)』, 1929 ~ 1945,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대중적 성격의 콘텐츠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