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태실지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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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정의'''== |
조선 제3대 국왕 태종의 태실이다. | 조선 제3대 국왕 태종의 태실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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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년(태종 1) 하륜(河崙)을 태실증고사(胎室證考使)로 삼아 가봉하려 하였으나 농번기이고 가뭄이 심하다는 이유로 문하부 낭사에서 반대를 했다. 그러나 하륜을 증고사로 삼고 지관(地官) 윤신달(尹莘達)을 붙여 태실지를 물색하게 하였고, 이후 여흥부원군(驪興府院君) 민제(閔霽)로 안태사(安胎使)를 삼아 함주(咸州)에 있던 태함을 받들고 와 경산부(京山府) 조곡산(祖谷山)에 태(胎)를 봉안하였다. 이 일로 경산부는 성주목(星州牧)이 되었다. | 1401년(태종 1) 하륜(河崙)을 태실증고사(胎室證考使)로 삼아 가봉하려 하였으나 농번기이고 가뭄이 심하다는 이유로 문하부 낭사에서 반대를 했다. 그러나 하륜을 증고사로 삼고 지관(地官) 윤신달(尹莘達)을 붙여 태실지를 물색하게 하였고, 이후 여흥부원군(驪興府院君) 민제(閔霽)로 안태사(安胎使)를 삼아 함주(咸州)에 있던 태함을 받들고 와 경산부(京山府) 조곡산(祖谷山)에 태(胎)를 봉안하였다. 이 일로 경산부는 성주목(星州牧)이 되었다. | ||
− | 현재 태실지에는 분묘가 조성되어있으며, 태실을 구성했던 석물은 | + | 현재 태실지에는 분묘가 조성되어있으며, 주변에서 태실을 구성했던 석물은 확인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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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록'''== | =='''관련 기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