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 원자 태실지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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施官爵之一事乎? 臺諫之言是也。"|출처=『연산군일기』40권, 연산군 7년(1501) 4월 22일 기해(己亥) 1번째 기사}}
 
施官爵之一事乎? 臺諫之言是也。"|출처=『연산군일기』40권, 연산군 7년(1501) 4월 22일 기해(己亥) 1번째 기사}}
  
 
====『연산군일기』40권, 연산군 7년(1501) 6월 10일 병술(丙戌) 1번째 기사====
 
{{Blockquote|《승지 권주를 시켜 안태사 신수근을 제천정에서 전송하게 하고 어제시 한 절구를 내리다》
 
 
승지 권주(權柱) 등에게 명해서 '''안태사(安胎使) 신수근(愼守勤)'''을 제천정(濟川亭)에서 전송하도록 하고, 어제시(御製詩) 한 절구(絶句)를 내리기를,
 
 
짙어가는 더운 기운이 바야흐로 깊어만 가는데
 
 
멀고 먼 장안까지 몇 개의 바다위 묏부리던가
 
 
오늘 사람을 시켜 정자 위에서 전송하노니
 
 
몇 달 동안 소식 듣지 못함이 근심스럽구나
 
 
하였다. 신수근(愼守勤)이 정인인(鄭麟仁)을 종사관(從事官)으로 삼았다. 홍문관에서 상소하여 시사(時事)와 외척에 관한 일을 의논하면서, 정인인으로 하여금 기초(起草)하게 했는데, 정인인(鄭麟仁)은 다만 다른 일만 범론(泛論)하고 외척에 관한 일은 한 마디 말도 없었는데, 저작(著作) 안처선(安處善)이 그것을 보고 말하기를,
 
 
"상소가 이 정도에 그칠 바에야 그만두는 것보다 못하다."
 
 
하니, 정인인(鄭麟仁)이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안처선(安處善)은 천성이 순정(醇正)하고 지조가 확실해서 세쇄(細瑣)한 일에 구애되지 않고 대인의 기상이 있었다.
 
 
命承旨權柱等, 往餞安胎使愼守勤于濟川亭, 賜御製詩一絶曰: "沈沈暑氣正方深, 路隔長安幾海岑。 今日使人亭上餞, 還愁數月不聞音。" 守勤以鄭麟仁爲從事官。 弘文館上疏, 論時事, 幷及外戚, 令麟仁草之, 麟仁但泛論他事, 無一語屬外戚者。 著作安處善見之曰: "疏止是, 不如且已。" 麟仁有慙色。 處善天性醇正, 所守確然。 不拘細瑣, 有大人氣象。|출처=『연산군일기』40권, 연산군 7년(1501) 6월 10일 병술(丙戌) 1번째 기사}}
 
  
 
====『연산군일기』41권, 연산군 7년(1501) 12월 18일 임술(壬戌) 1번째 기사====
 
====『연산군일기』41권, 연산군 7년(1501) 12월 18일 임술(壬戌) 1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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