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 태실지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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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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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제19대 국왕 숙종의 태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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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8대 왕 현종(顯宗)과 명성왕후(明聖王后) 김씨(金氏)의 장남인 조선 19대 왕 숙종의 안태지(安胎地).
 
 
1661년(현종 2) 태실지를 선정할 때 공주‧청주‧춘천이 거론되었으나 최종적으로 공주로 낙점되었다. 이 때 안태사는 여이재(呂爾載), 종사관은 송시철(宋時喆)이 맡았으며, 안태비의 글씨는 승문원 정자 박상형(朴尙馨)이 썼다.
 
 
 
숙종은 즉위 후 아버지 현종의 태실을 가봉하면서 자신의 태실도 함께 가봉하려 하였으나 흉년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1683년(숙종 9)에 이르러 태실 가봉이 이루어졌다.
 
 
 
원래 태실이 위치했던 자리에는 분묘가 조성되어 있으며, 숙종의 안태비와 가봉비, 사방석 등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인근 골짜기에 첨석을 비롯하여 다수의 태실 석물이 남아있어 신속한 수습이 요구된다. 숙종태실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21호로 지정되어있다.
 
  
 
=='''관련 기록'''==
 
=='''관련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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