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종 태실지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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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산록=== | ===호산록=== | ||
====『호산록(湖山錄)』<ref>1619년(광해군 11) 한여현(韓汝賢)이 편찬한 충청도 서산군(현재의 서산시) 읍지. 2권 2책. 필사본. 개인소장. 고경명(高敬命)이 서산군수로 부임하여 편찬하게 하여 뒤에 완성된 사찬읍지(私撰邑誌)로서 충청도 지역에서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읍지이다. 이 책은 임진왜란을 겪은 뒤 지방 사회의 모습을 충실히 전해 주는 읍지로서 의의가 크다. 17세기 초 지방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정치 질서의 문란, 향촌의 미풍양속(鄕風)의 붕괴와 좌목(座目) 다툼 등 향촌 사회의 동요, 소금굽기·목장·해상물의 진상 등에서 심각하게 나타났던 관리들의 민폐, 국방의 허술함 등을 지방 사족(士族)의 입장에서 생생하게 기록하였다.</ref>「산천(山川)」==== | ====『호산록(湖山錄)』<ref>1619년(광해군 11) 한여현(韓汝賢)이 편찬한 충청도 서산군(현재의 서산시) 읍지. 2권 2책. 필사본. 개인소장. 고경명(高敬命)이 서산군수로 부임하여 편찬하게 하여 뒤에 완성된 사찬읍지(私撰邑誌)로서 충청도 지역에서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읍지이다. 이 책은 임진왜란을 겪은 뒤 지방 사회의 모습을 충실히 전해 주는 읍지로서 의의가 크다. 17세기 초 지방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정치 질서의 문란, 향촌의 미풍양속(鄕風)의 붕괴와 좌목(座目) 다툼 등 향촌 사회의 동요, 소금굽기·목장·해상물의 진상 등에서 심각하게 나타났던 관리들의 민폐, 국방의 허술함 등을 지방 사족(士族)의 입장에서 생생하게 기록하였다.</ref>「산천(山川)」==== | ||
− | {{Blockquote| 태봉은 문수사(文殊寺) 좌쪽 어깨 편에 있으니 명종대왕(明宗大王)의 태를 묻은 곳이다. 봉우리 위에다 또 태사(胎寺) 세 칸(三間)을 지었으며 봉우리 아래에는 태지기(胎直) 10여 호가 살면서 벌목도 금지하고 산불도 금지한다. | + | {{Blockquote| 태봉은 문수사(文殊寺) 좌쪽 어깨 편에 있으니 명종대왕(明宗大王)의 태를 묻은 곳이다. 봉우리 위에다 또 태사(胎寺) 세 칸(三間)을 지었으며 봉우리 아래에는 태지기(胎直)이 10여 호가 살면서 벌목도 금지하고 산불도 금지한다. |
胎峰在文殊寺在肩, 明宗大王胎入藏, 峰頂又作胎寺三間, 峰之下胎直十餘家, 禁伐禁火。|출처=『호산록(湖山錄)』「산천(山川)」}} | 胎峰在文殊寺在肩, 明宗大王胎入藏, 峰頂又作胎寺三間, 峰之下胎直十餘家, 禁伐禁火。|출처=『호산록(湖山錄)』「산천(山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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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영, 김호, 이귀영, 홍대한, 김문식 공저, 『조선왕실의 태실 의궤와 장태 문화』,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 | *윤진영, 김호, 이귀영, 홍대한, 김문식 공저, 『조선왕실의 태실 의궤와 장태 문화』,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 | ||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조선의 태실』, 전주이씨대동종약원, 1999. |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조선의 태실』, 전주이씨대동종약원, 199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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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논문 | 3.논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