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무는 남녀 역할을 하는 두 명의 기녀가 서로 마주보기도 하고 등지기도 하며 포옹하기도 하는 등 갖은 교태를 연출하며 추는 창작춤. 사교무(社交舞)이며, 민속무용으로 분류되고 있다. 반주곡으로는 삼현영산회상(三絃靈山會相)이 사용되었다. 복장은 남장 기생의 경우 궁중 별감 복색이며, 여장 기생은 궁중 여기의 복색인 몽두리에 색한삼을 끼고 족두리를 썼다. 이러한 남무의 등장은 서양식 사교댄스, 민간 춤 등을 참고한 것으로 여겨진다.
개항 이후 입국한 서양인들의 사교댄스는 궁정 안팎의 연회에 출입하던 기녀들이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많았을 것이다. 외국인의 모습이 담긴 당시의 사진중에는 '궁중에서 연회가 있었을 때의 사진'이라는 기록을 남긴 것이 있어, 서양인 남녀가 궁정연회에서 어울려 춤추는 광경은 실제 벌어졌던 일이다. 또 궁정 안팎에서 활동하는 기생들은 민간에서 남녀가 어울려 춤추는 장면을 보면서 자극을 받았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남녀의 애정행각을 묘사한 남무는 궁중 정재에 기반을 두고 서양식 사교춤과 민간 남녀의 대무(對舞) 등에서 자극을 받아 새롭게 만든 창작춤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는 군악대의 창설에서 보듯이, 궁정연회가 서양식으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에 있었다. 이러한 사회분위기에서 남무는 근대식 궁정연회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든 춤으로 보이며, 기녀들이 궁정 안팎을 오가면서 민간에서도 공연하여 궁정 안팎으로 전파시켰다고 하겠다. 남무는 화려한 무구(舞具)를 선보이지는 않았지만, 동서양의 문화가 어울린 유희성과 오락성을 특징으로 한다. 남무는 점차 궁정의 담장을 넘어 민간의 행사와 극장무대를 장식하는 주종목으로 자리잡았다. 판소리 고수이자 민속무용가인 한성준(韓成俊)은 1937년 '조선음악무용연구소'를 열고, 남무 등을 후진들에게 전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