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냥은화는 당시 세계각국에서 무역결제용으로 사용하던 크라운화의 규격을 채택하였으며 제조매수는 19,923매에 불과하지만 구한말대부터 한일병합까지 발행된 비슷한 크기의 은화3종중 가장 많이 제조되었다. 416이라는 숫자는 416grain(=26.96gr)의 무게를, 900은 은순도 90%를 의미한다. 1892년 인천전환국에서 제조된 화폐는 5냥은화 2만원(元), 1냥은화 7만원, 2전5푼백동화 5만2천원, 5푼적동화 9만2천원, 1푼황동화 9백원이었다. 당시 인천전환국은 용해 압연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아 일본에서 소전(素錢)을 수입하여 압인 가공하는 데 그쳤다. 주화의 앞면 중앙 상부에 태극무늬 대신 자두꽃무늬(이화장)를 사용하였으며 오른쪽의 자두나무 가지는 그대로 두었으나 왼쪽에는 국화인 무궁화 가지가 도안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처음 제조한 주화에는 개국 501년의 연호를 쓰고 국호를 "대조선(大朝鮮)"이라고 표현하였다. 청의 위안스카이가 1892년에 제조된 주화(개국 501년 표시)에 국호가 "대조선"이라고 표시된 데 대하여 "대"자의 삭제를 요구, 이후 제조된 주화(개국 502년 이후)는 국호가 "조선"으로 수정되었다가 청일전쟁이 끝난 후 다시 "대조선"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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