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국장의 발인 행렬에 사용되는 말 모양의 흉의장(凶儀仗)이다. 싸리나무와 마른풀, 가마니 등을 엮어서 만든 의장용 말로, 등에 안장이 없는 죽산마(竹散馬)와 안장이 있는 죽안마(竹鞍馬)가 짝이 되어 사용되었다.
죽산마는 검은색으로 칠을 하고, 죽안마는 다양한 색으로 칠해졌다.
발인 행렬에서 작은 가마인 채여(彩輿)의 좌우에 위치하였으며 수레에 실려 운반되었다.
왕은 죽산마 2필, 죽안마 10필이 사용되었고, 왕비는 죽산마 2필, 죽안마 4필이 사용되었다. 즉위 전에 훙서한 왕세자·왕세자빈·왕세손 등도 죽산마 2필, 죽안마 4필이 사용되었다.
발인 의식이 끝나면 죽산마와 죽안마, 청수안마, 자수안마 등은 정결한 장소에서 불태웠다.[1]
명칭 이태왕(고종) 장의 광경 12 / 아카이브번호 <103507> / 자료출처 고종장례 / 내용 1919년 3월 3일에 거행된 고종 국장 당시 장의 행렬의 광경을 담은 시리즈엽서(16매)의 하나이다. 사진은 장제장(葬祭場, 영결식장)인 훈련원(訓鍊院, 황금정 6정목 18번지 일대)에서 출발하여 장지인 금곡 홍릉(金谷 洪陵) 이동하는 행로 중 죽산마(竹散馬, 안장이 없는 것)와 죽안마(竹鞍馬, 안장이 있는 것)가 지나고 있는 장면이다. 앞쪽에는 수레에 얹은 방상씨(方相氏)가 보이고, 채여(彩轝)가 뒤를 따르고 있다. 조선식 인산행렬은 덕수궁 영성문(永成門)에서 따로 출발하여 종로(鐘路)를 경유하여 동대문에 대기하였다가 훈련원 쪽에서 나오는 대여행렬과 합류하였다.
서울역사박물관, 3월 3일 고종 인산일 맞아 <고종황제의 마지막 길>展 개최 (2017-03-13)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한국 전시관이 자리를 잡았다. 한국관은 경복궁 근정전의 모습을 토대로 지어졌다. 당시 프랑스 파리에서 발간되던 일간지인 르 쁘띠 주르날(Le Petit Journal)에는 한국 전시관의 모습을 담은 삽화가 실렸다(1900년 12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