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박람회
hanyang2020>이수민님의 2020년 11월 17일 (화) 20:12 판
Definition
1929년 9월 12일부터 10월 31일까지 50여일간 경복궁에서 개최된 박람회.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id | class | groupName | partName | label | hangeul | hanja | english | infoUrl | iconUr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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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박람회 | Event | 사건 | 조선박람회 | 조선박람회(朝鮮博覽會) | 조선박람회 | 朝鮮博覽會 | http://dh.aks.ac.kr/hanyang2/wiki/index.php/조선박람회 |
Additional Attributes
propertyName | value |
---|---|
사진 | |
사진출처 | |
대표명칭 | 조선박람회 |
한자표기 | 朝鮮博覽會 |
영문명칭 | |
이칭 | 시정20주년기념조선박람회 |
유형 | |
시대 | 일제강점기 |
날짜 | 일제강점기 1929년 9월 12일 ~10월 31일 |
관련인물 | |
관련단체 | 경성협찬회, 조선총독부 |
관련장소 | 경복궁, 광화문, 근정전, 경성역, 남대문통, 숭례문 |
관련물품 | |
관련유물유적 |
Contextual Relations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
조선박람회 | 경복궁 | happenedAt | spatial |
조선박람회 | 광화문 | isRelatedTo | spatial |
조선박람회 | 조선총독부 | isPerformedBy | |
조선박람회 | 경성협찬회 | isPerformedBy | |
조선박람회 | 조선박람회경성협찬회보고서 | isDocumentedIn | |
조선박람회 | 조선박람회기념사진첩 | isDocumentedIn | |
조선박람회 | 경성역 | isRelatedTo | |
조선박람회 | 남대문통 | isRelatedTo | |
조선박람회 | 광화문통 | isRelatedTo | |
조선박람회 | 근대박람회 | isPartOf |
Online Reference
- type: 해설, 참고, 3D_모델, VR_영상, 도해, 사진, 동영상, 소리, 텍스트
Bibliography
author | title | publication | edition | URL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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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정 | 「일제시기 조선박람회 연구-조선인의 근대적 시각체험을 중심으로-」, | 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 |||||||||||
신명직 | 『모던뽀이, 京城을 거닐다 : 만문만화로 보는 근대의 얼굴 /』 | 현실문화연구, 2003 | |||||||||||
하세봉 | 「식민지권력의 두 가지 얼굴-조선박람회(1929년)와 대만박람회(1935년)의 비교」 | 『역사와 경계』51, 2004 | |||||||||||
신주백 | 「「박람회-과시· 선전· 계몽· 소비의 체험공간, | 『역사비평』67, 2004 | 권혁희, | 『(조선에서 온) 사진엽서 』, | 민음사, 2005 | ||||||||
요시미순야, 이태문 역, | 『박람회 : 근대의 시선』 | 논형, 2005 | 남기웅 | 「1929년 조선박람회와 식민지 근대성」, |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韓國學論叢』43, 200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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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선 외 7인, | 『궁궐의 눈물, 백 년의 침묵』, | 효형출판, 2009 | |||||||||||
국립민속박물관, | 『엽서 속의 기생읽기』, | 국립민속박물관, 20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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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리 | 「그림엽서 봉투도안으로 보는 관광의 상품성과 경성 : 1920~1930년대 경성관광 그림엽서를 중심으로」 | 건국대학교 아시아콘텐츠연구소,2017 | |||||||||||
헨리, 토드 A. 지음, 김백영 외 3인 옮김 | 『서울, 권력 도시』, | 산처럼, 2020 |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120632 |
Notes
- 조선박람회의 전시관은 대부분이 새로 지은 것이었으며, 식장, 연회장, 영빈관, 조사장, 창고 등만 기존 건물을 약간씩 수리하여 이용하였다.
- 총독부가 발행한 조선박람회 관련 회칙을 보면, 전시물은 총 22부 273개로 분류하여 '조선물산공진회'보다 종류가 2배 가까이 늘었다.
- 총 출품점 수는 2만 1428점에 달했다.
- 조선박람회장 배치도를 보면 경복궁 전체 부지에서 총독부 신청사와 그 주변 정원 일대를 제외한 2/3 가량이 부지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대부분의 박람회 사무위원들이 기존 총독부 내의 부서에서 일하던 관료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고 또한 당시 총독부 내무국 건축과에서 근무하던 박길룡이 박람회장 중문을 담당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
- 매일신보 1927년 5월 29일자, 조선박람회 취지서
- 동아일보 1927년 2월 25일자, 조선박람회
- 동아일보 1927년 2월 26일 자, 공업자대회
- 조선박람회 개장시간 [2]
조선박람회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한 차례의 개장을 원칙으로 하였다.
- 조선박람회 행사기간 중의 사건사고 [3]
- 『조선일보』1929년6월25일자「共産黨 滿洲部 密使잠입설」; 1929년8월5자「조선박람회 압두고 고려공산당密議
- 경성일보1921년 5월 6일자; 1922년 3월 12일자;1922년 4월 29일자
조선총독부 관료들은 1921년부터 식민통치 15주년 기념, 총독부 신청사개관을 축하할 목적으로 박람회 개최를 논의. 1926년 또다른 대규모의 국가적 박람회의 개최를 계획하였으나 예산문제로 인해 1929년으로 연기.[4]
- 동아일보, 1929년 10월 3일자
- 동아일보, 1929년 5월 18일자
- 동아일보, 1929년 6월 1일자
- 동아일보, 1929년 7월 2일자
- 동아일보, 1929년 9월 15일자
- 동아일보, 1929년 9월 22일
- 경무국 보안과 1929년 6월
- 경성일보, 1929년 11월 3일,
References
Semantic Network Gr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