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분관에는 농사짓는 데 필요한 각종 농기구와 과일이 전시되었으며 다양한 모형들이 전시되었다. 소나무의 송충이를 잡는 도구와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올라온 대나무 제품도 전시되었다. 함경북도에는 호랑이와 곰의 가죽을 출품했다. 농촌의 부업을 장려하는 뜻에서 새끼를 꼬우고 가마니를 짜는 인형도 전시되었는데, 그보다는 "새끼 꼬아 시집가고 가마니 짜서 장가든다."는 표어가 눈길을 끌었다. 준비과정 때는 설명 문안이 일본어로 되어 있었으나 이를 한글로 바꾸어 조선인 관람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라는 데라우치 총독의 지시에 따라 한글로 교체했다는 얘기도 소문으로 떠돌았다. 수산분관에는 고기잡는 데 필요한 어구의 전시와 특이한 볼거리가 하나 있었는데 근정전 회랑에 전시된 고래 뼈였다.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길이가 마흔여덟 척에 이르렀으니, 전시품 가운데 가장 큰 품목이었다. 동양포경회사가 출품한 것으로 공진회 개최 5개월 전즘에 강원도 통천군 해안에서 포획한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고래가 근해에서 해마다 200마리가 넘게 잡혔는데, 마리당 가격도 1500엔 이상을 호가했다.
일제는 근정전 주위의 행각을 어구와 농기구를 전시하는 농수산 분관으로 사용하여 조선왕조가 지닌 권위를 실추시키고 전근대적 이미지와 연결지으려 했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조선의 궁궐 건축은 전근대서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전락해버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