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 밖에서 가례를 마친 연잉군 부부는 혼인 후 4일째 입궁하여 출합 할 때까지 9년 동안 왕실 가족과 함께 살았다. 어린 나이에 혼인한 연잉군 부부는 궁궐에서 생활하며 어른이 되어 갔다. 연잉군이 19세가 되던 해 궁궐 밖에 마련한 연잉군 부부의 살림집으로 출합하게 되었다. 숙종은 연잉군 부부의 살림집으로 여러 논의 끝에 북부 순화방에 있던 효종의 딸 숙휘공주와 인평위(寅平尉) 정제현 부부가 살았던 옛 집을 사주었다. 숙종은 연잉군 부부의 살림집에 ‘양성(養性)’이라는 헌명을 지어 주고, 시 두 수를 새겨서 걸어두도록 하였다. 이곳이 영조의 잠저인 창의궁(彰義宮)이다. 연잉군 부부가 살 궁가(宮家)의 수리가 마무리되어 가자 숙종은 1710년(숙종 36) 9월 30일에 다음 해 봄 사이에 연잉군이 출합해야 하니 예조에 좋은 날을 정하여 아뢰라고 명하였다. 처음에 연잉군 부부의 출합 날짜는 1711년(숙종 37) 2월 12일로 정하였으나 갑자기 숙종은 가을로 물려서 정하라고 하였다. 가을이 되자 다시 다음 해 1월 25일로 미뤄졌다. 그리고 1712년(숙종 38) 1월 12일에 또 다시 출합 날짜를 2월로 정하도록 하였다. 결국 연잉군 부부는 1달 후인 2월 12일에 출합하여 궁궐 밖 궁가 생활을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