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관은 근대적 외교 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설립된 상주 공사관으로서 자국의 대외정책을 수행하는 중심지였다. 일본은 조일수호조규 체결 후 4년 뒤인 1880년에 조선에 공사관을 설치하였는데, 임오군란(1882년)과 갑신정변(1884년)으로 공사관이 불타 버려 남산 기슭으로 옮기는 수난을 겪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의 11개국은 조약 체결 후 비준이 교환되자 경운궁(현 덕수궁) 주변의 정동에 주로 공사관을 설치하였다. 이로 인하여 정동은 공사관 거리로 불리기도 하였다. 다만 이탈리아는 1884년에 조약을 체결한 지 17년이 지난 1901년에 영사관을 개설하였고, 오스트리아와 덴마크 두 나라는 끝내 공사관을 개설하지 않았다. 그러나 1905년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함으로써 한국 주재 각국 공사관과 해외 주재 한국공사관은 모두 폐쇄되었다.
19세기 말부터 각국 공사관들이 정동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순우의 책에는 과거 정동에 있었거나,현재까지 존재하고 있는 공사관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미국공사관(1883년 5월 개설, 정동10번지), 영국공사관(1884년 4월 개설, 정동4번지), 독일영사관(1891년 후반, 서소문동 38번지이전), 러시아공사관(1885년 10월 개설, 정동15-1번지), 프랑스공사관(1889년 10월 정동 28번지이전), 벨기에영사관(1901년 10월 개설, 정동 16-1번지), 이탈리아공사관(1902년 11월 이전), 외교관구락부(1894년 정초식(定礎式), 정동 17번지) 등이 있었다.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이 자리한 서소문동 38번지 일대는 육영공원을 거쳐 독일영사관이 있던 자리이다. '구 러시아공사관'은 1977년 사적으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과거 프랑스공사관의 자리엔 오늘날 창덕여중(昌德女中)가 위치해있다. 과거 벨기에 영사관 자리(정동16-1번지)는 해방이후 하남호텔을 거쳐 오늘날 캐나다 대사관이 자리하고 있다. 외교관구락부는 1892년 결성되어 프랑스공사관 인접가옥에서 회합을 갖다가, 1894년 정동 17번지에 건물을 신축하였다. 이후 1923년에 이 자리를 서울외국인학교가 매입하여 1957년까지 사용하였다. 현재는 프란치스코교육회관(Francisco Education Center)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 미국대사관저(정동 10번지), 영국대사관(정동 4번지), 성공회대성당(정동 3번지), 이화여고 구내(정동 29번지, 30번지, 31, 32번지)가 거의 변동이 없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