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8년(헌종 14) ~ 1896년(고종 33)】. 어윤중(魚允中).조사시찰단 단장,재정 전문가. 1877년 전라우도암행어사로 임명되어 지방행정을 정밀하게 조사하고 파격적인 개혁안을 내놓았지만 이때의 개혁안은 채택되지 못했다. 1881년에 조사시찰단(朝士視察團) 60명을 일본에 파견할 때 조사(朝士)의 한 사람으로 선발되었으며 재정·경제 부문을 담당하였다. 어윤중은 자신의 수행원인 유길준과 윤치호를 일본에서 더 공부하도록 남겨둔 뒤, 다른 수행원만 거느리고 한달 더 일본에 체류했다가 청나라 톈진[天津]에 가 있는 영선사 김윤식(金允植)과 합류하기 위해 청나라로 가서 중국의 개화정책을 견문하고 이 해 12월 귀국하였다. 어윤중은 일본·중국 시찰의 복명서를 국왕에게 제출하였다. 1893년에 동학도들이 보은집회를 열어 교조신원(敎祖伸寃)과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를 천명하였을 때, 양호순무사(兩湖巡撫使)로 임명, 파견되었다. 어윤중은 동학도들의 요구에 동정을 표시하였다. 1894년에 갑오경장 내각이 수립되자 탁지부대신이 되어 재정·경제부문의 대개혁을 단행하였다.1896년 2월 아관파천(俄館播遷)에 의해 갑오경장 내각이 붕괴되자 어윤중은 일본으로의 망명을 거절하고 고향인 보은으로 피신하려 경기도 용인을 지날 때 원한을 품은 향반 무리가 머슴을 동원하여 기습, 49세의 나이로 피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