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3】~【1939】.남궁억.일제강점기 황성신문 사장, 대한협회 회장, 배화학당 교사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교육자, 언론인. 1884년(고종 21) 영어학교인 동문학(同文學)을 수료하고 해관(海關)의 견습생으로 있다가, 1886년(고종 23) 내아문(內衙門) 부주사(副主事)가 되었다. 1896년 2월 아관파천 후에 관직을 사임하고, 그 해 7월 서재필(徐載弼)·이상재(李商在) 등과 독립협회를 창립하였다. 1898년 9월 나수연(羅壽淵)·유근(柳瑾) 등과 『황성신문(皇城新聞)』을 창간하고 사장에 취임하였다. 1907년 11월 권동진(權東鎭)·여병현(呂炳鉉)·유근·이우영(李宇榮)·오세창(吳世昌)·윤효정(尹孝定)·장지연(張志淵)·정운복(鄭雲復)·홍필주(洪弼周) 등과 대한협회(大韓協會)를 창립하고 회장으로 취임,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기관지로 『대한협회월보』와 『대한민보』를 발행하였다. 1908년 4월 강원도 지방의 애국계몽운동단체로 관동학회(關東學會)를 창립해 회장으로 활동하며, 교육구국운동 잡지로서 『교육월보』를 발행하였다. 1910년 8월 일본이 우리나라를 병탄하자 새세대 교육현장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생각, 그 해 10월 배화학당(培花學堂) 교사가 되었다. 1912년에는 상동청년학원(尙洞靑年學院) 원장을 겸하면서 독립사상 고취, 애국가사 보급, 한글서체 창안 및 보급에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