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9년 ~ 1916년】. 위안스카이(袁世凱). 청나라 말기의 군인, 중화제국의 초대 대통령.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두번의 문관 시험 실패 뒤에 청나라 여단에 입대하였다.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북양대신 이홍장의 명령으로 경군전적영무처차석(慶軍前敵營務處次席)으로 한성에 와서 대원군을 포로로 삼고 군란을 진압, 일본 세력을 견제하는 데 성공하고 통리조선통상교섭사의(統理朝鮮通商交涉事宜)가 되어 계속 주재하였다. 1884년 갑신정변 때 재빨리 창덕궁을 포위, 신정부를 조직한 개화당을 몰아내고 일본 군인들을 창덕궁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1885년 대원군을 귀국케 하고 1893년 청나라에서 신식 총포를 구입케 하고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나자 우리 나라 요청에 따라 청군을 파견케 하여, 이와 전후하여 진주한 일본군과 충돌, 청일전쟁을 유발시켰다. 1911년 10월 우창 봉기가 일어났을 때 그는 혁명당원들 편을 들어 난징 임시 의회에서 중화민국 임시 대총통으로 선출되었다. 1915년 12월 12일 그는 중화제국의 황제로서 자신의 통치를 선포하였으나 윈난성의 독군 차이에와 다른 성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그는 요독증으로 자신의 사망 3달 전에 1916년 3월 군주제를 포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