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2022-R1-08B
목차
조선황실의 마지막 공간 낙선재(樂善齋) 》 영친왕 이은(李垠)과 이방자(李方子) 여사의 정략결혼
Story
고종의 3남이자 순종의 동생인 영친왕 이은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이다. 11세(1907)의 나이에 일본에 인질로 끌려가 23세(1920)에 일본 황족의 딸이었던 이방자 여사와 결혼을 하였다. 이방자 여사의 회고록에 따르면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의 결혼은 일본의 군벌들이 정한 일이었다. 당시 황태자비의 유력한 후보로는 이치조카(一條家)의 도끼코(朝子) 공주와 구니노미야(久邇宮)의 나가코(良子) 공주, 그리고 이방자 여사가 후보에 올랐는데 일본 군벌의 원로로 최고의 권력을 지니고 있던 공작 야마가따(山縣有朋)가 도끼코 공주를 강력히 지지하여 그 외의 후보자는 이 핑계 저 핑계로 모두 반대를 했다고 한다. 또 여기에는 이방자 여사가 아이를 못 낳을 체질이라 하여 한·일 융화라는 미명 아래 조선 왕가를 절손시키자는 속셈도 작용하였다고 이방자 여사는 회고하였다.[1] 이후 이방자 여사가 아들을 낳자 불임설을 주장했던 전의(典醫) 3명이 모두 처형당했다고 한다.[2]
11세에 일본으로 건너와서 외로운 타국 생활을 이어나갔던 영친왕의 회한과 고독을 잘 보여주는 물건이 하나 있다. 바로 낙선재(樂善齋)의 조약돌이다. 그 날도 어린 영친왕은 아무것도 모른 채 생각시들과 막대기 총과 대나무를 깎은 칼을 가지고 낙선재(樂善齋)에서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가 들어오더니 영친왕이 입고 있던 한복을 벗기고 군복으로 갈아입혀 순종에게 데리고 갔다고 한다. 이에 순종은 “몸 건강히 잘가라.”며 얼굴이 붉어졌고 상궁들이 뒤에서 흐느껴 울었다. 이렇게 영문도 모른 채 일본으로 건너온 어린 영친왕은 부모와 형제, 궁녀들, 뛰놀던 궁궐이 너무 그리워 밤마다 남몰래 울었고 고종 황제께 낙선재 뜰에 있는 조약돌을 몇 개 보내달라고 편지를 보낸다. 이에 조선 궁중에서 마침 일본에 가는 사람이 있어 조약돌을 보냈는데 영친왕은 낙선재(樂善齋)에서 가져온 이 조약돌을 자신의 방에 두고 바라보면서 그리움과 향수를 달랬다고 한다.[3]
광복 이후에도 영친왕 이은의 귀국은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1963년 12월이 되어서야 고국 땅을 밟게 되었지만 이미 그는 실언증에다 기억상실에 걸린 상태였다. 그 후 그는 낙선재에 머물면서 7년간 병원 치료를 받았지만, 1970년 눈을 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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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 ↑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의 정략결혼은 1920년 6월, 프랑스 파리에서 발행되는 「自由大韓」(La Coree Libre) 잡지에 보도되기도 하였다. 「자유대한」은 1919년 9월, 파리 강화회의에 조선의 독립을 청원하러 갔던 상해 임시정부의 김구 박사가 파리에서 머물면서 항일투쟁을 하기 위해 발행하는 잡지였다. 그 기사의 내용은 영친왕과 이방자의 약혼을 고종이 강경히 반대했었다는 사실과 함께 영친왕 자신도 단호히 거절하여 결혼이 몇 번 연기되었지만 일본 정부는 여러 구실을 내세워 이 결혼을 강요했다는 것이었다. 이방자, 『세월이여, 왕조여』, 정음사, 1985, 34쪽 참조.
- ↑ 이방자, 『세월이여, 왕조여』, 정음사, 1985, 27-28쪽 참조.
- ↑ 이방자, 『세월이여, 왕조여』, 정음사, 1985, 52-56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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