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마지막 중전이자 순종황제의 비인 순정효황후 윤비는 서른 셋의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었다. 1910년 국권이 강탈될 때, 순정효황후는 병풍 뒤에서 어전회의가 진행되는 것을 엿듣고 있다가 친일파들이 순종에게 합방조약에 날인할 것을 강요하자 치마 속에 옥새(玉璽)를 감추지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숙부인 윤덕영(尹德榮)에게 강제로 빼앗겼다.인용 오류: <ref> 태그를 닫는 </ref> 태그가 없습니다 이후 1950년 9월 28일에 서울이 수복되고 휴전 협정이 체결되어 이승만 정부가 서울로 환도하면서 순정효황후 역시 다시 창덕궁 낙선재로 돌아가려 했으나, 이승만은 ‘창덕궁은 국유 재산’이라는 이유로 거부하면서 정릉의 인수재(仁修齋)에서 지내도록 하였다.[1] 이에 그녀는 이승만 정부와의 끈질기고도 외로운 싸움 끝에 낙선재를 도로 찾아 일본에 있던 영친왕 내외와 덕혜옹주를 불러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