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제례에서 제기는 제사상과 준소상에 차려진다. 제기의 배치는 정해진 규범이 있다. 그 규범은 공식(共食) 때의 상차림을 기초 원리로 하고 있으나, 그릇수와 위치는 예제의 등급질서를 기준으로 하였다. 이것은 전통의 계승과 국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예제사회의 특징 중 하나이다.
제사상의 변의 음식은 모두 요즈음으로 말하면, 식사 후의 간식에 해당한다. 그에 반해 두의 음식은 반찬이 주류를 이룬다. 이 제기들은 제상의 좌우 끝에 놓였다. 예기 「교특생」에서 변두를 짝수로 진설하는 것은 음양의 이치를 따른 것이라 하였다. 정(鼎)과 조(俎)를 홀수로 진설하는 것도 마찬가지의 뜻이다. 왜냐하면 희생은 양을 상징하며 그 외의 서물(庶物)은 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또 변두에 올리는 것은 수토(水土)의 산품으로서, 맛있는 것을 사용하지 않고 찬품이 많은 것을 귀하게 여기는데, 그것은 신명과 교유하는 뜻이며 맛있는 것을 먹는 도리가 아니라고 하였다.
준소상은 준을 차려놓는 상이다. 이 상은 의례 「사관례」에서, ‘준은 방과 실의 입구와의 사이에 진설한다. 두 개의 도제(陶製)의 옹(甕)과 그 대(臺)인 금(禁)을 놓는다’고 한 바와 같이, 당 안에서 좌우로 나뉘어있는 실과 방 앞에 설치해야 한다. 그런데 종묘는 당의 구조가 다르므로 신실의 신문 안에 차리는 것이 아니라, 신문 밖에 설치하는 것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준은 의식 때 술을 따르는 것과 관련된 여러 장치 전체를 가리키는 호칭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제기들을 올리는 방법이 정조 15년 7월에 개정되었다. 국왕이 직접 제사지낼 때는 제기를 받드는 관원이 42원이지만, 대행할 때는 으레 15원을 뽑아 돌아가면서 받들어 올리기 때문에 한 사람이 세 번씩 번갈아 드나들게 된다. 그런데 이들이 왕래할 때 동쪽의 신문(神門)으로 나와 남쪽의 신문으로 들어가니, 이런 과정에서 땀이 흘러 정결하지 못할 뿐 아니라, 반드시 제기를 올리는 것이 가끔 중단되는 상황을 부르게 된다. 그래서 맨 처음 제기를 올릴 때는 관례대로 동쪽 신문에서 나오되, 두 번째 이후에는 남쪽 신문 밖에 별도로 찬막(饌幕)을 설치하여 희생을 담은 그릇을 미리 봉안해두도록 하고, 제기를 올리는 관원이 첫 번째와 두 번째 제기를 올린 뒤에는 동문으로 나오지 말고 곧바로 남문으로 가게 하여, 전사관(典祀官)이 희생그릇을 정리하여 차례로 받들어 전달함으로써 계속해서 올릴 수 있는 방법으로 삼았다. 영녕전의 제향관이 있는 곳에도 아울러 이렇게 하도록 하고, 태묘등록(太廟謄錄)에 기록하여 매년 추향대제에 정식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