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1-004
목차
경운궁 대화재
Story
경운궁 영역의 화재는 총 3번 있었다. 첫번째는 1900년 10월 14일 왕의 어진을 모신 진전에서의 화재, 1901년 10월 16일 왕실 도서관이었던 수옥헌에서의 화재, 1904년 4월 14일 대화재 등이다. 특히 1904년의 대화재로 인하여 함녕전을 비롯하여 중화전과 즉조당, 석어당, 경효전, 흠문각 등 중요 전각들이 순식간에 소실된 사건이다. 함녕전 아궁이에 밤 10시에 발화되어 중화전과 즉조당까지 번져 모두 불타버린 사건이다. 이 사건 당시 고종은 자신의 임시 거처를 왕립도서관인 수옥헌으로 그 거처를 옮겼다. 수옥헌은 당시 왕립도서관(King's Library)의 기능을 하였는데, 미국공사관 바로 옆에 있었다. 고종은 이곳에 있으면서 미관파천_시도를 하였다.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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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1-004 | Story | Episode | 경운궁 대화재 | http://dh.aks.ac.kr/hanyang2/wiki/index.php/E1-004 |
Contextu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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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1-005 | 미관파천_시도 | isRelatedTo | 고종은 덕수궁이 불타자 수옥헌으로 피신처를 옮겨 유사시 미관파천_시도를 계획하였다. | |
E1-005 | 덕수궁_함녕전 | isRelatedTo | 덕수궁 화재는 함녕전 온돌에서 시작되었다. | |
E1-005 | 조선_고종 | isRelatedTo | 고종은 화재 당일(1904년 4월 14일) 밤 11시 황태자를 동반하여 평성문을 통해 경운궁을 나와 수옥헌으로 피신했다. | |
E1-005 | 덕수궁_수옥헌 | isRelatedTo | 1899년 지어진 수옥헌은 1901년 11월 화재가 나서 다시 2층으로 지어졌으며 왕립도서관 기능을 하였는데, 덕수궁 화재 이후 고종이 집무를 보던 곳으로 변경되었다. |
Web Re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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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조선왕조실록 > 고종실록 | 고종 41년 4월 14일: 경운궁이 불타다 | http://sillok.history.go.kr/id/kza_14104014_001 | |
사진 | 연합뉴스 | [조선을 사랑한 영(英) 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경운궁 일(日) 방화 추정’ 특종 뒤 해고당해… 대한매일신보 창간 (2018-08-10, 고베 민나리 기자, 싱가포르 오경진 기자) | 경운궁 정문인 대안문을 지나는 어가행렬. [국립고궁박물관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0810016002&wlog_tag3=naver |
- type: 해설, 참고, 원문 / 사진, 동영상, 도면, 그림, 지도, 3D_지도, 3D_모델
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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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 이민원, 「일본의 침략과 대한제국의 경운궁」, 『한국독립운동사연구』22, 2004. | KCI |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0978246 |
논문 | 이민아, 『고종대 궁궐 의례공간 정비의 지향』,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21. | ||
저서 | 장경호, 『고종의 미관파천 시도와 한미관계(1894~1905)』, 경인문화사, 2021. |
Notes
Semantic Network Gr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