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산마"의 두 판 사이의 차이
(→Web Resource) |
(→Web Resource) |
||
59번째 줄: | 59번째 줄: | ||
| 참고 ||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 > 알림 뉴스 > 코리아넷뉴스 (2019-03-20) || 독립선언을 세계에 알린 앨버트 W. 테일러 || 앨버트 테일러가 촬영한 고종의 국장 모습 사진 수록 || https://www.kocis.go.kr/koreanet/view.do?seq=1012341 | | 참고 ||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 > 알림 뉴스 > 코리아넷뉴스 (2019-03-20) || 독립선언을 세계에 알린 앨버트 W. 테일러 || 앨버트 테일러가 촬영한 고종의 국장 모습 사진 수록 || https://www.kocis.go.kr/koreanet/view.do?seq=1012341 | ||
|- | |- | ||
− | | 참고 || 서울역사박물관 > 서울역사아카이브 >근현대서울사진 > 컬렉션 > 정치외교 > 황실 || 이태왕(고종) 장의 광경 12 || 명칭 이태왕(고종) 장의 광경 12 / 아카이브번호 <103507> / 자료출처 고종장례 / 내용 1919년 3월 3일에 거행된 고종 국장 당시 장의 행렬의 광경을 담은 시리즈엽서(16매)의 하나이다. 사진은 장제장(葬祭場, 영결식장)인 훈련원(訓鍊院, 황금정 6정목 18번지 일대)에서 출발하여 장지인 금곡 홍릉(金谷 洪陵) 이동하는 행로 중 죽산마(竹散馬, 안장이 없는 것)와 죽안마(竹鞍馬, 안장이 있는 것)가 지나고 있는 장면이다. 앞쪽에는 수레에 얹은 방상씨(方相氏)가 보이고, 채여(彩轝)가 뒤를 따르고 있다. 조선식 인산행렬은 덕수궁 영성문(永成門)에서 따로 출발하여 종로(鐘路)를 경유하여 동대문에 대기하였다가 훈련원 쪽에서 나오는 대여행렬과 합류하였다. || https://museum.seoul.go.kr/archive/archiveView.do?type=D&arcvGroupNo=4334&arcvMetaSeq=39356&arcvNo=103507 | + | | 참고 || 서울역사박물관 > 서울역사아카이브 > 근현대서울사진 > 컬렉션 > 정치외교 > 황실 || 이태왕(고종) 장의 광경 12 || 명칭 이태왕(고종) 장의 광경 12 / 아카이브번호 <103507> / 자료출처 고종장례 / 내용 1919년 3월 3일에 거행된 고종 국장 당시 장의 행렬의 광경을 담은 시리즈엽서(16매)의 하나이다. 사진은 장제장(葬祭場, 영결식장)인 훈련원(訓鍊院, 황금정 6정목 18번지 일대)에서 출발하여 장지인 금곡 홍릉(金谷 洪陵) 이동하는 행로 중 죽산마(竹散馬, 안장이 없는 것)와 죽안마(竹鞍馬, 안장이 있는 것)가 지나고 있는 장면이다. 앞쪽에는 수레에 얹은 방상씨(方相氏)가 보이고, 채여(彩轝)가 뒤를 따르고 있다. 조선식 인산행렬은 덕수궁 영성문(永成門)에서 따로 출발하여 종로(鐘路)를 경유하여 동대문에 대기하였다가 훈련원 쪽에서 나오는 대여행렬과 합류하였다. || https://museum.seoul.go.kr/archive/archiveView.do?type=D&arcvGroupNo=4334&arcvMetaSeq=39356&arcvNo=103507 |
|- | |- | ||
| 참고 || 국립고궁박물관 > 소장품 > 소장품 안내 > 수장고 속 왕실유물 이야기 || 1900년, 파리 ||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한국 전시관이 자리를 잡았다. 한국관은 경복궁 근정전의 모습을 토대로 지어졌다. 당시 프랑스 파리에서 발간되던 일간지인 르 쁘띠 주르날(Le Petit Journal)에는 한국 전시관의 모습을 담은 삽화가 실렸다(1900년 12월 16일자). || https://www.gogung.go.kr/issueCultureView.do?bbsSeq=6849 | | 참고 || 국립고궁박물관 > 소장품 > 소장품 안내 > 수장고 속 왕실유물 이야기 || 1900년, 파리 ||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한국 전시관이 자리를 잡았다. 한국관은 경복궁 근정전의 모습을 토대로 지어졌다. 당시 프랑스 파리에서 발간되던 일간지인 르 쁘띠 주르날(Le Petit Journal)에는 한국 전시관의 모습을 담은 삽화가 실렸다(1900년 12월 16일자). || https://www.gogung.go.kr/issueCultureView.do?bbsSeq=6849 |
2021년 9월 8일 (수) 11:11 판
목차
Definition
조선시대 국장의 발인 행렬에 사용되는 말 모양의 흉의장(凶儀仗)이다. 싸리나무와 마른풀, 가마니 등을 엮어서 만든 의장용 말로, 등에 안장이 없는 죽산마(竹散馬)와 안장이 있는 죽안마(竹鞍馬)가 짝이 되어 사용되었다. 죽산마는 검은색으로 칠을 하고, 죽안마는 다양한 색으로 칠해졌다. 발인 행렬에서 작은 가마인 채여(彩輿)의 좌우에 위치하였으며 수레에 실려 운반되었다. 왕은 죽산마 2필, 죽안마 10필이 사용되었고, 왕비는 죽산마 2필, 죽안마 4필이 사용되었다. 즉위 전에 훙서한 왕세자·왕세자빈·왕세손 등도 죽산마 2필, 죽안마 4필이 사용되었다. 발인 의식이 끝나면 죽산마와 죽안마, 청수안마, 자수안마 등은 정결한 장소에서 불태웠다.[1]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id | class | groupName | partName | label | hangeul | hanja | english | infoUrl | iconUrl |
---|---|---|---|---|---|---|---|---|---|
죽산마 | Object | 물품 | 죽산마(竹散馬) | 죽산마 | 竹散馬 | http://dh.aks.ac.kr/hanyang2/wiki/index.php/죽산마 |
Contextual Relations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note |
---|---|---|---|---|
고종_국장_행렬_사진 | 고종_국장_행렬_삽화 | isRelatedTo | ||
어장의사진첩 | 방상씨 | isRelatedTo | ||
어장의사진첩 | 죽안마 | isRelatedTo | ||
덕수궁국장화첩 | 고종_국장_죽산마_사진 | isPostedIn | ||
고종_국장_죽안마_사진 | 앨버트_테일러 | creator | ||
고종_국장_행렬_사진 | 앨버트_테일러 | creator | ||
고종_국장_행렬_사진 | 고종_국장_죽산마_사진 | hasPart | ||
고종_국장_죽산마_사진 | 죽산마 | depicts | ||
죽산마 | 죽안마 | isRelatedTo |
Web Resource
type | resource | title | description/caption | URL |
---|---|---|---|---|
해설 | 한국 기록유산 Encyves | 죽산마 | http://dh.aks.ac.kr/Encyves/wiki/index.php/죽산마 | |
해설 | 한국 기록유산 Encyves | 죽안마 | http://dh.aks.ac.kr/Encyves/wiki/index.php/죽안마 | |
참고 |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 > 알림 뉴스 > 코리아넷뉴스 (2019-03-20) | 독립선언을 세계에 알린 앨버트 W. 테일러 | 앨버트 테일러가 촬영한 고종의 국장 모습 사진 수록 | https://www.kocis.go.kr/koreanet/view.do?seq=1012341 |
참고 | 서울역사박물관 > 서울역사아카이브 > 근현대서울사진 > 컬렉션 > 정치외교 > 황실 | 이태왕(고종) 장의 광경 12 | 명칭 이태왕(고종) 장의 광경 12 / 아카이브번호 <103507> / 자료출처 고종장례 / 내용 1919년 3월 3일에 거행된 고종 국장 당시 장의 행렬의 광경을 담은 시리즈엽서(16매)의 하나이다. 사진은 장제장(葬祭場, 영결식장)인 훈련원(訓鍊院, 황금정 6정목 18번지 일대)에서 출발하여 장지인 금곡 홍릉(金谷 洪陵) 이동하는 행로 중 죽산마(竹散馬, 안장이 없는 것)와 죽안마(竹鞍馬, 안장이 있는 것)가 지나고 있는 장면이다. 앞쪽에는 수레에 얹은 방상씨(方相氏)가 보이고, 채여(彩轝)가 뒤를 따르고 있다. 조선식 인산행렬은 덕수궁 영성문(永成門)에서 따로 출발하여 종로(鐘路)를 경유하여 동대문에 대기하였다가 훈련원 쪽에서 나오는 대여행렬과 합류하였다. | https://museum.seoul.go.kr/archive/archiveView.do?type=D&arcvGroupNo=4334&arcvMetaSeq=39356&arcvNo=103507 |
참고 | 국립고궁박물관 > 소장품 > 소장품 안내 > 수장고 속 왕실유물 이야기 | 1900년, 파리 |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한국 전시관이 자리를 잡았다. 한국관은 경복궁 근정전의 모습을 토대로 지어졌다. 당시 프랑스 파리에서 발간되던 일간지인 르 쁘띠 주르날(Le Petit Journal)에는 한국 전시관의 모습을 담은 삽화가 실렸다(1900년 12월 16일자). | https://www.gogung.go.kr/issueCultureView.do?bbsSeq=6849 |
참고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박물관 소식지 | 모습을 드러낸 은자의 나라, 서구의 시선으로 본 개항기 조선(『역사공감』 24, 2019, 조유재 학예연구원) | 고종 강제 퇴위에 반발하는 한성의 조선인들을 진압 하는 일본군을 묘사한 프랑스 신문 <르 프티 주르날 (Le Petit Journal)> (1907년 8월 10일 자) 뒤표지 삽화 | http://www.much.go.kr/webzine/vol24/sub2-3.html# |
참고 | 중앙선데이 | 고종 “대한은 만성의 것” 국민국가 선언…항일운동 불 질러/3·1운동, 임시정부 100주년 ④ (2019-02-09,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 르프티 주르날(Le Petit Journal) 관련 기사.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당시 프랑스 신문 ‘르프티 주르날(Le Petit Journal)’에 소개된 대한제국관. 45x30.8㎝. [사진 이돈수 소장] 소개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355867 |
참고 | 경향신문 | 1900년 파리박람회 한국관엔 ‘담뱃대·참빗’ (2010-05-10, 나영석 기자) | 프랑스 신문 ‘르 프디 주르날(Le Petit Journal)’이 1900년 4월 열린 파리 만국박람회 직후 보도한 한국관 관련 기사 원문과 한국관 소개 삽화. 2012년 여수박람회 조직위는 로세르 탈레스 국제박람회기구 사무총장으로부터 이 신문을 기증받아 10일 공개했다. | https://www.khan.co.kr/local/Honam/article/201005101806425 |
참고 | 한국일보 | [기억할 오늘] 대한제국 군대 해산(7.31) (2018-07-31, 최윤필 기자) | 군대 해산에 맞서 봉기한 대한제국군과 일본군이 1907년 8월 1일 '남대문전투'를 치렀다. 프랑스 매체(Le Petit Journal) 삽화 |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807300909340482 |
- type: 해설, 참고, 원문 / 사진, 동영상, 도면, 그림, 지도, 3D_지도, 3D_모델
Bibliography
type | bibliographic index | online resource | url |
---|---|---|---|
논문 | 김세원, 「1900년 파리세계박람회와 유럽 한류의 기원」, 『국제지역학회 춘계학술발표논문집 2013』권0호, 국제지역학회, 2013. | KISS | https://kiss.kstudy.com/thesis/thesis-view.asp?key=3189350 |
논문 | 자오성웨이·리샤오위(엮은이), 이성현(옮긴이), 「주르날 제국주의 : 프랑스 화보가 본 중국 그리고 아시아」, 『현실문화』, 현실문화연구, 2019. | 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 http://www.riss.kr/link?id=M15094903 |
논문 | 나애리, 「1907년 프랑스 신문에 나타난 한국과 한국인들의 이미지」, 『프랑스문화연구』 11, 한국프랑스문화학회, 2005. | KISS / 네이버 학술정보 > 학술논문 | https://kiss.kstudy.com/thesis/thesis-view.asp?key=3378058 / https://academic.naver.com/article.naver?doc_id=442305152 |
단행본 | 고연희·김동준·정민 외, 『한국학, 그림을 그리다 : 우리 시대 인문학자 32인의 그림 읽기, 문화 그리기』, 태학사, 2013. | 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 http://www.riss.kr/link?id=M13326174 |
단행본 | 정민·김동준 외, 『한국학 그림과 만나다』, 태학사, 2016. | 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 http://www.riss.kr/link?id=M12316603 |
단행본 | 국립중앙박물관, 『19세기 말~20세기 초 서양인이 본 한국』(국립중앙박물관 역사자료총서 17), 2017. | 국립중앙박물관 누리집(http://www.museum.go.kr) > 학술 > 역사학 > 연구보고서 | https://www.museum.go.kr/site/main/archive/report/article_13768 |
- type: 단행본, 논문, 도록, 자료집
- online resource: KCI, RISS, DBpia, 네이버 학술정보 .....
Notes
Semantic Network Graph
http://dh.aks.ac.kr/Encyves/wiki/index.php/죽산마
정의
조선시대 국장의 발인 행렬에 사용되는 말 모양의 흉의장(凶儀仗)이다.
내용
싸리나무와 마른풀, 가마니 등을 엮어서 만든 의장용 말로, 등에 안장이 없는 죽산마(竹散馬)와 안장이 있는 죽안마(竹鞍馬)가 짝이 되어 사용되었다.
죽산마는 검은색으로 칠을 하고, 죽안마는 다양한 색으로 칠해졌다.
발인 행렬에서 작은 가마인 채여(彩輿)의 좌우에 위치하였으며 수레에 실려 운반되었다.
왕은 죽산마 2필, 죽안마 10필이 사용되었고, 왕비는 죽산마 2필, 죽안마 4필이 사용되었다. 즉위 전에 훙서한 왕세자·왕세자빈·왕세손 등도 죽산마 2필, 죽안마 4필이 사용되었다.
발인 의식이 끝나면 죽산마와 죽안마, 청수안마, 자수안마 등은 정결한 장소에서 불태웠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죽산마(竹散馬) | 죽안마(竹鞍馬) | A는 B와 같이 사용되었다 | A ekc:goesWith B |
죽산마(竹散馬) | 『숙종국장도감의궤(肅宗國葬都監儀軌)』 | B는 A에 그려져 있다 | B ekc:isDepictedIn A |
죽산마(竹散馬) | 『인현왕후국장도감의궤(仁顯王后國葬都監儀軌)』 | B는 A에 그려져 있다 | B ekc:isDepictedIn A |
죽산마(竹散馬) | 『경종국장도감의궤(景宗國葬都監儀軌)』 | B는 A에 그려져 있다 | B ekc:isDepictedIn A |
죽산마(竹散馬) | 『선의왕후국장도감의궤(宣懿王后國葬都監儀軌)』 | B는 A에 그려져 있다 | B ekc:isDepictedIn A |
죽산마(竹散馬) | 『정조국장도감의궤(正祖國葬都監儀軌)』 | B는 A에 그려져 있다 | B ekc:isDepictedIn A |
죽산마(竹散馬) | 『효의왕후국장도감의궤(孝懿王后國葬都監儀軌)』 | B는 A에 그려져 있다 | B ekc:isDepictedIn A |
죽산마(竹散馬) | 『순조국장도감의궤(純祖國葬都監儀軌)』 | B는 A에 그려져 있다 | B ekc:isDepictedIn A |
죽산마(竹散馬) | 『의소세손예장도감의궤(懿昭世孫禮葬都監儀軌)』 | B는 A에 그려져 있다 | B ekc:isDepictedIn A |
죽산마(竹散馬) | 발인(發引) | A는 B에 사용되었다 | A ekc:isUsedIn B |
시각자료
갤러리
- 궁중기록화 물품 죽산마 순조국장도감의궤이 중박.jpg
죽산마[1]
- 궁중기록화 물품 죽산마 정조국장도감의궤 규장각.jpg
죽산마[2]
- 궁중기록화 물품 죽산마 효의왕후국장도감의궤이 중박.jpg
죽산마[3]
- 궁중기록화 물품 죽산마 숙종국장도감의궤하 중박.jpg
죽산마[4]
- 궁중기록화 물품 죽산마 인현왕후국장도감의궤하 중박.jpg
죽산마[5]
- 궁중기록화 물품 죽산마 경종국장도감의궤하 중박.jpg
죽산마[6]
- 궁중기록화 물품 죽산마 선의왕후국장도감의궤하 중박.jpg
죽산마[7]
- 궁중기록화 물품 죽산마 의소세손예장도감의궤하 중박.jpg
죽산마[8]
주석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더 읽을거리
- 이현진, 「정조 초 영조의 국장 절차와 의미」, 『태동고전연구』제27호,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2011.
- 이현진, 『왕의 죽음, 정조의 국장』, 글항아리, 2015.
- 이현진, 『조선왕실의 상장례』, 신구문화사, 2017.
http://dh.aks.ac.kr/Encyves/wiki/index.php/죽산마
정의
조선시대 국장의 발인 행렬에 사용되는 말 모양의 흉의장(凶儀仗)이다.
내용
싸리나무와 마른풀, 가마니 등을 엮어서 만든 의장용 말로, 등에 안장이 없는 죽산마(竹散馬)와 안장이 있는 죽안마(竹鞍馬)가 짝이 되어 사용되었다.
죽산마는 검은색으로 칠을 하고, 죽안마는 다양한 색으로 칠해졌다.
발인 행렬에서 작은 가마인 채여(彩輿)의 좌우에 위치하였으며 수레에 실려 운반되었다.
왕은 죽산마 2필, 죽안마 10필이 사용되었고, 왕비는 죽산마 2필, 죽안마 4필이 사용되었다. 즉위 전에 훙서한 왕세자·왕세자빈·왕세손 등도 죽산마 2필, 죽안마 4필이 사용되었다.
발인 의식이 끝나면 죽산마와 죽안마, 청수안마, 자수안마 등은 정결한 장소에서 불태웠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죽산마(竹散馬) | 죽안마(竹鞍馬) | A는 B와 같이 사용되었다 | A ekc:goesWith B |
죽산마(竹散馬) | 『숙종국장도감의궤(肅宗國葬都監儀軌)』 | B는 A에 그려져 있다 | B ekc:isDepictedIn A |
죽산마(竹散馬) | 『인현왕후국장도감의궤(仁顯王后國葬都監儀軌)』 | B는 A에 그려져 있다 | B ekc:isDepictedIn A |
죽산마(竹散馬) | 『경종국장도감의궤(景宗國葬都監儀軌)』 | B는 A에 그려져 있다 | B ekc:isDepictedIn A |
죽산마(竹散馬) | 『선의왕후국장도감의궤(宣懿王后國葬都監儀軌)』 | B는 A에 그려져 있다 | B ekc:isDepictedIn A |
죽산마(竹散馬) | 『정조국장도감의궤(正祖國葬都監儀軌)』 | B는 A에 그려져 있다 | B ekc:isDepictedIn A |
죽산마(竹散馬) | 『효의왕후국장도감의궤(孝懿王后國葬都監儀軌)』 | B는 A에 그려져 있다 | B ekc:isDepictedIn A |
죽산마(竹散馬) | 『순조국장도감의궤(純祖國葬都監儀軌)』 | B는 A에 그려져 있다 | B ekc:isDepictedIn A |
죽산마(竹散馬) | 『의소세손예장도감의궤(懿昭世孫禮葬都監儀軌)』 | B는 A에 그려져 있다 | B ekc:isDepictedIn A |
죽산마(竹散馬) | 발인(發引) | A는 B에 사용되었다 | A ekc:isUsedIn B |
시각자료
갤러리
- 궁중기록화 물품 죽산마 순조국장도감의궤이 중박.jpg
죽산마[1]
- 궁중기록화 물품 죽산마 정조국장도감의궤 규장각.jpg
죽산마[2]
- 궁중기록화 물품 죽산마 효의왕후국장도감의궤이 중박.jpg
죽산마[3]
- 궁중기록화 물품 죽산마 숙종국장도감의궤하 중박.jpg
죽산마[4]
- 궁중기록화 물품 죽산마 인현왕후국장도감의궤하 중박.jpg
죽산마[5]
- 궁중기록화 물품 죽산마 경종국장도감의궤하 중박.jpg
죽산마[6]
- 궁중기록화 물품 죽산마 선의왕후국장도감의궤하 중박.jpg
죽산마[7]
- 궁중기록화 물품 죽산마 의소세손예장도감의궤하 중박.jpg
죽산마[8]
주석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더 읽을거리
- 이현진, 「정조 초 영조의 국장 절차와 의미」, 『태동고전연구』제27호,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2011.
- 이현진, 『왕의 죽음, 정조의 국장』, 글항아리, 2015.
- 이현진, 『조선왕실의 상장례』, 신구문화사,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