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추(迎秋)’란 ‘가을을 맞이한다’는 뜻이다. 건춘과 마찬가지로 영추 또한 『예기』의 「월령」 편에서 다음과 같은 용례를 찾을 수 있다. “이 달에는 입추가 있으므로 입추 사흘 전에 태사가 천자를 뵙고 ‘아무 날이 입추이니 천지의 성덕이 금위(金位)에 있습니다’ 하고 아뢴다. 천자는 재계하다가 입추일에 삼공·구경·제후·대부들을 친히 거느리고 서쪽 교외에 나가 ‘가을을 맞는다[迎秋].’” 후한 말기의 대표적 유학자로 『예기』 주석의 틀을 마련한 정현(鄭玄, 127~200년)은 “영추라는 것은 백제(白帝) 백초거(白招拒)를 서쪽 교외에 나가서 제사지내는 것이다”고 했다. 가을을 맞이함, 곧 영추는 서방의 백제(白帝)를 제사지내는 행위로 풀이한 것이다. 현판은 경복궁을 중건할 때 허계(許棨, 1798~1866년)가 썼다. 허계는 경복궁 영건도감 제조를 지냈다가 그 후 판의금부사에 오른 무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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