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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4일 (목) 18:00 판

에피소드

인조와 소현세자빈 강씨의 갈등 속에 치러진 봉림대군 부부의 책봉 의식 》 봉림대군을 왕세자로, 부인을 세자빈으로 책봉하다.

Story

1645년(인조 23) 윤6월 2일 왕실의 종통 교체를 확정한 후 8월 20일 봉림대군의 왕세자 책봉 준비를 진행하던 중 궁중에 저주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인조는 소현세자빈 강씨의 궁녀 두 사람을 내옥에 안치하였는데, 모두 고문을 받다가 죽었다. 그 가운데 상궁 최씨는 원손의 보모였다. 인조는 곧 원손이라는 칭호를 그대로 쓴 관리들을 치죄하도록 하였다. 8월 26일에는 소현세자빈의 형제인 강문성‧강문명‧강문두‧강문벽을 각각 제주도와 진도, 강원도 흡곡과 평해와 같은 절도와 궁벽한 고을에 각각 나누어 유배하였다. 새로 지명된 봉림대군 부부의 왕세자와 왕세자빈 책례 날짜가 계속해서 미뤄지는 가운데 사간원과 사헌부에서 저위가 정해진 지 지금 벌써 3개월이 되었는데도 책봉의 명이 없으니 출산을 앞둔 빈궁은 나중에 하더라도 동궁의 책봉례를 먼저 거행할 것을 두 차례 더 아뢰었으나 인조는 모두 따르지 않았다. 9월 1일 예조에서 새로 지명된 세자빈 장씨의 분만을 기다려서 형편을 보아 다시 의논할 것을 아뢰었고, 인조가 따랐다. 9월 9일 세자빈 장씨가 궁 밖 사저에서 출산을 하였다. 다음날인 9월 10일 궁 안에서는 소현세자빈의 궁녀 계향과 계환이 저주의 일로 국문을 받다 모두 자복하지 않고 내옥에서 죽는 일이 또 발생하였다. 인조와 큰며느리 소현세자빈 사이의 갈등이 점점 고조되는 사이 1645년(인조 23) 9월 27일에 봉림대군을 왕세자로, 부인 장씨를 세자빈으로 책봉하는 의식인 책례가 창경궁 명정전에서 행해졌다. 먼저 묘시(卯時)에 왕세자 책봉례를 행하였다. 오시(午時)에 빈궁의 책례를 행하였다. 명정전에서 진행되는 왕세자 책봉의식과 달리 왕세자빈의 책봉의식은 정전인 명정전에서 왕명을 수행하는 사자가 왕세자빈의 처소인 창덕궁으로 가서 세 종류의 의물을 전달하는 의식이다. 따라서 사자인 영의정 김류와 부사인 예조판서 김육이 조복을 갖추고 차례로 들어와 창경궁 명정전 정중의 배위에 나아가서 먼저 사배를 행하고, 이래가 또 교명(敎命)‧죽책(竹冊)‧인수(印綬)를 전하자, 김류 등이 이를 받아 가지고 창경궁 명정전을 출발하여 창덕궁으로 갔다. 빈궁은 내명부와 함께 창덕궁 대내에서 의식대로 행례하였다. 장씨가 출산한 지 삼칠일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치러진 책봉 의식이었다. 왕세자빈의 죽책문(竹冊文)에는 “착한 행실과 유순한 규범은 타고난 천성이고”, “집안을 화목하게 하였다”, “아, 오직 공손하고 검소하여야만 그 자리를 지킬 수 있고, 오직 경계하고 삼가야만 그 명예를 보존할 수 있는 것이니, 아름다운 명예를 밝게 이어 여자가 도모해야 할 훌륭한 법도를 어기지 말고, 밝은 훈계를 공경히 복종하여 대궐 안에서 잘 다스리려던 처음 먹은 마음을 더욱 면려하라. 시작이 어려운 것이 아니니 유종의 미를 이루어야 한다.” 라고 하였다. 길고 힘들었던 심양 볼모 생활도 함께 잘 견뎌냈던 형님인 소현세자빈 대신 극심한 가족 갈등 상황에서 새로운 왕세자빈으로 책봉되기 위해 죽책을 받아든 장씨의 마음은 어찌 두렵고 떨리지 않겠는가?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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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2022-R2-21B Story Episode 봉림대군을 왕세자로, 부인을 세자빈으로 책봉하다. http://dh.aks.ac.kr/hanyang2/wiki/index.php/E2022-R2-21B

Contextu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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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2022-R2-21B 민회빈_강씨 isRelatedTo
E2022-R2-21B 효종인선왕후_왕세자급빈궁책례도감의궤:1645 isRelated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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