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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은 1686년(숙종 12) 3월 3일 자신의 나이가 장차 30세인데 아직도 후사가 없으니 국가의 대계를 위하여 후궁을 간택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간택 처자의 나이는 16세부터 21세로 한정하였고, 곧이어 금혼령(禁婚令)이 내려졌다. 서울만 3월 10일까지 처녀 단자를 받도록 하였다. 간택 단자에는 처녀의 성씨와 생년·월·일·시 및 사조단자(四祖單子), 사는 곳을 적었다. 한성부에 제출된 48장의 처녀 간택 단자 가운데 자격 미달인 단자를 빼고 3월 19일 진시(辰時)로 예정된 숙의 초간택 때 궐에 나아갈 처녀 명단 20명이 추려졌다. 그 가운데 두 명은 탈이 있다고 따로 기록하여 올렸다. 창경궁 명정전 서쪽에 자리 잡은 숭문당(崇文堂)이 숙의 간택 장소로 정해졌다. 숙의 간택에 참여할 처자들은 창경궁 남쪽으로 나 있는 선인문(宣仁門)을 통해 궐에 나아오도록 하였다. 창경궁 숭문당에서 치러진 초간택에 참여한 처녀 가운데 3월 21일 재간택에 궐에 나아갈 명단을 적은 예조 단자가 3월 20일에 올라왔다. 재간택 처녀 명단에 통덕랑 강진상의 딸, 주부 송이석의 딸, 청양 현감 김창국의 딸 세 명의 후보가 적혀있었다. 김창국의 딸은 초간택 처자 명단에는 보이지 않다가 이때 처음 등장한다. 그녀는 부친의 임소에 있어서 아직 올라오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에 숙종은 “내일 재간택 때 마땅히 참여해야 할 처자 중에 탈이 있는 자는 승정원에서 해당 부에 분부하여 재촉하게 하고, 본가에 탐문하여 오늘 안에 들어오는지의 여부를 즉시 아뢰도록 하라”고 전교하였다. 한성부에서 이미 날이 저물어 김창국의 딸이 재간택 날짜에 맞춰 올라 올 수 있는 지의 여부를 미리 헤아릴 수 없다고 보고하자, 숙종은 재간택 날짜를 하루 연기하도록 하였다. 숙의 재간택 날짜가 3월 22일 진시와 사시 사이인 손시(巽時)로 갑자기 변경되었다. 숙종의 특별한 관심과 배려로 무사히 재간택에 참여한 김창국의 딸 김씨는 3월 28일 묘시와 진시 사이인 을시에 숙의 삼간택 때 궐에 나아가는 처녀의 명단에 통덕랑 강진상의 딸, 주부 송이석의 딸과 함께 올라갔다. 삼간택 시간을 손시에서 오시로 변경한 치러진 최종 삼간택에서 청양 현감 김창국의 딸이 종2품 숙의로 간택되었다. 숙종이 재간택 날짜를 미뤄서 숙의로 간택할 정도로 기대했던 숙의 김씨는 7개월 후 종1품 귀인으로 승봉되었다. 그러나 숙의 김씨는 숙종의 기대와 달리 자녀를 낳지 못하였다. 그리고 기사환국 때 숙종의 미움을 받아 인현왕후와 같이 폐출되었다가 갑술환국으로 다시 복권되었다. 그 후 숙종과 인원왕후 가례 때 후궁 최고 품계인 정1품 빈(嬪)의 지위에 올랐다. 그녀가 바로 노론 명문가 출신으로 숙종의 후궁이 된 영빈(寧嬪) 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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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은 1686년(숙종 12) 3월 3일 자신의 나이가 장차 30세인데 아직도 후사가 없으니 국가의 대계를 위하여 후궁을 간택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간택 처자의 나이는 16세부터 21세로 한정하였고, 곧이어 금혼령(禁婚令)이 내려졌다. 서울만 3월 10일까지 처녀 단자를 받도록 하였다. 간택 단자에는 처녀의 성씨와 생년·월·일·시 및 사조단자(四祖單子), 사는 곳을 적었다. 한성부에 제출된 48장의 처녀 간택 단자 가운데 자격 미달인 단자를 빼고 3월 19일 진시(辰時)로 예정된 숙의 초간택 때 궐에 나아갈 처녀 명단 20명이 추려졌다. 그 가운데 두 명은 탈이 있다고 따로 기록하여 올렸다. 창경궁 명정전 서쪽에 자리 잡은 숭문당(崇文堂)이 숙의 간택 장소로 정해졌다. 숙의 간택에 참여할 처자들은 창경궁 남쪽으로 나 있는 선인문(宣仁門)을 통해 궐에 나아오도록 하였다. 창경궁 숭문당에서 치러진 초간택에 참여한 처녀 가운데 3월 21일 재간택에 궐에 나아갈 명단을 적은 예조 단자가 3월 20일에 올라왔다. 재간택 처녀 명단에 통덕랑 강진상의 딸, 주부 송이석의 딸, 청양 현감 김창국의 딸 세 명의 후보가 적혀있었다. 김창국의 딸은 초간택 처자 명단에는 보이지 않다가 이때 처음 등장한다. 그녀는 부친의 임소에 있어서 아직 올라오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에 숙종은 “내일 재간택 때 마땅히 참여해야 할 처자 중에 탈이 있는 자는 승정원에서 해당 부에 분부하여 재촉하게 하고, 본가에 탐문하여 오늘 안에 들어오는지의 여부를 즉시 아뢰도록 하라”고 전교하였다. 한성부에서 이미 날이 저물어 김창국의 딸이 재간택 날짜에 맞춰 올라 올 수 있는 지의 여부를 미리 헤아릴 수 없다고 보고하자, 숙종은 재간택 날짜를 하루 연기하도록 하였다. 숙의 재간택 날짜가 3월 22일 진시와 사시 사이인 손시(巽時)로 갑자기 변경되었다. 숙종의 특별한 관심과 배려로 무사히 재간택에 참여한 김창국의 딸 김씨는 3월 28일 묘시와 진시 사이인 을시에 숙의 삼간택 때 궐에 나아가는 처녀의 명단에 통덕랑 강진상의 딸, 주부 송이석의 딸과 함께 올라갔다. 삼간택 시간을 손시에서 오시로 변경하여 치러진 최종 삼간택에서 청양 현감 김창국의 딸이 종2품 숙의로 간택되었다. 숙종이 재간택 날짜를 미뤄서 숙의로 간택할 정도로 기대했던 숙의 김씨는 7개월 후 종1품 귀인으로 승봉되었다. 그러나 숙의 김씨는 숙종의 기대와 달리 자녀를 낳지 못하였다. 그리고 기사환국 때 숙종의 미움을 받아 인현왕후와 같이 폐출되었다가 갑술환국으로 다시 복권되었다. 그 후 숙종과 인원왕후 가례 때 후궁 최고 품계인 정1품 빈(嬪)의 지위에 올랐다. 그녀가 바로 노론 명문가 출신으로 숙종의 후궁이 된 영빈(寧嬪) 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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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3일 (목) 09:15 판

에피소드

숙종 후궁 숙의 김씨와 헌종 후궁 경빈 김씨의 삼간택 이야기 》 재간택 날짜를 하루 미뤄 숙종의 후궁이 된 숙의 김씨와 창경궁 숭문당

Story

숙종은 1686년(숙종 12) 3월 3일 자신의 나이가 장차 30세인데 아직도 후사가 없으니 국가의 대계를 위하여 후궁을 간택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간택 처자의 나이는 16세부터 21세로 한정하였고, 곧이어 금혼령(禁婚令)이 내려졌다. 서울만 3월 10일까지 처녀 단자를 받도록 하였다. 간택 단자에는 처녀의 성씨와 생년·월·일·시 및 사조단자(四祖單子), 사는 곳을 적었다. 한성부에 제출된 48장의 처녀 간택 단자 가운데 자격 미달인 단자를 빼고 3월 19일 진시(辰時)로 예정된 숙의 초간택 때 궐에 나아갈 처녀 명단 20명이 추려졌다. 그 가운데 두 명은 탈이 있다고 따로 기록하여 올렸다. 창경궁 명정전 서쪽에 자리 잡은 숭문당(崇文堂)이 숙의 간택 장소로 정해졌다. 숙의 간택에 참여할 처자들은 창경궁 남쪽으로 나 있는 선인문(宣仁門)을 통해 궐에 나아오도록 하였다. 창경궁 숭문당에서 치러진 초간택에 참여한 처녀 가운데 3월 21일 재간택에 궐에 나아갈 명단을 적은 예조 단자가 3월 20일에 올라왔다. 재간택 처녀 명단에 통덕랑 강진상의 딸, 주부 송이석의 딸, 청양 현감 김창국의 딸 세 명의 후보가 적혀있었다. 김창국의 딸은 초간택 처자 명단에는 보이지 않다가 이때 처음 등장한다. 그녀는 부친의 임소에 있어서 아직 올라오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에 숙종은 “내일 재간택 때 마땅히 참여해야 할 처자 중에 탈이 있는 자는 승정원에서 해당 부에 분부하여 재촉하게 하고, 본가에 탐문하여 오늘 안에 들어오는지의 여부를 즉시 아뢰도록 하라”고 전교하였다. 한성부에서 이미 날이 저물어 김창국의 딸이 재간택 날짜에 맞춰 올라 올 수 있는 지의 여부를 미리 헤아릴 수 없다고 보고하자, 숙종은 재간택 날짜를 하루 연기하도록 하였다. 숙의 재간택 날짜가 3월 22일 진시와 사시 사이인 손시(巽時)로 갑자기 변경되었다. 숙종의 특별한 관심과 배려로 무사히 재간택에 참여한 김창국의 딸 김씨는 3월 28일 묘시와 진시 사이인 을시에 숙의 삼간택 때 궐에 나아가는 처녀의 명단에 통덕랑 강진상의 딸, 주부 송이석의 딸과 함께 올라갔다. 삼간택 시간을 손시에서 오시로 변경하여 치러진 최종 삼간택에서 청양 현감 김창국의 딸이 종2품 숙의로 간택되었다. 숙종이 재간택 날짜를 미뤄서 숙의로 간택할 정도로 기대했던 숙의 김씨는 7개월 후 종1품 귀인으로 승봉되었다. 그러나 숙의 김씨는 숙종의 기대와 달리 자녀를 낳지 못하였다. 그리고 기사환국 때 숙종의 미움을 받아 인현왕후와 같이 폐출되었다가 갑술환국으로 다시 복권되었다. 그 후 숙종과 인원왕후 가례 때 후궁 최고 품계인 정1품 빈(嬪)의 지위에 올랐다. 그녀가 바로 노론 명문가 출신으로 숙종의 후궁이 된 영빈(寧嬪) 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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