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탕금"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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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탕금(內帑金). 임금이 소유하고 있는 사유재산. 조선시대에 관할 관청은 내수사였다. 내수사는 고종 시기 내수사를 내장원으로 승격하면서 내탕금은 더욱 무지막지하게 늘어났으며, 광무개혁의 자금원으로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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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합방으로 대한제국 황제가 이왕으로 격하된 뒤에도 이 재산은 어디 안 갔다. 오히려 일본 제국이 한국 황실을 달래기 위해 돈을 더 찔러 넣어줬다. 한일합방조약 중에 "대일본제국 천황 폐하는 대한제국 황제 폐하, 태황제 폐하, 황태자 전하와 그들의 황후, 황비 및 후손들로 하여금 각각 그 지위에 따라서 적당한 존칭, 위신과 명예를 받도록 하는 동시에 이것을 유지하는 데 충분한 연금을 줄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전황이 불리한 태평양 전쟁 말기까지도 이왕가에 꾸준히 품위유지비를 주었다. 가끔 "일제와 매국노가 횡령해 숨긴 조선 왕조의 비자금" 운운하는 음모론이나 사기극이 돌기도 하지만 대부분 거짓. 일본이 헤이그 특사 사건 이후 상하이 독일 은행의 내탕금 52만 마르크(당시 통화로 환산하면 5만원 상당)를 가짜 증서로 가로챈 적은 있으나, 이는 고종의 저항을 무산시키려는 공작의 일환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독일 마르크는 1차 대전 후 수백만 마르크로 우표 1장도 못 살 만큼 폭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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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는 이미 반항의 여지가 없이 모든 것이 끝났고, 이왕의 지위는 모든 일본 귀족보다 높으며 천황 바로 아래인 일본 황실의 일부였기 때문에 당시 일반인이 이왕가 내탕금에다 손댄다는 건 "나 죽여줍쇼"라는 소리나 진배없었다. 일본 군경이 물고문하러 쫓아왔을 일. 여하튼 그렇게 쓰고 날렸으면서도 일본 귀족들이 이왕가의 막대한 재산을 부러워 할 지경이었단 소리까지 있었으니, 일제강점기에도 내탕금의 거대함은 여전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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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 나무위키 || 내탕금 ||  || https://namu.wiki/w/내탕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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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 아시아경제 || 왕들의 용돈, '내탕금'은 어느정도 규모였을까? ||  || https://www.asiae.co.kr/article/2017040710570415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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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 오마이뉴스 || 조선시대 임금의 업무추진비에 숨은 이야기 ||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75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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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한양도성타임머신 2021]] [[분류:Record]] [[분류:임민혁]]

2021년 12월 25일 (토) 15:32 판

Definition

내탕금(內帑金). 임금이 소유하고 있는 사유재산. 조선시대에 관할 관청은 내수사였다. 내수사는 고종 시기 내수사를 내장원으로 승격하면서 내탕금은 더욱 무지막지하게 늘어났으며, 광무개혁의 자금원으로 쓰기도 했다.

한일합방으로 대한제국 황제가 이왕으로 격하된 뒤에도 이 재산은 어디 안 갔다. 오히려 일본 제국이 한국 황실을 달래기 위해 돈을 더 찔러 넣어줬다. 한일합방조약 중에 "대일본제국 천황 폐하는 대한제국 황제 폐하, 태황제 폐하, 황태자 전하와 그들의 황후, 황비 및 후손들로 하여금 각각 그 지위에 따라서 적당한 존칭, 위신과 명예를 받도록 하는 동시에 이것을 유지하는 데 충분한 연금을 줄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전황이 불리한 태평양 전쟁 말기까지도 이왕가에 꾸준히 품위유지비를 주었다. 가끔 "일제와 매국노가 횡령해 숨긴 조선 왕조의 비자금" 운운하는 음모론이나 사기극이 돌기도 하지만 대부분 거짓. 일본이 헤이그 특사 사건 이후 상하이 독일 은행의 내탕금 52만 마르크(당시 통화로 환산하면 5만원 상당)를 가짜 증서로 가로챈 적은 있으나, 이는 고종의 저항을 무산시키려는 공작의 일환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독일 마르크는 1차 대전 후 수백만 마르크로 우표 1장도 못 살 만큼 폭락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이미 반항의 여지가 없이 모든 것이 끝났고, 이왕의 지위는 모든 일본 귀족보다 높으며 천황 바로 아래인 일본 황실의 일부였기 때문에 당시 일반인이 이왕가 내탕금에다 손댄다는 건 "나 죽여줍쇼"라는 소리나 진배없었다. 일본 군경이 물고문하러 쫓아왔을 일. 여하튼 그렇게 쓰고 날렸으면서도 일본 귀족들이 이왕가의 막대한 재산을 부러워 할 지경이었단 소리까지 있었으니, 일제강점기에도 내탕금의 거대함은 여전했던 셈이다.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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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탕금 Concept 개념용어 내탕금(內帑金) 내탕금 內帑金 http://dh.aks.ac.kr/hanyang2/wiki/index.php/내탕금

Contextu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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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Resource

type resource title description/caption URL
해설 나무위키 내탕금 https://namu.wiki/w/내탕금
참고 아시아경제 왕들의 용돈, '내탕금'은 어느정도 규모였을까? https://www.asiae.co.kr/article/2017040710570415505
참고 오마이뉴스 조선시대 임금의 업무추진비에 숨은 이야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75699

Bibliography

type bibliographic index online resource url
논문 김인호, 「고종 순종 시기 恩賜 제도의 운영 실태」, 『한국민족운동사연구』 96,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18. KCI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386462
논문 김윤희, 「대한제국기 皇室財政運營과 그 성격; 度支部 豫算外 支出과 內藏院 재정 운영을 중심으로」, 『한국사연구』 90, 한국사연구회, 1995.
단행본 김동진, 『파란눈의 한국혼 헐버트』, 참좋은친구, 2010.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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