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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한반도는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3월 1일, 조선 전역에서 일제 강점기 하의 독립을 염원하는 목소리가 하나로 모여 거족적인 독립만세운동, 이른바 3.1운동이 일어났다. 이 역사적 사건은 단순히 조선인만의 투쟁이 아니었다. 그 중심에는 앨버트 테일러라는 미국인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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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버트 테일러는 당시 미국 유나이티드 프레스(United Press of America)의 특파원으로, 고종 황제의 국장을 취재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3.1운동의 현장을 목격하고 이를 해외에 알렸다. 그의 행동은 조선의 독립 운동이 전 세계에 알려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부인, 메리 테일러는 딜쿠샤의 명명자이자, 테일러 부부의 한국 생활을 기록한 『호박목걸이』의 저자였다. 그들의 아들 브루스 테일러는 어머니의 저작을 간행하여 가족의 역사를 후세에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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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버트의 동생, 윌리엄 테일러 역시 한국에 깊은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앨버트와 함께 테일러상회를 경영하며 한국과 미국 간의 무역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이 두 형제의 활동은 당시 조선과 미국 간의 문화적, 경제적 교류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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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이야기는 서울역사박물관에 전시된 고종 국장 죽안마 사진을 통해 현재에도 생생히 전해진다. 이 사진은 고종 황제의 국장을 담은 것으로, 앨버트 테일러가 찍었으며, 그가 직접 죽안마를 촬영하여 고종의 장례식과 그 시대의 분위기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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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 가문의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의 역사를 넘어서 한국의 근현대사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앨버트 테일러의 행동 하나하나는 3.1운동과 같은 큰 사건을 세계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그의 가족은 한국과 미국 간의 문화적, 역사적 교류에 큰 기여를 했다. 이러한 연결고리를 통해, 우리는 역사 속에서 개인의 행동이 어떻게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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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30일 (토) 02:00 기준 최신판

딜쿠샤와 테일러 가족 이야기 》 테일러 형제와 3.1 운동

Story

운산금광 직원으로 한국 생활을 시작한 테일러 형제는 한국 사회에 적응하면서 자신의 삶을 좀 더 주도적으로 개척해 가기 시작했다. 형 앨버트는 운산에서 쌓은 경험을 살려 충청도 직산(현재 충남 천안)에서 광산을 개발했고, 한국의 골동품을 수집•판매하는 골동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사업 수완이 좋은 동생 윌리엄은 자동차와 각종 잡화를 수입•판매하는 무역 회사 ‘테일러상회(W. W. Tayler Complaty)’를 경영했다.
이들의 본업은 사업가였지만, 뜻하지 않게 한국의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세계에 알리는 언론인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1919년 고종황제가 승하했을 때, 앨버트는 미국 연합통신사(Associated Press, AP)의 특파원 자격으로 장례를 취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 때 그의 아내 메리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출산을 위해 입원 중이었는데, 간호원 한 사람이 메리의 침대에 문서 다발을 숨기는 일이 벌어졌다. 3,1 운동의 주동자들이 세브란스 병원 안에서 독립선언서를 등사했는데 일본 경찰이 이를 알고 압수하러 오자, 그 증거를 감추려 한 것이다. 앨버트는 이 문서가 독립선언문임을 알게 된 즉시 특종이 될 기사를 작성했고, 동생 윌리엄으로 하여금 기사와 선언문을 구두 뒤축에 숨겨 일본으로 반출하고, 그곳에서 미국 AP로 타전하게 했다.
앨버트가 고종의 장례식을 취재할 때 찍은 사진들은 아들을 브루스를 거쳐 손녀 제니퍼에게 전해졌고, 제니퍼는 이것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하였다.

Semantic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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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0-503D Story Episode 테일러 형제와 3.1 운동 http://dh.aks.ac.kr/hanyang2/wiki/index.php/E0503D

Contextu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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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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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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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한반도는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3월 1일, 조선 전역에서 일제 강점기 하의 독립을 염원하는 목소리가 하나로 모여 거족적인 독립만세운동, 이른바 3.1운동이 일어났다. 이 역사적 사건은 단순히 조선인만의 투쟁이 아니었다. 그 중심에는 앨버트 테일러라는 미국인도 있었다.

앨버트 테일러는 당시 미국 유나이티드 프레스(United Press of America)의 특파원으로, 고종 황제의 국장을 취재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3.1운동의 현장을 목격하고 이를 해외에 알렸다. 그의 행동은 조선의 독립 운동이 전 세계에 알려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부인, 메리 테일러는 딜쿠샤의 명명자이자, 테일러 부부의 한국 생활을 기록한 『호박목걸이』의 저자였다. 그들의 아들 브루스 테일러는 어머니의 저작을 간행하여 가족의 역사를 후세에 전달했다.

앨버트의 동생, 윌리엄 테일러 역시 한국에 깊은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앨버트와 함께 테일러상회를 경영하며 한국과 미국 간의 무역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이 두 형제의 활동은 당시 조선과 미국 간의 문화적, 경제적 교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모든 이야기는 서울역사박물관에 전시된 고종 국장 죽안마 사진을 통해 현재에도 생생히 전해진다. 이 사진은 고종 황제의 국장을 담은 것으로, 앨버트 테일러가 찍었으며, 그가 직접 죽안마를 촬영하여 고종의 장례식과 그 시대의 분위기를 기록했다.

테일러 가문의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의 역사를 넘어서 한국의 근현대사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앨버트 테일러의 행동 하나하나는 3.1운동과 같은 큰 사건을 세계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그의 가족은 한국과 미국 간의 문화적, 역사적 교류에 큰 기여를 했다. 이러한 연결고리를 통해, 우리는 역사 속에서 개인의 행동이 어떻게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