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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3일 (목) 09:45 기준 최신판
에피소드
목차
' 숙종 후궁 숙의 김씨와 헌종 후궁 경빈 김씨의 삼간택 이야기 》 창경궁 통명전에서 35명의 후보자들과 경쟁하여 정1품 빈으로 뽑힌 헌종 후궁 경빈 김씨
Story
헌종은 1847년(헌종 13) 7월 18일 빨리 후궁을 간택하라는 대왕대비의 간절한 뜻을 따라 14세부터 19세까지의 처자를 금혼시키고, 8월 보름 전까지 처녀단자를 받도록 명하였다. 당시 대왕대비 순원왕후 김씨는 주상인 헌종의 춘추가 왕성한데도 종사지경(螽斯之慶)은 늦어지고 있고, 불행히도 중전인 효정왕후 홍씨에게 병이 있어, 약 처방으로 낮기를 바랄 수 없는 상황에서 전례에 따라 저사를 널리 구할 방도로 사족의 집안에서 처자를 잘 가려 빈어(嬪御)를 두도록 언문교지를 내렸다. 8월 2일 손시로 초간택 일정이 정해지자 헌종은 빈 간택 처소는 창경궁 통명전으로, 문로는 통화문으로 하도록 하교하였다. 간택에 참여할 처녀들이 궐 안으로 들어올 때 사용할 통화문은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 동북쪽에 있는 작은 문이었다. 8월 1일 초간택에 참여할 처녀 35명의 최종 명단이 나왔다. 그런데 8월 2일 비가 세차게 쏟아져 예정대로 초간택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초간택은 이틀 뒤인 8월 4일에 치러졌다. 초간택에서 유학 김재청의 딸, 유학 홍계주의 딸, 유학 정명원의 딸, 승지 오취선의 딸, 급제 김영작의 딸 총 5명이 선발되었다. 오취선의 딸은 병으로 재간택에 참여할 수 없게 되어 9월 3일 재간택에는 4명의 후보자만 참여하였다. 재간택에서 세 번째 후보였던 정명원의 딸은 탈락하고, 나머지 세 명의 처녀가 삼간택 후보자로 선발되었다. 10월 9일에는 빈의 작호는 경빈(慶嬪)으로, 궁호는 순화(順和)로 미리 정하여 졌다. 10월 18일 통명전에서 치러진 삼간택에서 김재청의 딸이 경빈으로 최종 선정되었다. 경빈 김씨는 원래 초간택 처자 35명의 명단 가운데 10번째 후보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창경궁 통명전에서 초간택 날 뽑힌 5명의 재간택 후보자 가운데 이미 1순위 후보[首望])에 올랐다. 재간택을 거쳐 선정된 3명의 삼간택 후보자 가운데 김씨가 유력한 빈 후보자로 확정되자 삼간택 전이었지만 9월 10일 김씨의 아버지 김재청은 빈 가례의 재간택을 한 뒤에 본가의 주인에게 관직을 주었던 정미년의 전례를 따라 초직으로 문관 최말단직인 종9품 혜릉 참봉에 제수되었다. 그는 3일 후인 9월 13일에 헌종의 명으로 종9품 혜릉 참봉에서 종6품 장악원 주부로 다시 한번 승진하였다. 10월로 예정된 최종 삼간택을 남겨 둔 상황에서 빈 간택이 시작된 지 두 달도 못 되어 3일 간격으로 진행된 아버지 김재청의 승진 소식을 통해 김씨가 재간택 후보에 올랐을 때부터 빈으로 내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35명의 후보자 가운데 경빈으로 최종 선정된 김씨는 입궁 후 헌종의 사랑을 듬뿍 받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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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2022-R2-15B | Story | Episode | 창경궁 통명전에서 35명의 후보자들과 경쟁하여 정1품 빈으로 뽑힌 헌종 후궁 경빈 김씨 | http://dh.aks.ac.kr/hanyang2/wiki/index.php/E2022-R2-15B |
Contextual Relations
Web Re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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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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