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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0일 (목) 19:30 기준 최신판
목차
연잉군 부부가 출합(出閤)하던 날
Story
숙종의 아들 연잉군(후일의 영조)은 11세 어린 나이에 궁궐 밖에 임시로 마련된 길례궁으로 나가 혼례식을 하였다. 왕의 자녀 가운데 왕위를 계승할 왕세자만이 궁 안에서 가례를 치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궁 밖에 마련된 연잉군의 길례궁은 선조의 딸 정명공주 부부가 살았던 집이었다. 친영 후 4일째 되는 날 연잉군은 달성군부인 서씨(후일의 정성왕후)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린 후에 연잉군 부부는 궁 안으로 들어와 출합 할 때까지 9년 동안 왕실 가족과 함께 살았다. 그 사이 궁궐 밖에 연잉군 부부의 살림집인 궁가를 마련할 준비를 하였다. 여러 논의 끝에 숙종은 북부 순화방에 효종의 딸 숙휘공주 부부가 살았던 옛 집을 사주었다. 숙종은 연잉군 부부의 살림집에 ‘양성(養性)’이라는 헌명을 지어 주고, 시 두 수를 새겨서 걸어 두도록 하였다. 이곳이 영조의 잠저인 창의궁(彰義宮)이다. 연잉군 부부가 살 궁가(宮家)의 수리가 마무리 되어 가자 1710년(숙종 36) 9월 30일에 다음 해 봄 사이에 좋은 날을 정하라는 숙종의 명이 내려졌다. 처음에 연잉군 부부의 출합 날짜는 1711년(숙종 37) 2월 12일로 정하였으나 갑자기 숙종은 가을로 물려 정하라고 하였다. 가을이 되자 다시 다음 해 1월 25일로 미뤄졌다. 그리고 1712년(숙종 38) 1월 12일에 다시 출합 날짜를 2월로 미뤘고, 최종적으로 2월 12일에 출합하게 되었다. 예조에서는 예조의 낭청을 가례청 도청으로 삼아 출합 후에 연잉군 부부가 쓸 90여 가지에 이르는 다양한 살림살이를 15개 관서에 골고루 나눠서 잘 준비하도록 감독하였다. 군자감에서는 중미 30석, 조미 60석, 황두 40석을, 호조에서는 면포 70필을, 제용감에서는 정포 70필을 마련하였다. 그 외에 공조, 선공감, 내자시, 내섬시, 사도시, 장흥고, 평시서, 예빈시, 사재감, 와서, 의영고, 사포서 등 해당 관서에서는 출합 날짜에 맞춰 가장 좋은 품질의 출합 물건을 마련하도록 최선을 다하였다. 국가에서 연잉군 부부에게 마련해 준 살림살이는 쌀, 옷감, 상, 숟가락, 젓가락, 밥그릇, 접시, 자물쇠, 목욕통, 족욕통, 바가지, 땔나무, 방석부터 참기름, 꿀, 메밀가루, 소금, 조기, 대구, 산삼, 김치, 젓갈까지 그 종류가 셀 수 없이 다양했다.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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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022-R1-39 | Story | Storyline | 연잉군 부부가 출합(出閤)하던 날 | 연잉군 부부가 출합하던 날 | http://dh.aks.ac.kr/hanyang2/wiki/index.php/S2022-R1-39 | 2022:김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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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022-R1-39 | E2022-R1-39A | hasPart | 궁 밖 길례궁에서 혼인 후 연잉군 부부가 입궁하는 과정 | |
S2022-R1-39 | E2022-R1-39B | hasPart | 연잉군 부부의 살림집, 궁가(宮家) | |
S2022-R1-39 | E2022-R1-39C | hasPart | 연잉군 부부 출합 때 15개 관서에서 마련해준 90여 가지의 살림살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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