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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15일 (목) 03:50 기준 최신판

영조의 대사례와 복식 》 대사례 출궁의와 작헌례 복식

Story

1743년 윤4월 7일 영조와 종친, 백관, 학생 및 시위는 출궁하여 문묘로 향했다. 그 행렬과 의식의 순서는 미리 준비해둔 절목에 따라서 행하도록 하였다.

종친, 백관, 학생, 시위가 창경궁 집춘문 밖에서 왕을 기다렸다가, 영조가 창덕궁 영화당을 나와 여(輿)를 타고 집춘문에 이르러 연(輦)으로 갈아 타면 함께 문묘로 이동하였다. 문묘의 하연대(下輦臺)에 도착하여 영조가 연에서 내리고, 임시거처인 대차(大次)에 들어가 면복으로 갈아입고 나오면 작헌례를 거행하였다.

출궁의 때 영조는 조복(朝服)을 착용하였고, 작헌례를 행할 때는 면복으로 갈아입었다.

종친과 백관은 4품 이상은 조복을 착용하였고, 5품 이하는 흑단령, 즉 상복(常服)을 입었다. 이들은 출궁의와 작헌례 모두 같은 복장을 유지했다.

학생은 출궁할 때는 흑단령을 입도록 하였는데, 이들은 무관자(無官者)이므로 흉배를 부착하지 않고 무늬가 없는 소박한 원단의 흑색 단령을 입었을 것이다.

그리고 작헌례 때는 유생에게 청금복(靑衿服)을 입도록 하였는데, 1741년 4월 8일자 실록 기사에 의하면 영조는 유생들에게 홍단령을 입도록 권유하고 있고, 그 이전까지도 일정 시기 동안 유생은 홍단령을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조 대의 청금복은 유건과 심홍색 단령, 세조대, 흑화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1] 이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18세기 후기 부터 유생은 유건에 도포, 흑화를 일반적으로 착용하였고, 그 모습은 김홍도의 《단원풍속도》 〈그림감상〉과 효명세자의 입학례를 기념하여 그린 《왕세자입학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2]

또한 작헌례 때에 승지(承旨)와 사관(史官) 그리고 전작관(奠爵官) 이하는 제복(祭服)을 입도록 하였다.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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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2022-R5-18B Story Episode 대사례 출궁의와 작헌례 복식 http://dh.aks.ac.kr/hanyang2/wiki/index.php/E2022-R5-18B 2022:김현승

Contextu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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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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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ype: 단행본, 논문, 도록, 자료집
  • online resource: KCI, RISS, DBpia, 네이버 학술정보 .....

Notes

  1. 진덕순, 「조선 유생의 문과 급제와 복식문화 연구」, 안동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9, 57-58쪽.
  2. 진덕순(2019), 앞의 논문, 65-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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