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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7일 (화) 06:14 기준 최신판
목차
창덕궁의 탄생 》수창궁 화재
Story
1400년(정종 2) 12월 22일 개경의 수창궁에 화재가 났다. 건물 일부가 소실된 것이지만, 이 화재는 이후 조선의 정치 상황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 시기 며칠을 상관으로 태종이 왕위에 올랐는데, 태종은 이 화재 즉 재이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권근은 6개항목의 상서를 올려 경계를 했다. 이런 분위기는 태종이 수창궁을 재건하려는데도 반대 의견으로 이어졌다. 결국 태종은 수창궁 재건을 뒤로 하고 한양에 이궁을 건설하여 다시 한양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다. 이궁 건설에도 반대가 있었지만, 태종은 끝내 이궁(창덕궁)을 완정하고 한양으로 재천도를 했다. 화재 후 수창궁을 대신하여 연경궁의 강안전이 많이 사용되었다.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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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0-R1-01C | Story | Storyline | 수창궁 화재 | 수창궁 화재 | http://dh.aks.ac.kr/hanyang2/wiki/index.php/E0-R1-01C | 2022: 이순구 |
Contextu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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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0-R1-01C | 조선_태종 | isRelatedTo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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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Re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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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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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nline resource: KCI, RISS, DBpia, 네이버 학술정보 .....
Notes
Story Network Gr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