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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15일 (목) 03:56 기준 최신판

영조의 대사례와 복식 》 대사례와 문·무과 시험에서 왕과 백관의 복식

Story

1743년 윤4월 7일 대사례에서는 문과·무과의 과거시험이 함께 이루어졌다.

먼저 명륜당(明倫堂)에서 '문과시취의(文科試取儀)'를 행한 뒤에 하연대(下輦臺)에서 왕과 신하들의 활쏘기인 '대사례의(大射禮儀)'를 거행하였고, 이후에 동일한 장소에서 '무과시취의(武科試取儀)'가 행해졌다.

문과 시험은 영조가 악차(幄次)를 나서서 여(輿)에 오르고 명륜당에 이르러 내려서 어좌에 오르면, 독권관이 하교를 받아 시제를 내렸다. 시험이 끝난 뒤에 영조가 어좌에서 내려와 여를 타고 돌아가면 시험 응시자들이 시권을 내고 퇴장하는 것으로 '문과시취의'를 마쳤다. 이날 영조가 내린 시험의 제목은 ‘희우관덕(喜雨觀德)’이었다. 당시 가뭄이 들었는데 대사례를 행하기 전날 비가 내려 그 기쁨을 표현한 시제이다.[1]

대사례는 하연대에 사단(射壇)을 설치하고 거행하였다. 사단은 3단으로 되어 있는데 1단에는 왕이 앉는 어좌위(御座位)가 있고, 2단에는 왕이 활을 쏘는 어사위(御射位)가 있으며, 3단의 서쪽에는 시사관(侍射官)이 활을 쏘는 자리가 있었다. 또 그 아래에는 시사관 및 여러 관원들이 자리하였다. 활의 과녁이 있는 후단(帿壇)은 활 쏘는 자리에서 90보 떨어진 곳에 세웠다. 왕이 쏘는 과녁은 곰의 머리가 그려진 웅후(雄侯)였고, 백관이 쏘는 과녁은 사슴의 머리가 그려진 미후(麋侯)였다. 활쏘기가 끝난 후 화살을 명중시킨 수에 따라 상과 벌을 내렸고, 이를 모두 마치면 대사례도 마무리 되었다.[2]

대사례가 끝난 후, 전의(典儀)와 훈련원에서 시험관들과 응시자들의 배위(拜位)를 설치하고 영조가 악차를 나와 어좌에 오르면 무과 시험이 시작되었다. 무과 응시생들은 활과 화살을 잡고 두 사람이 짝을 이루어 기다렸다가 북소리가 울리면 자리에 나아가 부복하였다가 활을 쏘고 다시 부복한 후 물러났다. 계속해서 차례대로 활을 쏘고 시험을 마치면 영조는 어좌에서 내려와 악차로 돌아갔다.

대사례와 문·무과 과거시험에는 영조와 종친 및 백관들이 모두 평상시의 집무복인 상복(常服)을 입고 참여했다. 이 날 대사례에 참여했던 밀창군 이직(密昌君 李樴, 1677-1746)과 그의 아들 정간공 이익정(靖簡公 李益炡, 1699-1782)의 묘에서 출토된 복식을 통해 당시의 풍경을 그려 볼 수 있다.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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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2022-R5-18C Story Episode 대사례와 문·무과 시험에서 왕과 백관의 복식 http://dh.aks.ac.kr/hanyang2/wiki/index.php/E2022-R5-18C 2022:김현승

Contextu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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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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