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2022-R3-21E"의 두 판 사이의 차이

hanyang2
이동: 둘러보기, 검색
(Web Resource)
63번째 줄: 63번째 줄:
 
! type || resource || title || description/caption || URL
 
! type || resource || title || description/caption || URL
 
|-
 
|-
| 참고 || ||  ||
 
 
|}
 
|}
  

2022년 12월 8일 (목) 23:49 판

종묘에서 거행된 각종의 행사 》 새 신부 왕비가 국왕의 조상을 뵙다

Story

조선시대의 가례(嘉禮)는 종묘를 섬기고 가계를 계승해 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그런데 왕실 가례에서의 묘현례(廟見禮)는 숙종 때 처음 시작되었다. 묘현은 중중 때부터 논의가 있었다. 종묘사직의 주인이 되려면 이를 행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언관들의 권유가 있었으나, 선왕의 옛 제도를 버릴 수 없다는 주장에 막혀 실현되지 못하였다. 선조 대에는 “혼례를 치렀어도 사당에 배알하지 않으면 불성부(不成婦)라 한다.”면서 다시 그 시행을 요구하였다. 묘현의 시행은 시초를 바르게 하는 급선무라고 평가하기도 했으나, 논의로 그치고 말았다. 그러던 것이 숙종 대에 이르러 세자 가례의 복원을 위해 묘현을 논의에 부쳤다. 그 결말은 뒤로 미뤄졌다가, 숙종 28년 인원왕후 가례 후에 그 합의과정은 불분명하지만 왕비가 종묘와 영녕전에 알현하기로 결정하였다. 묘현례가 가례 중 한 절차로 확정되어 시행하게 된 것이다. 숙종은 내전과 빈만 출입하는 것이 미안하니, 국왕과 왕세자도 함께 묘현하는 방식으로 정했다. 따라서 조선에서 왕비의 묘현례는 숙종 29년 2월에 처음으로 거행되었다고 하겠다. 묘현례는 󰡔국조속오례의󰡕에 수록되었다. 영조는 “세자빈에게 묘현례를 청하는 것은 곧 마음이 왕실에 있는 것이다.” 하여, 묘현례가 왕실을 위한 일임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렇지만 묘현례의 법제화까지 추진하지는 않았다. 왕비가 알현하는 사당은 그 후 확대되어 정순왕후는 육상궁, 효정왕후는 경모궁을 포함시켰다. 철인왕후는 경모궁을 비롯하여 경우궁, 저경궁, 육상궁, 연호궁, 선희궁 그리고 대원군사우 등 각 사당을 다 돌면서 전알했다.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id class groupName partName label hangeul hanja english infoUrl iconUrl note
E2022-R3-21E Story Episode 새 신부 왕비가 국왕의 조상을 뵙다 새 신부 왕비가 국왕의 조상을 뵙다 http://dh.aks.ac.kr/hanyang2/wiki/index.php/E2022-R3-21E 2022:임민혁

Contextual Relations

source target relation attribute note
E2022-R3-21E 왕비알묘_王妃謁廟 isRelatedTo
E2022-R3-21E 왕세자빈알묘_王世子嬪謁廟 isRelatedTo
E2022-R3-21E 인원왕후가례 isRelatedTo
E2022-R3-21E 철인왕후가례 isRelatedTo

Web Resource

type resource title description/caption URL
  • type: 해설, 참고, 원문 / 사진, 동영상, 도면, 그림, 지도, 3D_지도, 3D_모델

Bibliography

id type bibliographic index online resource url
  • id: 인용전거
  • type: 단행본, 논문, 도록, 자료집
  • online resource: KCI, RISS, DBpia, 네이버 학술정보 .....

Notes


Story Network Gr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