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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27일 (화) 18:53 판
목차
수창궁 화재
Story
1400년(정종 2) 12월 22일 개경의 수창궁에 화재가 났다. 건물 일부가 소실된 것이지만, 이 화재는 이후 조선의 정치 상황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 시기 며칠을 상관으로 태종이 왕위에 올랐는데, 태종은 이 화재 즉 재이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권근은 6개항목의 상서를 올려 경계를 했다. 이런 분위기는 태종이 수창궁을 재건하려는데도 반대 의견으로 이어졌다. 결국 태종은 수창궁 재건을 뒤로 하고 한양에 이궁을 건축하고 다시 한양으로 갈 생각을 했다. 이궁 건설에도 반대가 있었지만, 태종은 끝내 이궁 창덕궁을 완성하고 한양으로 재천도를 했다.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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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0-R1-01C | Story | Storyline | 수창궁 화재 | 수창궁 화재 | http://dh.aks.ac.kr/hanyang2/wiki/index.php/E0-R1-01C | 2022: 이순구 |
Contextu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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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Re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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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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