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0-R1-01B"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새 문서: <!-- #Links S0-503 E0-503A hasContextualElement S0-503 E0-503B hasContextualElement S0-503 E0-503C hasContextualElement S0-503 E0-503D hasContextualElement S0-503 E0-503E hasCont...) |
(→Contextual Relations) |
||
32번째 줄: | 32번째 줄: | ||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note |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note | ||
|- | |- | ||
− | | [[E0-R1-01B] || [[서운관]] || [[hasPart]] || || | + | | [[E0-R1-01B]] || [[서운관]] || [[hasPart]] || || |
|- | |- | ||
| [[E0-R1-01B]] || [[수창궁]] || [[hasPart]] || || | | [[E0-R1-01B]] || [[수창궁]] || [[hasPart]] || || |
2022년 9월 27일 (화) 15:26 판
목차
개경 천도
Story
1399년 2월 26일 정종은 종척 공신들과 함께 송경으로 환도할 것을 결정했다. 뭇 까마귀가 울고, 재이(災異)가 거듭된다는 서운관의 보고가 표면적인 이유였으나 실제는 왕자의 난으로 정세가 불안한 것이 환도의 더 큰 원인이었다. 특히 다시 개경으로 가는 것은 모든 시설이 갖추어진 곳이 개경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도성사람들은 환도를 손벽을 치며 환영했고 돌아가는 인파가 길에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천도 후 태조는 아내와 아들들을 잃고 환도한 것이 백성들에게 부끄럽다며 사람들에게 보지 않을 때 출입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id | class | groupName | partName | label | hangeul | hanja | english | infoUrl | iconUrl | note | |
---|---|---|---|---|---|---|---|---|---|---|---|
E0-R1-01B | Story | Storyline | 개경 천도 | 개경 천도 | http://dh.aks.ac.kr/hanyang2/wiki/index.php/E0-R1-01B | 2022: 이순구 |
Contextual Relations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note |
---|---|---|---|---|
E0-R1-01B | 서운관 | hasPart | ||
E0-R1-01B | 수창궁 | hasPart |
Web Resource
type | resource | title | description/caption | URL |
---|
- type: 해설, 참고, 원문 / 사진, 동영상, 도면, 그림, 지도, 3D_지도, 3D_모델
Bibliography
id | type | bibliographic index | online resource | url |
---|
- id: 인용전거
- type: 단행본, 논문, 도록, 자료집
- online resource: KCI, RISS, DBpia, 네이버 학술정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