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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제국이 자주독립국가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한 국가 상징물로 전통무늬인 태극과 팔괘를 주된 문양으로 제작하여 사용하였다. 국기 제정 논의가 처음으로 거론된 것은 1876년(고종 13) 1월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맺을 때 일본 사신이 일본국기를 내건 데 대하여 당시 조선 사신은 국기가 없어서 내걸지 못하였다. | + | 대한제국이 자주독립국가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한 국가 상징물로 전통무늬인 태극과 팔괘를 주된 문양으로 제작하여 사용하였다. 국기 제정 논의가 처음으로 거론된 것은 1876년(고종 13) 1월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맺을 때 일본 사신이 일본국기를 내건 데 대하여 당시 조선 사신은 국기가 없어서 내걸지 못하였다. 이 일로 국기를 만들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조선에서는 아직 국기 제정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여 추진되지 못하였다. 그 뒤 외국과의 교섭이 자주 발생하면서 국기의 필요성을 느껴, 1881년 충청도관찰사 이종원(李淙遠)이 제출한 태극 팔괘의 도식(圖式)에 의해 비로소 국기를 정하였다.<ref>[https://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22400 두피디아>대한민국>국기.]</ref><br/> |
− | 이후에 1882년 박영효가 일본에 수신사로 가면서 태극도안의 기를 사용한 것이 국기 사용의 효시가 되었고, 태극도안의 태극기가 국기로서 공식화된 것은 고종이 “태극 주위에 4괘(四卦)를 배(配)한다.”고 공포함으로써 1883년 1월 정식 국기로 채택되었다. <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6160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국기.]</ref><br/> | + | 이후에 1882년 박영효가 일본에 수신사로 가면서 태극도안의 기를 사용한 것이 국기 사용의 효시가 되었고, 태극도안의 태극기가 국기로서 공식화된 것은 고종이 “태극 주위에 4괘(四卦)를 배(配)한다.”고 공포함으로써 1883년 1월 정식 국기로 채택되었다. <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6160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국기.]</ref><br/> 그러나 고종의 공포 당시 태극기의 규격이나 형태에 관한 정확한 명시가 없었으므로, 태극기는 각양각색의 형태로 사용되었다. <ref>[https://cafe.daum.net/KoreaFlag/i1i8/124 대한제국 태극기 전시물]</ref><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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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논문 || | + | | 논문 || 노영돈, 「태극기의 국기로서의 최초 사용과 인천」, 인천학연구원, 『인천학연구』1(26), 2017.02, pp.185~225. || KCI ||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1974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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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논문 || 신원봉, 「태극기 중국 유래설에 대한 반박」, 동양문화연구원, 『동양문화연구』8, 2011.11, pp.145~178. || KCI ||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6052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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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단행본 || 국립중앙박물관, 『대한의 상징, 태극기』, 국립중앙박물관, 2008. || 국회전자도서관 || https://nadl.nanet.go.kr/search/searchInnerDetail.do?searchType=INNER_SEARCH&resultType=INNER_SEARCH_DETAIL&searchMehtod=L&searchClass=S&controlNo=MONO1200831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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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단행본 || | + | | 단행본 || 문화재청, 『(제63주년 광복절 및 대한민국 정부수립 60주년을 맞아) 역사적 가치가 큰 옛 태극기 15점 문화재로 등록』, 문화재청, 2008. || 국회전자도서관 || https://nadl.nanet.go.kr/search/searchInnerDetail.do?searchType=INNER_SEARCH&resultType=INNER_SEARCH_DETAIL&searchMehtod=L&searchClass=S&controlNo=NONB12008191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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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단행본 || | + | | 단행본 || 박충훈 지음, 『태극기의 탄생 : 조선 국기 제정에 얽힌 진실』, 21세기북스, 2010. || 국회전자도서관 || https://nadl.nanet.go.kr/search/searchInnerDetail.do?searchType=INNER_SEARCH&resultType=INNER_SEARCH_DETAIL&searchMehtod=L&searchClass=S&controlNo=MONO12010032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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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20일 (월) 01:37 기준 최신판
목차
대한제국의 태극기
Story
대한제국이 자주독립국가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한 국가 상징물로 전통무늬인 태극과 팔괘를 주된 문양으로 제작하여 사용하였다. 국기 제정 논의가 처음으로 거론된 것은 1876년(고종 13) 1월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맺을 때 일본 사신이 일본국기를 내건 데 대하여 당시 조선 사신은 국기가 없어서 내걸지 못하였다. 이 일로 국기를 만들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조선에서는 아직 국기 제정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여 추진되지 못하였다. 그 뒤 외국과의 교섭이 자주 발생하면서 국기의 필요성을 느껴, 1881년 충청도관찰사 이종원(李淙遠)이 제출한 태극 팔괘의 도식(圖式)에 의해 비로소 국기를 정하였다.[1]
이후에 1882년 박영효가 일본에 수신사로 가면서 태극도안의 기를 사용한 것이 국기 사용의 효시가 되었고, 태극도안의 태극기가 국기로서 공식화된 것은 고종이 “태극 주위에 4괘(四卦)를 배(配)한다.”고 공포함으로써 1883년 1월 정식 국기로 채택되었다. [2]
그러나 고종의 공포 당시 태극기의 규격이나 형태에 관한 정확한 명시가 없었으므로, 태극기는 각양각색의 형태로 사용되었다. [3]
일례로, 1896년 11월 21일 독립문 정초식 때는 푸른 나무로 홍예를 만들어서 국기로 좌우를 단장하였고, 1897년 8월 22일 고종 탄신일 때에는 서울 시민들이 각처에 국기를 많이 달았으며, 1899년 3월 19일 황태자 탄신일에도 각 관청과 민가에서 국기를 달았다. 그렇지만 아직 국기의 규격이 통일되지 않아 중추원에서는 3색, 경무청에서는 5색, 민가에서는 청, 백, 황색이 섞여 있었다고 한다. 1900년 12월에는 경부에서 각 상점에 국기의 규격을 통일하라고 지시하였다.[4]
Semantic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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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1-047 | Story | Episode | 대한제국의 태극기 | 대한제국의 태극기 | 大韓帝國의 太極旗 | http://dh.aks.ac.kr/hanyang58/wiki/index.ph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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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xtu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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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1-047 | 이종원 | isRelatedTo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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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1-047 | 독립문 | isRelatedTo |
Web Re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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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국기(國旗)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6160 | |
해설 | 두산백과 |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大韓民國] | https://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22400 | |
해설 | 나무위키 | 태극기 | https://namu.wiki/w/태극기 | |
해설 | 네이버 지식백과 | 태극기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19500&cid=42958&categoryId=42958 | |
참고 | 태극기박물관>대한제국시대 | 대한제국 태극기 전시실 | https://cafe.daum.net/KoreaFlag/i1i8/124 | |
참고 | 국사편찬위원회>우리역사넷 | 대한제국의 국기와 국가 제정 | http://contents.history.go.kr/front/ht/view.do?levelId=ht_003_0020_0030_0030 | |
참고 | 세계일보 | 태극기 최초 창안자 ‘이응준’이 역사에서 사라진 이유는? | http://www.segye.com/newsView/20100205003117 | |
참고 | 다음>블로그 | 태극기는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 | https://blog.daum.net/ckrksp6696/8746423 |
- type: 해설, 참고, 원문 / 사진, 동영상, 도면, 그림, 지도, 3D_지도, 3D_모델
Bibliography
- type: 단행본, 논문, 도록, 자료집
- online resource: KCI, RISS, DBpia, 네이버 학술정보 .....
Notes
Semantic Network Gr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