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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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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조약(近代條約). 지금으로부터 130여 년 전 한국과 조약을 체결한 국가라는 점입니다. 19세기 후반 ‘은둔국 조선’은 영국·미국·독일·러시아 등 서양국가 및 중국·일본과 ‘조약’을 체결하며, 오늘날과 같은 규모의 세계와 전면적인 교류를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조선은 대내외적으로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면서 근대적인 국가수립을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결국 20세기 초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쇄국 정책을 주장하던 대원군이 권좌에서 물러나고 민씨 일족이 대두하자, 조선 정부의 국내외 정책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 국내에서는 개항 반대론이 우세하였으나, 개항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움직임도 싹트고 있었다.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등 통상 개화론자들은, 당시 조선 사회가 문호 개방을 위한 내적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보지는 않았지만, 열강의 군사적 침략을 피하기 위해서는 개항이 불가피함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통상 개화론자들의 세력이 대원군 정권의 붕괴와 함께 성장하여, 문호 개방의 여건을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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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조약(近代條約). 조선은 19세기 후반부터 외국과 근대 조약을 체결하기 시작했다. 1876년의 강화도 조약으로 일본에 문호를 개방한 후, 서양 여러 나라에도 문호를 개방하였다. 미국과 영국, 독일, 러시아 등 서양국가 및 중국, 일본과 조약을 체결하면서, 세계 여러 나라와 전면적인 교류를 시작하였다. 조선은 대한제국으로 국체를 변경하고 대내외적으로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면서 근대적인 국가수립을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결국 20세기 초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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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국정책을 주장하던 대원군이 물러나고 민씨 일족이 대두하자, 조선정부의 국내외정책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통상 개화론자들은 대원군 정권의 실각으로 개혁 추진과 함께 문호 개방을 모색해나갔다. 정한 정책을 전면에 내세운 일제는 운요호 사건을 일으켜 무력으로 조선의 문호개방을 강요해 왔다. 조선은 마침내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맺어 문호를 개방하자, 미국이 조선과의 수교에 다시 관심을 갖고 접근해왔다. 이 무렵에, 러시아의 남하에 대응해야 한다는 황준헌(黃遵憲)의 조선책략의 유포와 인식의 변화로 종주권의 국제적 승인의 기회를 노리던 청의 알선으로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었다.
한편,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 국가의 체제를 갖추고 자본주의화를 서두르면서 해외 진출을 시도하고 있던 일본은, 운요 호 사건을 일으켜 조선의 문호 개방을 강요해 왔다. 그리하여 조선은 마침내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맺어 문호를 개방하게 되었다(1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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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불평등조약을 맺었던 조선의 미국과의 조약도 거중조정 등의 규정이 있으나, 이것도 불평등 조약이었다. 미국과 조약을 체결한 조선은 이어서 영국, 독일, 러시아, 프랑스 등 여러 나라와도 외교 관계를 맺어 국제무대에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서양의 근대적인 사상과 문물 제도를 수용하여 근대사회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개항은 열강의 자본주의적 팽창 정책에 의해 강요되었고, 서양 근대 문명의 수입은 일본을 비롯한 열강의 침략을 수반하는 것이었으므로, 조선은 이들 열강의 침략 경쟁의 무대가 되기도 하였지만, 조선은 근대국가의 수립을 목표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부문에 걸쳐 개혁을 추구해갔다.
조선은 강화도 조약으로 일본에 문호를 개방한 후, 서양 여러 나라에도 문호를 개방하였다. 한때 무력으로 조선의 문호를 개방시키려다 실패한 미국은, 조선이 일본과 조약을 맺자, 다시 조선과의 수교에 관심을 가지고 일본에 알선을 요청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무렵에, 러시아의 남하 세력에 대응하여, 조선은 미국과 연합해야 한다는 내용이 실린 황쭌셴(黃遵憲)의 조선 책략이 국내의 지식층에 유포되어 미국과 외교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도 일어났다. 결국, 러시아와 일본 세력을 견제하고,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국제적으로 승인받을 수 있는 기회를 노리던 청의 알선으로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하였다(1882).
 
 
 
조선이 서양 여러 나라와 맺은 최초의 조약인 조⋅미 수호 통상 조약에서는, 양국 중 한 나라가 제3국의 압박을 받을 경우에 서로 돕고 거중 조정을 한다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이 조약도 영사 재판에 의한 치외 법권과 최혜국 대우를 규정한 불평등 조약이었다.
 
 
 
미국과 조약을 체결한 조선은, 이어서 영국, 독일, 러시아, 프랑스 등 여러 나라와도 외교 관계를 맺었다.
 
조선은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맺고, 서양 여러 나라에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국제 무대에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서양의 근대적인 사상과 문물 제도를 수용하여 근대 사회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개항은 열강의 자본주의적 팽창 정책에 의해 강요되었고, 서양 근대 문명의 수입은 일본을 비롯한 열강의 침략을 수반하는 것이었으므로, 조선은 이들 열강의 침략 경쟁의 무대가 되기도 하였다.
 
 
 
개항 이후에 밀어닥친 자본주의 열강의 경제적 침탈과 더불어, 양반 지배층의 압제와 수탈이 심해지면서 민중의 저항 의식은 날로 확대되어 갔다.
 
 
 
따라서, 문호 개방 이후의 조선은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자주 독립을 유지하는 문제와, 구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는 문제, 그리고 내외의 이중적 수탈로부터 민중을 보호하면서 근대적 국민 국가를 수립하는 민족사적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이에 조선은, 근대 국가의 수립을 목표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부문에 걸쳐 개혁을 추구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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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1일 (수) 14:01 판

근대조약

Story

근대조약(近代條約). 조선은 19세기 후반부터 외국과 근대 조약을 체결하기 시작했다. 1876년의 강화도 조약으로 일본에 문호를 개방한 후, 서양 여러 나라에도 문호를 개방하였다. 미국과 영국, 독일, 러시아 등 서양국가 및 중국, 일본과 조약을 체결하면서, 세계 여러 나라와 전면적인 교류를 시작하였다. 조선은 대한제국으로 국체를 변경하고 대내외적으로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면서 근대적인 국가수립을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결국 20세기 초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쇄국정책을 주장하던 대원군이 물러나고 민씨 일족이 대두하자, 조선정부의 국내외정책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통상 개화론자들은 대원군 정권의 실각으로 개혁 추진과 함께 문호 개방을 모색해나갔다. 정한 정책을 전면에 내세운 일제는 운요호 사건을 일으켜 무력으로 조선의 문호개방을 강요해 왔다. 조선은 마침내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맺어 문호를 개방하자, 미국이 조선과의 수교에 다시 관심을 갖고 접근해왔다. 이 무렵에, 러시아의 남하에 대응해야 한다는 황준헌(黃遵憲)의 조선책략의 유포와 인식의 변화로 종주권의 국제적 승인의 기회를 노리던 청의 알선으로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었다. 일본과 불평등조약을 맺었던 조선의 미국과의 조약도 거중조정 등의 규정이 있으나, 이것도 불평등 조약이었다. 미국과 조약을 체결한 조선은 이어서 영국, 독일, 러시아, 프랑스 등 여러 나라와도 외교 관계를 맺어 국제무대에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서양의 근대적인 사상과 문물 제도를 수용하여 근대사회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개항은 열강의 자본주의적 팽창 정책에 의해 강요되었고, 서양 근대 문명의 수입은 일본을 비롯한 열강의 침략을 수반하는 것이었으므로, 조선은 이들 열강의 침략 경쟁의 무대가 되기도 하였지만, 조선은 근대국가의 수립을 목표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부문에 걸쳐 개혁을 추구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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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0-401 Event 사건 근대조약(近代條約) 근대조약 近代條約 http://dh.aks.ac.kr/hanyang2/wiki/index.php/E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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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협약 근대조약 isRelatedTo
병자수호조약 근대조약 isRelated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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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위키백과 불평등 조약 https://ko.wikipedia.org/wiki/불평등_조약

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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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한승훈, 「「조미수호통상조약(1882)」 체결 당시 미국의 ‘공평함’이 갖는 함의 - 조선의 관세자주권 확보 시도와 좌절을 중심으로-」, 『전북사학』 52, 전북사학회, 2018. KCI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333510
논문 유바다, 「19세기 후반 조선의 국제법적 지위에 관한 연구」, 고려대 박사학위논문, 2017.
논문 권한용, 「일제식민지통치기 초기 조선에 있어서의 불평등조약의 국제법적 효력」, 『法史學硏究』 29, 한국법사학회, 2004. KCI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029199
단행본 동북아역사재단 편, 『근대 조약과 동아시아 영토침탈 관련 자료 선집 Ⅰ, Ⅱ』, 동북아역사재단, 2021.
단행본 森万佑子, 『朝鮮外交の近代-宗属関係から大韓帝国へ-』, 名古屋大学出版会, 2017.
단행본 동북아역사재단, 『한일 조약 자료집(1876~1910)-근대외교로 포장된 침략』, 동북아역사재단, 2020.
단행본 동북아역사재단 한국외교사편찬위원회, 『한국의 대외관계와 외교사 - 근대 편』, 동북아역사재단, 2018.
단행본 전명혁 외, 『근대동아시아 외교문서 해제 1~27』, 선인, 2017.
단행본 최덕수 외, 『조약으로 본 한국근대사』, 열린책들, 2010.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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