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개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새 문서: ==Definition==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left" ! style="width:100px" | id || class || groupName || partName || label || han...) |
(→Definition) |
||
1번째 줄: | 1번째 줄: | ||
− | ==Definition== | + | ==Definition== |
− | + | 1894년(고종 31) 7월 초부터 1896년 2월 초까지 약 19개월간 3차에 걸쳐 추진된 일련의 개혁운동을 말한다. 을미사변을 계기로 추진된(1895년 8월~1896년 2월) 제3차 개혁을 따로 분리하여 ‘을미개혁’이라고 부른다.갑오개혁은 멀리 실학(實學)에서부터 갑신정변과 동학농민운동에 이르는 조선시대의 여러 가지 개혁요구 내지 운동을 배경으로 하여 반청·독립정신을 가진 친일개화파 관료들이 추진한 개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갑오개혁은 조선사회에 있어서 근대적인 개혁에의 내재적 지향을 반영한 획기적인 개혁으로서, 일본의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이나 청말(淸末)의 무술변법(戊戌變法)에 대비되는 우리나라 근대화의 중요한 역사적 기점이었다. 그러나 갑오개혁은 그 시의성(時宜性)과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추진세력이 일본의 무력에 의존하였다는 제약성 때문에, 반일·반침략을 우선시켰던 국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좌절되었다. | |
− | |||
==Semantic Data== | ==Semantic Data== |
2021년 10월 21일 (목) 15:50 판
목차
Definition
1894년(고종 31) 7월 초부터 1896년 2월 초까지 약 19개월간 3차에 걸쳐 추진된 일련의 개혁운동을 말한다. 을미사변을 계기로 추진된(1895년 8월~1896년 2월) 제3차 개혁을 따로 분리하여 ‘을미개혁’이라고 부른다.갑오개혁은 멀리 실학(實學)에서부터 갑신정변과 동학농민운동에 이르는 조선시대의 여러 가지 개혁요구 내지 운동을 배경으로 하여 반청·독립정신을 가진 친일개화파 관료들이 추진한 개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갑오개혁은 조선사회에 있어서 근대적인 개혁에의 내재적 지향을 반영한 획기적인 개혁으로서, 일본의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이나 청말(淸末)의 무술변법(戊戌變法)에 대비되는 우리나라 근대화의 중요한 역사적 기점이었다. 그러나 갑오개혁은 그 시의성(時宜性)과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추진세력이 일본의 무력에 의존하였다는 제약성 때문에, 반일·반침략을 우선시켰던 국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좌절되었다.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id | class | groupName | partName | label | hangeul | hanja | english | infoUrl | iconUrl |
---|---|---|---|---|---|---|---|---|---|
Contextual Relations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note |
---|---|---|---|---|
Web Resource
type | resource | title | description/caption | URL |
---|---|---|---|---|
Bibliography
type | bibliographic index | online resource | url |
---|---|---|---|
Notes
Semantic Network Gr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