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匕

hanyang
박수정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10월 4일 (일) 15:49 판 (새 문서: __NOTOC__ ==Definition== 조선시대 의례에서 기장[黍]이나 피[稷], 희생, 채소 등을 제기에 담을 때 쓰는 도구이다. <ref>[http://dh.aks.ac.kr/Encyves/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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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

조선시대 의례에서 기장[黍]이나 피[稷], 희생, 채소 등을 제기에 담을 때 쓰는 도구이다. [1] 세종실록오례 ◎ 비(匕) : 《예서(禮書)》에 이르기를, "비(匕)는 길이가 3척이나 되고, 혹은 5척이나 되니, 서직(黍稷)의 비가 있고, 생체(牲體)의 비가 있고, 소비(疏匕)가 있으니, 세 가지의 비는 가시나무로써 한다. 늠인(廩人)059) 의 개(槪)060) 는 서직(黍稷)의 비(匕)이요, 옹인(雍人)061) 의 개(槪)는 생체(牲體)의 비(匕)이니, 생체의 비는 도비(挑匕)이다. 그 제도는, 서직의 비는 도비보다 작고, 도비는 소비보다 작다. 유사(有司)가 제찬(祭饌)을 걷어치우면, 사마(司馬)가 두 손으로 도비의 자루를 잡고 청주(淸酒)를 떠내어 소비에 붓는데, 이와 같이 하기를 세 번 한다. 도비로써 떠난 뒤에 소비에 붓는 것이 세 번이나 된다면, 소비가 큰 것이다."고 하였다. ◎ 匕 : 《禮書》云: "匕長三尺或五尺, 有黍稷之匕, 有牲體之匕, 有疏匕。 三匕以棘, 廩人之槪黍稷之匕也, 雍人之所槪牲體之匕也。 牲體之匕, 挑匕也。 其制則黍稷之匕, 小於挑匕; 桃匕小於疏。 有司徹, 司馬以二手執挑匕柄, 以挹渣注于疏匕, 若是者三。 挹之以挑匕, 然後注于疏匕者三, 則疏匕大矣。"[2]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id class groupName partName label hangeul hanja english infoUrl iconUrl
비-匕 Object 물품 제기 비(匕) ritual vessel http://dh.aks.ac.kr/hanyang/wiki/index.php/비-匕


국사편찬위원회[1]

Additional Attributes

propertyName value
id 비-匕
이칭/별칭
재질
색상
사용 신분 국가제사, 왕실제사

Contextual Relations

source target relation attribute image
『세종실록오례』 비-匕 documents <세종실록오례 권128, 길례서례(吉禮序例), 제기도설(祭器圖說)> 『사림광기(事林廣記)』에 이르기를, “발[足]이 없는 가마솥을 부(釜)라 하고, 발이 있는 가마솥을 기(錡)라 한다. 빈조(蘋藻)를 삶아서 제사를 지내는 데에 쓰인다.”고 하였다. 事林廣記云無足曰釜有足曰錡可用煮蘋藻以供祭 [3]
국사편찬위원회[2]
『국조오례의』 비-匕 documents <국조오례의서례 권1,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예서(禮書)』에 이르기를, “비(匕)의 길이는 3尺, 혹은 5尺이다. 서직(黍稷)에 쓰는 비(匕)가 있고, 생체(牲體)에 쓰는 비(匕)가 있으며 소비(䟽匕)가 있다. 이 삼비(三匕)는 극목(棘木)으로 만든다. 늠인(廩人)이 서직(黍稷)을 평미레[平木]하는 비(匕)가 있고, 옹인(雍人)이 생체(牲體)를 뜨는 비(匕)가 있다. 생체(牲體)에 쓰는 비(匕)는 도비(挑匕)이다. 그 제도는 서직(黍稷)에 쓰는 비(匕)는 도비(挑匕)보다 작고, 도비(挑匕)는 소비(疏匕)보다 작다. 유사(有司)가 물러가면 사마(司馬)가 두 손으로 도비의 자루를 잡고 국을 떠서 소비에 붓는데 이렇게 세 번을 한다. 도비로 뜬 뒤에 소비에 붓기를 세 번 한다면 소비는 큰 것이다. 禮書云匕長三尺或五尺有黍稷之匕有牲體之匕有䟽匕三匕以棘廪人之摡黍稷之匕也雍人之所摡牲體之匕也牲體之匕挑匕也其制則黍稷之匕小於挑匕挑匕小於䟽有司徹司馬以二手執挑匕柄以挹湆注于䟽匕若是者三挹之以挑匕然後注于䟽匕者三則䟽匕大矣 [4]
『국조상례보편』 documents <국조상례보편 도설(圖說), 반우(返虞)> 항목없음. [5] 조선후기 1758년(영조 34)에 영조(英祖)는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를 편찬하고 그중 흉례(凶禮)의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을 편찬하였다.
『춘관통고』 documents <춘관통고 권86, 흉례(凶禮)> 부(釜)는 와토(瓦土)를 구워서 만든다. 입지름은 3寸이고 깊이는 2寸이다. 釜用瓦土燔造口圓徑三寸深二寸 [6]
조선후기 1788년(정조 12)에 정조(正祖)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등의 내용을 모아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오례(五禮)를 상세하게 기록한 『춘관통고(春官通考)』를 편찬하였다. 부(釜)는 왕실(王室)의 국장(國葬) 때 부장하던 의물로 명기(明器)의 하나이다.
『대한예전』 documents <대한예전 권3,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사림광기(事林廣記)』에 말하기를, “발이 없는 솥을 부(釜)라 하고, 발이 있는 것을 기(錡)라고 한다. 빈조(蘋藻)를 익혀 제사에 바치는데 쓴다.”라고 했다. 事林廣記云無足曰釜有足曰錡可用煮蘋藻以供祭 [7]
『종묘의궤』 documents <종묘의궤 권1, 종묘제기도설(宗廟祭器圖說)> 『사림광기(事林廣記)』에 의하면,“발이 없는 솥을 부(釜)라 하고, 발이 있는 솥을 기(錡)라 한다. 빈(蘋)과 조(藻)를 끓여 제사에 음식을 올리는 데에 사용할 수 있다.” 라고 하였다. 事林廣記云無足曰釜有足曰錡可用煮蘋藻以供祭 [8]
규장각한국학연구원[3]
『사직서의궤』[9] documents <사직서의궤 권1, 제기도설(祭器圖說)> 『사림광기(事林廣記)』에 말하기를, “발이 없는 솥을 부(釜)라 하고, 발이 있는 것을 기(錡)라고 한다. 빈조(蘋藻)를 익혀 제사에 바치는데 쓴다.”라고 하였다. 事林廣記云無足曰釜有足曰錡可用煮蘋藻以供祭 [10]
1783년(정조 7) 1월 8일에 사직서(社稷署)의 제례의식[祭儀]제식(祭式)·단(壇)·유(壝)·관사(館舍) 등을 참고하고자 작성된 5권 3책의 의궤가 편찬되어, 1804년(순조 4) 1차 증보되고, 1842년(현종 8) 2차 증보됨./ 조선후기 정조나 순조 때 사직에서 왕실의 제사에 나물을 삶는 용도로 사용한다.
『제기도감의궤』[11] documents <제기도감의궤 권1, 도감(都監)> 항목 없음. [12] 『제기도감의궤』는 1611년(광해군 3) 8월 24일 건원릉(健元陵)과 현릉(顯陵)에 친제(親祭)를 거행하기 위해 제기가 부족하자, 그해 9월 9일부터 이듬해 11월까지 이듬해까지 제기도감을 설치하여 각종 제기를 만든 전말을 기록하고 있음.
『경모궁의궤』 documents <경모궁의궤 권1, 제기도설(祭器圖說)> 『사림광기(事林廣記)』에 이르기를, “발[足]이 없는 가마솥을 부(釜)라 하고, 발이 있는 가마솥을 기(錡)라 한다. 빈조(蘋藻) 등의 수초(水草)를 삶아서 제사를 지내는 데에 쓰인다.”라고 하였다. 事林廣記云無足曰釜有足曰錡可用煮蘋藻 [13]
『영조국장도감의궤』[14] documents <영조국장도감의궤 국장도감도청의궤 권상, 이방 명기질> 솥[釜]은 1이다. 와기(瓦器)를 쓴다. 입구의 지름은 3寸, 깊이는 2寸이다. 주준(酒樽)은 4이다. 자기(磁)를 쓴다. 청주(淸酒)를 들만큼 담는다. 주병(酒甁)은 1이다. 자기[磁]를 쓴다. 잔(盞)은 3이다. 대(臺)를 갖추고, 자기를 쓴다. 향로(香爐)는 1이다. 자기를 쓴다. 입구의 원지름은 1寸 5分, 복부의 지름은 2寸이다. 두 귀[耳]와 세 다리[足]가 있다. 덮개[蓋]까지 합친 높이는 2寸 5分이다. 밥주발[飯鉢]은 1이다. 자기를 쓴다. 입구의 지름은 1寸 5分, 복부의 지름은 2寸이며, 덮개까지 합친 높이는 2寸 5分이다. 시접(匙楪)은 1이다. 자기를 쓴다. 입구의 원지름은 1寸 9分, 깊이는 1寸이다. 찬접(饌楪)은 3이다. 자기를 쓴다. 소채포해접(蔬菜脯醢楪)은 3이다. 자기를 쓴다. 釜一用瓦口圓經三寸深二寸酒樽四用磁盛淸酒量入酒甁一用磁盞三臺具用磁香爐一用磁口圓經寸五分腹圓經二寸兩耳三足通蓋高二寸五分飯鉢一用磁口圓經寸五分腹圓經二寸通蓋高二寸五分匙楪一用磁口圓經寸九分深一寸饌楪三用磁蔬菜脯醢楪三用磁 [15]
조선후기 1776년(정조 즉위년) 영조(英祖)의 국장(國葬) 때, 솥(釜), 주준(酒樽), 주병(酒甁), 잔(盞), 향로(香爐), 밥주발[飯鉢], 시접(匙楪)은 왕릉에 부장하던 명기(明器)로 사용하였다.
『정조국장도감의궤』[16] documents <정조국장도감의궤 국장도감의궤 권2, 이방 명기질> 세뢰(洗罍) 1坐는 무게 22斤 4兩이다. 洗罍一坐重二十二斤四兩 [17]
조선후기 1800년(순조 즉위년) 정조(正祖)의 국장(國葬) 때, 부(釜)는 제사(祭祀) 때 나물을 삶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순조국장도감의궤』[18] documents <순조국장도감의궤 제2책, 이방의궤> 부 순조국장도감의궤 규장각.jpg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부(釜) 『종묘의궤(宗廟儀軌)』 B는 A에 그려져 있다 B ekc:isDepictedIn A
부(釜)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宗廟親祭規制圖說屛風)》 B는 A에 그려져 있다 B ekc:isDepictedIn A
부(釜) 『순조국장도감의궤(純祖國葬都監儀軌)』 B는 A에 그려져 있다 B ekc:isDepictedIn A
부(釜) 『정조국장도감의궤(正祖國葬都監儀軌)』 B는 A에 그려져 있다 B ekc:isDepictedIn A
부(釜) 『효의왕후국장도감의궤(孝懿王后國葬都監儀軌)』 B는 A에 그려져 있다 B ekc:isDepictedIn A
부(釜) 제례(祭禮) A는 B에 사용되었다 A ekc:isUsedIn B

Spatial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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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ine Reference

type resource title desctription/caption URL
도설 세종실록오례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부 http://sillok.history.go.kr/id/kda_20002008_029
도설 국조오례의 http://kyudb.snu.ac.kr/book/text.do?book_cd=GK00185_00&vol_no=0001
참고 조선시대 왕실문화 도해사전 부釜 http://kyujanggak.snu.ac.kr/dohae/sub/schDetail.jsp?no=D0528&category=A&sWord=부
참고 한국전통지식포탈 http://www.cbd-chm.go.kr/home/rsc/rsc01003p_6.do?dt_gbn=TC&data_gbn_cd=BIO&cls_no=120000023992&cls_id=13392&pageIndex=32
https://www.koreantk.com/ktkp2014/search-all/search-by-keyword.page?sl=&&keyword=%EB%B6%80&setId=10040&pageNo=1&target=CRA
참고 조선왕조실록사전 부 항목없음. http://encysillok.aks.ac.kr
참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제기 부 항목없음. http://encykorea.aks.ac.kr
참고 위키 실록사전 제기(祭器) 부 항목없음.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제기(祭器)
참고 위키 Encyves 한국 기록유산 http://dh.aks.ac.kr/Encyves/wiki/index.php/부
도해 세종실록 오례 http://sillok.history.go.kr/images/slkimg/ida_040009b01.jpg
  • type: 해설, 참고, 3D_모델, VR_영상, 도해, 사진, 동영상, 소리, 텍스트

Bibliography

author title publication edition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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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라, 「조선전기 길례용 분청사기 연구 -충효동요지 출토유물을 중심으로-」, 『미술사학연구』223, 조선시대사학회, 1999.
김종일, 「조선후기 종묘제기와 유기장의 제작기술 연구」, 한서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5.
김종임, 「조선왕실 금속제기 연구 : 종묘제기를 중심으로」, 『미술사학연구』제277호, 한국미술사학회, 2013.
손명희, 「조선의 국가 제사를 위한 그릇과 도구」, 『조선의 국가의례, 오례』, 국립고궁박물관, 2015, 85~136쪽.
이귀영, 「종묘제례의 제기와 제수의 진설 원리」, 『한국미술사교육학회지』제27호,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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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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