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7년(고종 24) 1월에 고종이 대왕대비 신정왕후의 팔순을 축하하는 궁중연향(宮中宴享)인 진찬(進饌)을 거행하였다.[1] 의례가 있을 때는 직무분장(職務分掌)에 따라 궁녀를 다양한 명칭으로 불렀으며 착용하는 복색을 달리하였다. 여령(女伶)이란 진연이나 진찬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진행을 돕는 역할을 담당한 자로서 의장 기물을 들고 있기도 하고 순서에 따라 일을 준비하였다. 이들은 맡은 바 임무에 따라 복색에 차이를 두었다.[2]『정해진찬의궤』에는 아래와 같은 차비여령의 복장을 기록하고 있다. 각 차비여령은 머리에 화관을 쓰고 황초단삼(黃綃單衫)을 입고, 남색치마(藍色裳) 위에 홍색웃치마(紅綃裳)를 덧입으며, 허리에는 홍단금루수대(紅緞金縷繡帶)를 두르고 손에 오색한삼(五色汗衫)을 드리우고 초록혜(草綠鞋)를 신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