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봉한(洪鳳漢, 1713-1778)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익여(翼汝), 호는 익익재(翼翼齋). 이조판서 홍만용(洪萬容)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중기(洪重箕)이고, 아버지는 홍현보(洪鉉輔)이며, 어머니는 임방(任埅)의 딸이다. 세자익위사세마로 있을 때인 1743년(조선 영조 19) 딸이 세자빈[惠慶宮洪氏]으로 뽑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장인이 되었다.[1]
<사도세자의 장인으로서 정쟁에 참여하다>
사도세자의 장인이며, 세손(정조)의 외할아버지로서 영조계비 정순왕후 김씨(貞純王后金氏)의 친정 인물인 김귀주(金龜柱) 세력과 권력 다툼을 하였다. 영조 대 중반 이후 김귀주 중심의 남당(南黨)에 대립했던 북당(北黨)의 중심인물로 평가되었다.[2]
<사도세자 사후의 대처>
조선 후기 노론·소론이 대립하는 가운데 1762년(영조 38) 세자가 죽음을 당할 때에 방관적인 태도를 취해 후일 정적들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영조가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리는 등 세자에 대한 처분을 뉘우치자, 그 사건을 초래하게 한 김구주 일파를 탄핵하여 정권을 장악하였다. 그리고 세자 죽음의 전말을 상세히 적은 『수의편(垂義篇)』을 편찬하여 반대파를 배격하는 구실로 이용하였다. 정조 연간에는 그의 행적에 대한 시비가 정파 대립의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그래서 그를 공격하는지 두둔하는지 여부에 따라 벽파(僻派)와 시파(時派)로 구분하기도 하였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