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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__NOTOC__ ==Definition== 조선시대 의례에서 기장[黍]이나 피[稷], 희생, 채소 등을 제기에 담을 때 쓰는 도구이다.<ref>"[http://dh.aks.ac.kr/Encyves/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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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의례에서 기장[黍]이나 피[稷], 희생, 채소 등을 제기에 담을 때 쓰는 도구이다.<ref>"[http://dh.aks.ac.kr/Encyves/wiki/index.php/비(숟가락) 비(숟가락)]", <html><online style="color:purple">『위키 Encyves 한국 기록유산』<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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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도(鸞刀)는 조선시대에 왕실의 제사 때 희생(犧牲)을 베는데 사용하는 칼이다. <ref>"[http://www.koreantk.com/ktkp2014/craft/craft-view.view?craftCd=ktc000301 난도]",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전통지식포탈』<sup>online</sup></online></html>, 특허청.</ref><br/>
[[세종실록오례|『세종실록오례』]] ◎ () : [[예서|《예서(禮書)》]]에 이르기를, "()는 길이가 3척이나 되고, 혹은 5척이나 되니, [[서직비|서직(黍稷)의 비]]가 있고, [[생체비|생체(牲體)의 비]]가 있고, [[소비|소비(疏匕)]]가 있으니, 세 가지의 비는 가시나무로써 한다. 늠인(廩人:周代 쌀의 出納을 맡은 관직)의 개(槪:평미레)는 서직(黍稷)의 ()이요, 옹인(雍人:周代 犧牲의 割烹을 맡은 관직)의 개()는 생체(牲體)의 비()이니, 생체의 비는 도비(挑匕)이다. 그 제도는, 서직의 비는 도비보다 작고, 도비는 소비보다 작다. 유사(有司)가 제찬(祭饌)을 걷어치우면, 사마(司馬)가 두 손으로 도비의 자루를 잡고 청주(淸酒)를 떠내어 소비에 붓는데, 이와 같이 하기를 번 한다. 도비로써 떠난 뒤에 소비에 붓는 것이 세 번이나 된다면, 소비가 큰 것이다."고 하였다. ◎ : 《禮書》云: "匕長三尺或五尺, 有黍稷之匕, 有牲體之匕, 有疏匕。 三匕以棘, 廩人之槪黍稷之匕也, 雍人之所槪牲體之匕也。 牲體之匕, 挑匕也。 其制則黍稷之匕, 小於挑匕; 桃匕小於疏。 有司徹, 司馬以二手執挑匕柄, 以挹渣注于疏匕, 若是者三。 挹之以挑匕, 然後注于疏匕者三, 則疏匕大矣。"<ref>『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http://sillok.history.go.kr/id/kda_20002008_031 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 <html><online style="color:purple">『조선왕조실록』<sup>online</sup></online></html>, 국사편찬위원회.</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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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오례|『세종실록오례』]] ◎ 난도(鸞刀) : [[성송반악도|《성송반악도(聖宋頒樂圖)》]]에 이르기를, "《예기(禮記)》에 난도(鸞刀)는 옛날의 칼인데, 종묘(宗廟)에 사용하니, 종묘에서 지금의 칼을 사용하지 않고서 옛날의 칼을 사용함은 옛날의 일을 닦아 계승한 까닭이다."하고, 《시경(詩經)》의 《신남산편(信南山篇)》에, "그 난도를 잡아 그 순색(純色)의 희생(犧牲)을 고()한다."하였으며, 《예기(禮記)》의 《절해장(節解章)》에는 "반드시 난도가 있는 것은, 그 난령(鸞鈴)의 소리가 궁성(宮聲)과 상성(商聲)이 조화(調和)된 후에 희생(犧牲)을 베게됨을 취한 것이다."하였으며,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는 "선공(宣公) 12년에 정백(鄭伯)이 오른손으로 난도를 잡았다."고 하였는데, 주(注)에 이르기를, "난도는 종묘(宗廟)에서 희생(犧牲)을 베고 끊는 칼인데, 고리[鐶]에 방울[和]이 있고, 칼 끝에 방울[鸞]이 있다. 칼 끝에 있는 것은 소리가 궁성(宮聲)과 상성(商聲)에 맞고, 세 방울[三和]이 고리에 있는 것은 소리가 각성(角聲)·치성(徵聲)·우성(羽聲)에 맞는다."고 하였다. ◎ 鸞刀 : 《聖宋頒樂圖》云: "《禮記》: ‘鸞刀, 古刀也, 用於宗廟。 宗廟不用今刀, 而用古刀, 修古之故。’" 《詩》 《信南山》曰: "執其鸞刀, 以啓其毛。" 《禮記節解》曰: "必有鸞刀者, 取其鸞鈴之聲。 宮商調和, 而後斷割也。" 《春秋》 《公羊傳》: "宣十二年, 鄭伯右執鸞刀。" 注云: "鸞刀, 宗廟割切之刀。 鐶有和, 鋒有鸞在鋒, 聲中宮商, 三和在鐶, 聲中角徵羽。"<ref>『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http://sillok.history.go.kr/id/kda_20002008_032 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난도], <html><online style="color:purple">『조선왕조실록』<sup>online</sup></online></html>, 국사편찬위원회.</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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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ml><img width="120" src="http://sillok.history.go.kr/images/slkimg/ida_040009b04.jpg"/></html><br/>국사편찬위원회[http://sillok.histor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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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조오례의]] || [[비-匕]] || [[documen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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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조오례의]] || [[난도]] || [[documents]] || <국조오례의서례 권1,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성송반악도|『성송반악도(聖宋頒樂圖)』]]에 말하기를, “『예기(禮記)』에 난도(鸞刀)는 고도(古刀)이며, 종묘(宗廟)에 쓰는 것이다. 종묘에 지금의 칼은 쓰지 않고 고도(古刀)를 씀은 옛것을 닦기 위한 까닭이다.” 했다. 『시경(詩經)』 신남산편(信南山篇)에 말하기를, “그 난도(鸞刀)를 잡고 그 털을 연다.” 했고, 『예기절해(禮記節解)』에 말하기를, “반드시 난도(鸞刀)를 씀은 그 방울 소리를 듣기 위한 것이다. 궁(宮)과 상(商)이 조화(調和)된 뒤에 고기를 벤다.” 했다. 『춘추(春秋)』 공양전(公羊傳)의 선공(宣公) 12년에 정백(鄭伯)이 오른손에 난도(鸞刀)를 잡았다고 했다. 『주(註)』에 말하기를, “난도(鸞刀)는 종묘(宗廟)에서 고기를 베는 칼이다. 환(鐶)에 화(和)가 있고, 봉(鋒)에 난(鸞)이 있다. 난(鸞)이 봉성(鋒聲)에 있으면 소리가 궁상삼(宮商三)에 맞고, 화(和)가 환성(鐶聲)에 있으면 소리가 각치우(角徵羽)에 맞는다.” 했다. 聖宋頒樂圖云禮記鸞刀古勺也用於宗廟宗廟不用今刀而用古刀修古之故詩信南山曰執其鸞刀以啓其毛禮記節解曰必用鑾刀取其鑾鈴之聲宮商調和而後斷割也春秋公羊傳宣士一年鄭伯右執鑾刀注云鑾刀宗廟切之刀鐶有和鋒有鑾鑾在鋒聲中宮商三和在鐶聲中角徵羽 <ref>『國朝五禮序例』 1권, 길례 제기도설, [http://kyudb.snu.ac.kr/book/text.do?book_cd=GK00185_00&vol_no=0001 鸞刀], <html><online style="color:purple">『규장각원문검색서비스』<sup>online</sup></online></html>,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br/>『국조오례의서례』 1권, 길례 제기도설, [http://www.koreantk.com/ktkp2014/craft/craft-view.view?craftCd=ktc000301 난도],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전통지식포탈』<sup>online</sup></online></html>, 특허청.</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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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ml><img width="120" src="http://www.koreantk.com/ktkp2014/craft/image/shape/ktc000301/1200x1200/ratio/ktc000301-200/jpg.image"/></html><br/>한국전통지식포탈[https://www.koreant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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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예전]] || [[비-匕]] || [[documen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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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조상례보편]] || [[난도]] || [[documents]] || <국조상례보편 도설(圖說), 반우(返虞)> 항목 없음. <ref>『국조상례보편』, 도설(圖說), 반우(返虞), [https://www.koreantk.com/ktkp2014/search-all/search-by-keyword.page?pageNo=1&pageSize=&keyword=국조상례보편&target=CRA 난도],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전통지식포탈』<sup>online</sup></online></html>, 특허청.</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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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1758년(영조 34)에 영조(英祖)는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를 편찬하고 그중 흉례(凶禮)의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을 편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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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묘의궤]] || [[비-匕]] || [[documen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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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관통고]] || [[난도]] || [[documents]] || <춘관통고 권86, 흉례(凶禮)> 항목 없음. <ref>『춘관통고』 86권, 흉례(凶禮), [https://www.koreantk.com/ktkp2014/search-all/search-by-keyword.page?&pageSize=&keyword=춘관통고&target=CRA&setId=10551&sl=&pageNo=5 춘관통고/난도],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전통지식포탈』<sup>online</sup></online></html>, 특허청.</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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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1788년(정조 12)에 정조(正祖)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등의 내용을 모아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오례(五禮)를 상세하게 기록한 『춘관통고(春官通考)』를 편찬하였다.</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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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묘의궤]] || [[|서직비]] || [[documen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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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예전]] || [[난도]] || [[documents]] || <대한예전 권3,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난(鸞)은 칼 끝에 궁(宮), 상(商), 각(角), 징(徵), 우(羽)가 있다.『성송반악도(聖宋頒樂圖)』에 이르기를, “『예기(禮記)』에 난도(鸞刀)는 옛날의 칼인데, 종묘(宗廟)에 사용하니, 종묘에서 지금의 칼을 사용하지 않고서 옛날의 칼을 사용함은 옛날의 일을 닦아 계승한 까닭이다.”하고, 『시경(詩經)』의 『신남산편(信南山篇)』에, “그 난도를 잡아 그 순색(純色)의 희생(犧牲)을 고(告)한다.”고 하였으며, 『예기(禮記)』의 『절해장(節解章)』에는 “반드시 난도가 있는 것은, 그 난령(鸞鈴) 의 소리가 궁성(宮聲)과 상성(商聲)이 조화(調和)된 후에 희생(犧牲)을 베게 됨을 취한 것이다.”고 하였으며,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는 “선공(宣公) 12년에 정백(鄭伯)이 오른손으로 난도를 잡았다.”고 하였는데, 주(注)에 이르기를, “난도는 종묘(宗廟)에서 희생(犧牲)을 베고 끊는 칼인데, 고리[鐶]에 방울[和]이 있고, 칼 끝에 방울[鸞]이 있다. 칼 끝에 있는 것은 소리가 궁성(宮聲)과 상성(商聲)에 맞고, 세 방울[三和]이 고리에 있는 것은 소리가 각성(角聲)·치성(徵聲)·우성(羽聲)에 맞는다.”고 하였다. 鸞在鋒宮商角徵羽聖宋頒樂圖云禮記鸞刀古刀也用於宗廟宗廟不用今刀而用古刀修古之故詩信南山曰執其鸞刀以啓其毛禮記節解曰必用鸞刀者取其鸞鈴之聲宮商調和而後斷割也春秋公羊傳宣十二年鄭伯右執鸞刀注云鸞刀宗廟割切之刀鐶有 和鋒有鸞匸在鋒聲中官商三和在鐶聲中角徵羽 <ref>『대한예전』 3권, 길례 제기도설, [http://www.koreantk.com/ktkp2014/craft/craft-view.view?craftCd=ktc001489 난도],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전통지식포탈』<sup>online</sup></online></html>, 특허청.</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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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ml><img width="120" src="http://www.koreantk.com/ktkp2014/craft/image/shape/ktc001489/1200x1200/ratio/ktc001489-200/jpg.image"/></html><br/>한국전통지식포탈[https://www.koreant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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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직서의궤]] || [[비-匕|정비]] || [[documen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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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묘의궤]] || [[난도]] || [[documents]] || <종묘의궤 권1, 종묘제기도설(宗廟祭器圖說)> [[성송반악도|『성송반악도(聖宋頒樂圖)』]]에 따르면 “『예기』에서는 난도(鸞刀)를 옛날 칼이라고 하였으니, 종묘에서 사용한다. 종묘에서 지금의 칼을 사용하지 않고 옛날 칼을 사용하는 것은 옛것을 닦기 위한 까닭이다.”라고 하였다.『시경』의 「신남산(信南山)」에 의하면, “난도(鸞刀)를 들어 희생의 털을 헤쳐 보이네.”라고 하였다.『예기절해(禮記節解)』에 따르면 “반드시 난도(鸞刀)를 사용하는 것은 난령(鸞鈴)의 소리를 취하여 궁성(宮聲)과 상성(商聲)이 조화(調和)를 이룬 뒤에 희생(犧牲)을 자르려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따르면 “선공(宣公) 12년조 정백(鄭伯)이 오른손에 난도(鸞刀)를 들었다. 그 주에 “난도는 종묘에서 희생을 자를 때 사용하는 칼이다. 고리[鐶]에 화(和)라는 방울이 있고, 칼끝[]에 난(鸞)이라는 방울이 있다. 칼 끝에 있는 난은 소리가 궁성과 상성에 알맞고, 고리에 있는 세 개의 화는 소리가 각성(角聲), 치성(徴聲), 우성(羽聲)에 알맞다.” 하였다. 聖宋頒樂圖云禮記鸞刀古刀也用於宗廟宗廟不用今刀而用古刀修古之故詩信南山曰執其鸞刀以啓其毛禮記節解曰必用鑾刀者取其鑾鈴之聲宮商調和而後斷割也春秋公羊傳宣十二年鄭伯右執鑾刀注云鑾刀宗廟割切之刀鐶有和鋒有鑾鑾在鋒聲中宮商三和在鐶聲中角徵羽 <ref>『종묘의궤』 1권, 종묘제기도설, [http://www.koreantk.com/ktkp2014/craft/craft-view.view?craftCd=ktc001012 난도],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전통지식포탈』<sup>online</sup></online></html>, 특허청.</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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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ml><img width="120" src="http://www.koreantk.com/ktkp2014/craft/image/shape/ktc001014/1200x1200/ratio/ktc001014-200/jpg.image"/></html><br/>한국전통지식포탈[https://www.koreantk.com/]<br/><html><img width="120" src="http://dh.aks.ac.kr/Encyves/wiki/images/4/4c/궁중기록화_물품_난도_종묘의궤_규장각.jpg"/></html><br/>규장각한국학연구원[http://e-kyujangga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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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모궁의궤]] || [[비-匕|정필(鼎匕)]] || [[documen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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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직서의궤]]<ref>"[https://www.koreantk.com/ktkp2014/craft/search-craftOldbook.view?bookCd=ktcb0012 사직서의궤]",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전통지식포탈』<sup>online</sup></online></html>, 특허청.</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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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도]] || [[documents]] || <사직서의궤 권1, 제기도설(祭器圖說)> 『교특생(郊特牲)』에 이르기를, “할도(割刀)를 쓰되 귀한 난도(鑾刀)를 쓰는 것은 그 뜻을 귀히 여기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공양전(公羊傳)』의 주(註)의 “난도는 베고 자르는 칼이다. 고리[鐶]에는 화(和)라는 방울이 있고 칼끝[]에는 난(鑾)이라는 방울이 있다. 송(宋)나라 호원(胡瑗) 난령(鑾鈴)은 칼 끝에 있어서 소리가 궁성(宮聲)과 상성(商聲)에 합하니, 방울 2개를 쓰고, 화령(和鈴)은 고리에 있어서 소리가 치성(徵聲), 각성(角聲), 우성(羽聲)에 합하니, 방울 3개를 쓴다. 郊特牲云割刀之用鑾刀之貴貴其義也公羊傳註云鑾刀割切之刀鐶有和鋒有鑾宋胡瑗言鑾鈴在鋒聲合宮商用鈴二和鈴在鐶聲合微角羽用鈴三 <ref>『사직서의궤』 1권, 제기도설, [https://www.koreantk.com/ktkp2014/craft/craft-view.view?craftCd=ktc001299 난도],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전통지식포탈』<sup>online</sup></online></html>, 특허청.</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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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3년(정조 7) 1월 8일에 사직서(社稷署)의 제례의식[祭儀]제식(祭式)·단(壇)·유(壝)·관사(館舍) 등을 참고하고자 작성된 5권 3책의 의궤가 편찬되어, 1804년(순조 4) 1차 증보되고, 1842년(현종 8) 2차 증보됨./ 조선후기 정조나 순조 때 사직에서 왕실에서 제사 지낼 때 사용하는 제기이다. 난도(鑾刀)는 희생을 베는데 사용하는 칼이다.</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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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 || [[비-匕]] || [[documen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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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기도감의궤]]<ref>"[http://www.koreantk.com/ktkp2014/craft/search-craftOldbook.view?bookCd=ktcb0009 제기도감의궤]",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전통지식포탈』<sup>online</sup></online></html>, 특허청.</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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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도]] || [[documents]] || <제기도감의궤 권1, 도감(都監)> 주조하며 2개이다. 칼의 길이는 1尺 3寸 8分, 너비는 2寸 6分이다. 자루의 머리까지 합한 자루의 길이는 6寸 6分이다. 백금(白金)으로 장식하고 5개의 방울[鈴]이 있으며, 날[刃] 위에다 은(銀)으로 전자(篆字)를 새긴다. 영녕전(永寧殿) 1개, 종묘(宗廟) 1개이다. 鐵二刃長一尺三寸八分廣二寸六分柄長通柄頭鐵六寸六分餙以白金有五鈴刃上以銀篆刻永寧殿一宗廟一 <ref>『제기도감의궤』 1권, 도감(都監), [http://www.koreantk.com/ktkp2014/craft/craft-view.view?craftCd=ktc000968 난도],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전통지식포탈』<sup>online</sup></online></html>, 특허청.</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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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ml><img width="120" src="https://www.koreantk.com/ktkp2014/craft/image/shape/ktc000968/1200x1200/ratio/ktc000968-200/jpg.image"/></html><br/>한국전통지식포탈[https://www.koreantk.com/]</html><br/>『제기도감의궤』는 1611년(광해군 3) 8월 24일 건원릉(健元陵)과 현릉(顯陵)에 친제(親祭)를 거행하기 위해 제기가 부족하자, 그해 9월 9일부터 이듬해 11월까지 이듬해까지 제기도감을 설치하여 각종 제기를 만든 전말을 기록하고 있음./ 난도(鸞刀)는 영녕전(永寧殿)에 1개, 종묘(宗廟)에 1개를 만들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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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직서의궤_정비]] || [[비-匕]] || [[typ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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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모궁의궤]] || [[난도]] || [[documents]] || <경모궁의궤 권1, 제기도설(祭器圖說)> 『교특생(郊特牲)』에 이르기를, “할도(割刀)를 쓰되 귀한 난도(鑾刀)를 쓰는 것은 그 뜻을 귀히 여기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공양전(公羊傳)』의 주(註)의 “난도는 베고 자르는 칼이다. 고리[鐶]에는 화(和)라는 방울이 있고 칼끝[鋒]에는 난(鑾)이라는 방울이 있다. 송(宋)나라 호원(胡瑗) 난령(鑾鈴)은 칼 끝에 있어서 소리가 궁성(宮聲)과 상성(商聲)에 합하니, 방울 2개를 쓰고, 화령(和鈴)은 고리에 있어서 소리가 치성(徵聲), 각성(角聲), 우성(羽聲)에 합하니, 방울 3개를 쓴다. 이는 대개 방울 소리를 취하여 소리가 조화(調和)를 이룬 뒤에 희생(犧牲)을 베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郊特牲云割刀之用鑾刀之貴貴其義也公羊傳註云鑾刀割切之刀鐶有和鋒有鑾宋胡瑗言鑾鈴在鋒聲合宮商用鈴二和鈴在鐶聲合徵角羽用鈴三蓋取聲和而后斷也 <ref>『경모궁의궤』 1권, 제기도설, [http://www.koreantk.com/ktkp2014/craft/craft-view.view?craftCd=ktc001178 난도],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전통지식포탈』<sup>online</sup></online></html>, 특허청.</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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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ml><img width="120" src="http://www.koreantk.com/ktkp2014/craft/image/shape/ktc001178/1200x1200/ratio/ktc001178-200/jpg.image"/></html><br/>한국전통지식포탈[https://www.koreant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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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ref>"[http://dh.aks.ac.kr/Encyves/wiki/index.php/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 기록유산 Encyves』<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난도]] || [[documents]] || ||<html><img width="120" src="http://dh.aks.ac.kr/Encyves/wiki/images/4/44/궁중기록화_물품_난도_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_고궁.png"/></html><br/>AKS Encyves[http://dh.aks.ac.kr/Encyves/wiki/index.php/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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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 조선시대 왕실문화 도해사전 || 난도鸞刀 ||  || http://kyujanggak.snu.ac.kr/dohae/sub/schDetail.jsp?no=D1651&category=A&s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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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 한국전통지식포탈 || 난도 || 국조오례의 난도 || http://www.cbd-chm.go.kr/home/rsc/rsc01003p_6.do?dt_gbn=TC&data_gbn_cd=BIO&cls_no=120000023992&cls_id=13392&pageIndex=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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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주,|| 「조선시대 국가 제례(祭禮)와 변두(豆)의 사용」, 『동방학지』159,||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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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주,|| 「조선시대 국가 제례(祭禮)와 변두(豆)의 사용」, 『동방학지』159,||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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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은미,|| 「종묘제기와 조선시대 제기도설 연구」,||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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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봉주,|| 「조선시대 국가 祭禮와 준․뢰의 사용」, 『조선시대사학보』58,|| 조선시대사학회, 2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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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권,|| 「종묘제기고(宗廟祭器考), 『종묘대제문물』60,|| 궁중유물전시관,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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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정,|| 「조선초기 의례(儀禮)제정과 희준(犧尊)·상준(象尊)의 역사적 의미」, 『조선시대사학보』60,|| 조선시대사학회, 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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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소라,|| 「조선전기 길례용 분청사기 연구 -충효동요지 출토유물을 중심으로-」, 『미술사학연구』223,|| 조선시대사학회, 19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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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권,|| 「종묘제기고(宗廟祭器考)」, 『종묘대제문물』60,|| 궁중유물전시관,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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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일,|| 「조선후기 종묘제기와 유기장의 제작기술 연구」,|| 한서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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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권,|| 「조선시대 이준(彛尊)에 대한 고찰」, 『생활문물연구』14,|| 국립민속박물관,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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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임,|| 「조선왕실 금속제기 연구 : 종묘제기를 중심으로」, 『미술사학연구』제277호,||   한국미술사학회,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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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소라,|| 「조선전기 길례용 분청사기 연구 -충효동요지 출토유물을 중심으로-」, 『미술사학연구』223,|| 조선시대사학회, 19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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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명희,|| 「조선의 국가 제사를 위한 그릇과 도구」, 『조선의 국가의례, 오례』,|| 국립고궁박물관, 2015, 85~13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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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은미,|| 「종묘제기와 조선시대 제기도설 연구」,||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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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귀영,|| 「종묘제례의 제기와 제수의 진설 원리」, 『한국미술사교육학회지』제27호, ||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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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명희,|| 「조선의 국가 제사를 위한 그릇과 도구」, 『조선의 국가의례, 오례』,|| 국립고궁박물관, 2015, 85~13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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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귀영,|| 「종묘제례의 제기와 제수의 진설 원리」, 『한국미술사교육학회지』제27호, ||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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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방언,|| 『조선왕조 종묘와 제례』, || 문화재청, 2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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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고궁박물관,|| 『종묘, 조선의 정신을 담다』, || 국립고궁박물관, 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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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중유물전시관,|| 『종묘대제문물』, || 궁중유물전시관,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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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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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15일 (일) 11:15 판

Definition

난도(鸞刀)는 조선시대에 왕실의 제사 때 희생(犧牲)을 베는데 사용하는 칼이다. [1]
『세종실록오례』 ◎ 난도(鸞刀) : 《성송반악도(聖宋頒樂圖)》에 이르기를, "《예기(禮記)》에 난도(鸞刀)는 옛날의 칼인데, 종묘(宗廟)에 사용하니, 종묘에서 지금의 칼을 사용하지 않고서 옛날의 칼을 사용함은 옛날의 일을 닦아 계승한 까닭이다."하고, 《시경(詩經)》의 《신남산편(信南山篇)》에, "그 난도를 잡아 그 순색(純色)의 희생(犧牲)을 고(告)한다."하였으며, 《예기(禮記)》의 《절해장(節解章)》에는 "반드시 난도가 있는 것은, 그 난령(鸞鈴)의 소리가 궁성(宮聲)과 상성(商聲)이 조화(調和)된 후에 희생(犧牲)을 베게됨을 취한 것이다."하였으며,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는 "선공(宣公) 12년에 정백(鄭伯)이 오른손으로 난도를 잡았다."고 하였는데, 주(注)에 이르기를, "난도는 종묘(宗廟)에서 희생(犧牲)을 베고 끊는 칼인데, 고리[鐶]에 방울[和]이 있고, 칼 끝에 방울[鸞]이 있다. 칼 끝에 있는 것은 소리가 궁성(宮聲)과 상성(商聲)에 맞고, 세 방울[三和]이 고리에 있는 것은 소리가 각성(角聲)·치성(徵聲)·우성(羽聲)에 맞는다."고 하였다. ◎ 鸞刀 : 《聖宋頒樂圖》云: "《禮記》: ‘鸞刀, 古刀也, 用於宗廟。 宗廟不用今刀, 而用古刀, 修古之故。’" 《詩》 《信南山》曰: "執其鸞刀, 以啓其毛。" 《禮記節解》曰: "必有鸞刀者, 取其鸞鈴之聲。 宮商調和, 而後斷割也。" 《春秋》 《公羊傳》: "宣十二年, 鄭伯右執鸞刀。" 注云: "鸞刀, 宗廟割切之刀。 鐶有和, 鋒有鸞在鋒, 聲中宮商, 三和在鐶, 聲中角徵羽。"[2]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id class groupName partName label hangeul hanja english infoUrl iconUrl
난도 Object 물품 제기 난도(鸞刀) 난도 鸞刀 ritual vessel http://dh.aks.ac.kr/hanyang/wiki/index.php/난도


국사편찬위원회[1]

Additional Attributes

propertyName value
id 난도
이칭/별칭
재질
색상
사용처 국가제사, 왕실제사, 사직제, 길례, 흉례

Contextual Relations

source target relation attribute image
세종실록오례 난도 documents <세종실록오례 권128, 길례서례(吉禮序例), 제기도설(祭器圖說)> 『성송반악도(聖宋頒樂圖)』에 이르기를, “『예기(禮記)』에 난도(鸞刀)는 옛날의 칼인데, 종묘(宗廟)에 사용하니, 종묘에서 지금의 칼을 사용하지 않고서 옛날의 칼을 사용함은 옛날의 일을 닦아 계승한 까닭이다.”하고, 『시경(詩經)』의 『신남산편(信南山篇)』에, “그 난도를 잡아 그 순색(純色)의 희생(犧牲)을 고(告)한다.”고 하였으며, 『예기(禮記)』의 『절해장(節解章)』에는 “반드시 난도가 있는 것은, 그 난령(鸞鈴) 의 소리가 궁성(宮聲)과 상성(商聲)이 조화(調和)된 후에 희생(犧牲)을 베게됨을 취한 것이다.”고 하였으며,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는 “선공(宣公) 12년에 정백(鄭伯)이 오른손으로 난도를 잡았다.”고 하였는데, 주(注)에 이르기를, “난도는 종묘(宗廟)에서 희생(犧牲)을 베고 끊는 칼인데, 고리[鐶]에 방울[和]이 있고, 칼 끝에 방울[鸞]이 있다. 칼 끝에 있는 것은 소리가 궁성(宮聲)과 상성(商聲)에 맞고, 세 방울[三和]이 고리에 있는 것은 소리가 각성(角聲) · 치성(徵聲) · 우성(羽聲)에 맞는다.”고 하였다. 聖宋頒樂圖云禮記鸞刀古刀也用於宗廟宗廟不用今刀而用古刀修古之故詩信南山曰執其鸞刀以啓其毛禮記節解曰必有鸞刀者取其鸞鈴之聲宮商調和而後斷割也春秋公羊傳宣十二年鄭伯右執鸞刀注云鸞刀宗廟割切之刀鐶有和鋒有鸞在鋒聲中宮商三和在鐶聲中角徵羽 [3]
국사편찬위원회[2]
국조오례의 난도 documents <국조오례의서례 권1,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성송반악도(聖宋頒樂圖)』에 말하기를, “『예기(禮記)』에 난도(鸞刀)는 고도(古刀)이며, 종묘(宗廟)에 쓰는 것이다. 종묘에 지금의 칼은 쓰지 않고 고도(古刀)를 씀은 옛것을 닦기 위한 까닭이다.” 했다. 『시경(詩經)』 신남산편(信南山篇)에 말하기를, “그 난도(鸞刀)를 잡고 그 털을 연다.” 했고, 『예기절해(禮記節解)』에 말하기를, “반드시 난도(鸞刀)를 씀은 그 방울 소리를 듣기 위한 것이다. 궁(宮)과 상(商)이 조화(調和)된 뒤에 고기를 벤다.” 했다. 『춘추(春秋)』 공양전(公羊傳)의 선공(宣公) 12년에 정백(鄭伯)이 오른손에 난도(鸞刀)를 잡았다고 했다. 『주(註)』에 말하기를, “난도(鸞刀)는 종묘(宗廟)에서 고기를 베는 칼이다. 환(鐶)에 화(和)가 있고, 봉(鋒)에 난(鸞)이 있다. 난(鸞)이 봉성(鋒聲)에 있으면 소리가 궁상삼(宮商三)에 맞고, 화(和)가 환성(鐶聲)에 있으면 소리가 각치우(角徵羽)에 맞는다.” 했다. 聖宋頒樂圖云禮記鸞刀古勺也用於宗廟宗廟不用今刀而用古刀修古之故詩信南山曰執其鸞刀以啓其毛禮記節解曰必用鑾刀取其鑾鈴之聲宮商調和而後斷割也春秋公羊傳宣士一年鄭伯右執鑾刀注云鑾刀宗廟切之刀鐶有和鋒有鑾鑾在鋒聲中宮商三和在鐶聲中角徵羽 [4]
한국전통지식포탈[3]
국조상례보편 난도 documents <국조상례보편 도설(圖說), 반우(返虞)> 항목 없음. [5] 조선후기 1758년(영조 34)에 영조(英祖)는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를 편찬하고 그중 흉례(凶禮)의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을 편찬하였다.
춘관통고 난도 documents <춘관통고 권86, 흉례(凶禮)> 항목 없음. [6] 조선후기 1788년(정조 12)에 정조(正祖)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등의 내용을 모아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오례(五禮)를 상세하게 기록한 『춘관통고(春官通考)』를 편찬하였다.</html>
대한예전 난도 documents <대한예전 권3,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난(鸞)은 칼 끝에 궁(宮), 상(商), 각(角), 징(徵), 우(羽)가 있다.『성송반악도(聖宋頒樂圖)』에 이르기를, “『예기(禮記)』에 난도(鸞刀)는 옛날의 칼인데, 종묘(宗廟)에 사용하니, 종묘에서 지금의 칼을 사용하지 않고서 옛날의 칼을 사용함은 옛날의 일을 닦아 계승한 까닭이다.”하고, 『시경(詩經)』의 『신남산편(信南山篇)』에, “그 난도를 잡아 그 순색(純色)의 희생(犧牲)을 고(告)한다.”고 하였으며, 『예기(禮記)』의 『절해장(節解章)』에는 “반드시 난도가 있는 것은, 그 난령(鸞鈴) 의 소리가 궁성(宮聲)과 상성(商聲)이 조화(調和)된 후에 희생(犧牲)을 베게 됨을 취한 것이다.”고 하였으며,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는 “선공(宣公) 12년에 정백(鄭伯)이 오른손으로 난도를 잡았다.”고 하였는데, 주(注)에 이르기를, “난도는 종묘(宗廟)에서 희생(犧牲)을 베고 끊는 칼인데, 고리[鐶]에 방울[和]이 있고, 칼 끝에 방울[鸞]이 있다. 칼 끝에 있는 것은 소리가 궁성(宮聲)과 상성(商聲)에 맞고, 세 방울[三和]이 고리에 있는 것은 소리가 각성(角聲)·치성(徵聲)·우성(羽聲)에 맞는다.”고 하였다. 鸞在鋒宮商角徵羽聖宋頒樂圖云禮記鸞刀古刀也用於宗廟宗廟不用今刀而用古刀修古之故詩信南山曰執其鸞刀以啓其毛禮記節解曰必用鸞刀者取其鸞鈴之聲宮商調和而後斷割也春秋公羊傳宣十二年鄭伯右執鸞刀注云鸞刀宗廟割切之刀鐶有 和鋒有鸞匸在鋒聲中官商三和在鐶聲中角徵羽 [7]
한국전통지식포탈[4]
종묘의궤 난도 documents <종묘의궤 권1, 종묘제기도설(宗廟祭器圖說)> 『성송반악도(聖宋頒樂圖)』에 따르면 “『예기』에서는 난도(鸞刀)를 옛날 칼이라고 하였으니, 종묘에서 사용한다. 종묘에서 지금의 칼을 사용하지 않고 옛날 칼을 사용하는 것은 옛것을 닦기 위한 까닭이다.”라고 하였다.『시경』의 「신남산(信南山)」에 의하면, “난도(鸞刀)를 들어 희생의 털을 헤쳐 보이네.”라고 하였다.『예기절해(禮記節解)』에 따르면 “반드시 난도(鸞刀)를 사용하는 것은 난령(鸞鈴)의 소리를 취하여 궁성(宮聲)과 상성(商聲)이 조화(調和)를 이룬 뒤에 희생(犧牲)을 자르려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따르면 “선공(宣公) 12년조 정백(鄭伯)이 오른손에 난도(鸞刀)를 들었다. 그 주에 “난도는 종묘에서 희생을 자를 때 사용하는 칼이다. 고리[鐶]에 화(和)라는 방울이 있고, 칼끝[鋒]에 난(鸞)이라는 방울이 있다. 칼 끝에 있는 난은 소리가 궁성과 상성에 알맞고, 고리에 있는 세 개의 화는 소리가 각성(角聲), 치성(徴聲), 우성(羽聲)에 알맞다.” 하였다. 聖宋頒樂圖云禮記鸞刀古刀也用於宗廟宗廟不用今刀而用古刀修古之故詩信南山曰執其鸞刀以啓其毛禮記節解曰必用鑾刀者取其鑾鈴之聲宮商調和而後斷割也春秋公羊傳宣十二年鄭伯右執鑾刀注云鑾刀宗廟割切之刀鐶有和鋒有鑾鑾在鋒聲中宮商三和在鐶聲中角徵羽 [8]
한국전통지식포탈[5]

규장각한국학연구원[6]
사직서의궤[9] 난도 documents <사직서의궤 권1, 제기도설(祭器圖說)> 『교특생(郊特牲)』에 이르기를, “할도(割刀)를 쓰되 귀한 난도(鑾刀)를 쓰는 것은 그 뜻을 귀히 여기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공양전(公羊傳)』의 주(註)의 “난도는 베고 자르는 칼이다. 고리[鐶]에는 화(和)라는 방울이 있고 칼끝[鋒]에는 난(鑾)이라는 방울이 있다. 송(宋)나라 호원(胡瑗) 난령(鑾鈴)은 칼 끝에 있어서 소리가 궁성(宮聲)과 상성(商聲)에 합하니, 방울 2개를 쓰고, 화령(和鈴)은 고리에 있어서 소리가 치성(徵聲), 각성(角聲), 우성(羽聲)에 합하니, 방울 3개를 쓴다. 郊特牲云割刀之用鑾刀之貴貴其義也公羊傳註云鑾刀割切之刀鐶有和鋒有鑾宋胡瑗言鑾鈴在鋒聲合宮商用鈴二和鈴在鐶聲合微角羽用鈴三 [10] 1783년(정조 7) 1월 8일에 사직서(社稷署)의 제례의식[祭儀]제식(祭式)·단(壇)·유(壝)·관사(館舍) 등을 참고하고자 작성된 5권 3책의 의궤가 편찬되어, 1804년(순조 4) 1차 증보되고, 1842년(현종 8) 2차 증보됨./ 조선후기 정조나 순조 때 사직에서 왕실에서 제사 지낼 때 사용하는 제기이다. 난도(鑾刀)는 희생을 베는데 사용하는 칼이다.</html>
제기도감의궤[11] 난도 documents <제기도감의궤 권1, 도감(都監)> 주조하며 2개이다. 칼의 길이는 1尺 3寸 8分, 너비는 2寸 6分이다. 자루의 머리까지 합한 자루의 길이는 6寸 6分이다. 백금(白金)으로 장식하고 5개의 방울[鈴]이 있으며, 날[刃] 위에다 은(銀)으로 전자(篆字)를 새긴다. 영녕전(永寧殿) 1개, 종묘(宗廟) 1개이다. 鐵二刃長一尺三寸八分廣二寸六分柄長通柄頭鐵六寸六分餙以白金有五鈴刃上以銀篆刻永寧殿一宗廟一 [12]
한국전통지식포탈[7]</html>
『제기도감의궤』는 1611년(광해군 3) 8월 24일 건원릉(健元陵)과 현릉(顯陵)에 친제(親祭)를 거행하기 위해 제기가 부족하자, 그해 9월 9일부터 이듬해 11월까지 이듬해까지 제기도감을 설치하여 각종 제기를 만든 전말을 기록하고 있음./ 난도(鸞刀)는 영녕전(永寧殿)에 1개, 종묘(宗廟)에 1개를 만들어 사용한다.
경모궁의궤 난도 documents <경모궁의궤 권1, 제기도설(祭器圖說)> 『교특생(郊特牲)』에 이르기를, “할도(割刀)를 쓰되 귀한 난도(鑾刀)를 쓰는 것은 그 뜻을 귀히 여기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공양전(公羊傳)』의 주(註)의 “난도는 베고 자르는 칼이다. 고리[鐶]에는 화(和)라는 방울이 있고 칼끝[鋒]에는 난(鑾)이라는 방울이 있다. 송(宋)나라 호원(胡瑗) 난령(鑾鈴)은 칼 끝에 있어서 소리가 궁성(宮聲)과 상성(商聲)에 합하니, 방울 2개를 쓰고, 화령(和鈴)은 고리에 있어서 소리가 치성(徵聲), 각성(角聲), 우성(羽聲)에 합하니, 방울 3개를 쓴다. 이는 대개 방울 소리를 취하여 소리가 조화(調和)를 이룬 뒤에 희생(犧牲)을 베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郊特牲云割刀之用鑾刀之貴貴其義也公羊傳註云鑾刀割切之刀鐶有和鋒有鑾宋胡瑗言鑾鈴在鋒聲合宮商用鈴二和鈴在鐶聲合徵角羽用鈴三蓋取聲和而后斷也 [13]
한국전통지식포탈[8]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14] 난도 docu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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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설 세종실록오례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난도 http://sillok.history.go.kr/id/kda_20002008_032#
도설 국조오례의 鸞刀 http://kyudb.snu.ac.kr/book/text.do?book_cd=GK00185_00&vol_no=0001
참고 조선시대 왕실문화 도해사전 난도鸞刀 http://kyujanggak.snu.ac.kr/dohae/sub/schDetail.jsp?no=D1651&category=A&sWord=확
참고 한국전통지식포탈 난도 국조오례의 난도 http://www.cbd-chm.go.kr/home/rsc/rsc01003p_6.do?dt_gbn=TC&data_gbn_cd=BIO&cls_no=120000023992&cls_id=13392&pageIndex=132
참고 조선왕조실록사전 난도 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3451
참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제기 부 항목없음.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제기&ridx=0&tot=296
참고 위키 실록사전 난도(鸞刀)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난도(鸞刀)
참고 AKS Encyves 난도 http://dh.aks.ac.kr/Encyves/wiki/index.php/난도
도해 세종실록오례 난도 http://sillok.history.go.kr/images/slkimg/ida_040009b0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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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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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난도, 『조선왕조실록』online, 국사편찬위원회.
    『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난도", 『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특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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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조오례의서례』 1권, 길례 제기도설, 난도, 『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특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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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춘관통고』 86권, 흉례(凶禮), 춘관통고/난도, 『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특허청.
  7. 『대한예전』 3권, 길례 제기도설, 난도, 『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특허청.
  8. 『종묘의궤』 1권, 종묘제기도설, 난도, 『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특허청.
  9. "사직서의궤", 『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특허청.
  10. 『사직서의궤』 1권, 제기도설, 난도, 『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특허청.
  11. "제기도감의궤", 『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특허청.
  12. 『제기도감의궤』 1권, 도감(都監), 난도, 『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특허청.
  13. 『경모궁의궤』 1권, 제기도설, 난도, 『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특허청.
  14.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 『한국 기록유산 Encyves』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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