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사진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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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건물: 흠경각/평수: 141.6평
 
인쇄사진관은 경회루와 교태전 사이에 있는 45평 규모의 흠경각이었으며 설명 문안 및 인쇄물과 함께 109점의 사진이 전시되었다. 조선인 1명과 일본인 49명 등 총 50명이 출품하였으며, 사진들은 4절 내지 전지 크기로 풍경과 인물사진 등이 대다수였다. 출품된 사진들은 견직물, 모직물, 마직물, 일본종이, 서양종이, 가죽 등이 포함된 제 6부 공업부문의 제 30류(인쇄사진 및 문구)로 분류되어 문구류 및 인쇄물과 함께 전시되었다. 특이한 것은 출품된 사진들 중 조선총독부인쇄소 및 일한인쇄주식회사의 인쇄물 등과 나란히 칸막이로 사용한 등신대 크기의 기생사진이 전시되었다는 점이다.
 
인쇄사진관은 경회루와 교태전 사이에 있는 45평 규모의 흠경각이었으며 설명 문안 및 인쇄물과 함께 109점의 사진이 전시되었다. 조선인 1명과 일본인 49명 등 총 50명이 출품하였으며, 사진들은 4절 내지 전지 크기로 풍경과 인물사진 등이 대다수였다. 출품된 사진들은 견직물, 모직물, 마직물, 일본종이, 서양종이, 가죽 등이 포함된 제 6부 공업부문의 제 30류(인쇄사진 및 문구)로 분류되어 문구류 및 인쇄물과 함께 전시되었다. 특이한 것은 출품된 사진들 중 조선총독부인쇄소 및 일한인쇄주식회사의 인쇄물 등과 나란히 칸막이로 사용한 등신대 크기의 기생사진이 전시되었다는 점이다.
  
 
*매일신보 1915년 10월 29일
 
*매일신보 1915년 10월 29일
 
출품된 사진들이 회화나 서예, 도자기와 불상 등과 같은 미술품이 아닌 공산품이었기 때문에, 미술관이 아닌 인쇄사진관에 전시되었으며, 심사기준도 미학적 관점이 아닌 기술 수준에 따랐다고 한다. 즉 공산품의 하나로서 출품된 등신대 크기의 기생사진은 처음부터 선진 인쇄기술과 확대기술을 자랑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출품된 사진들이 회화나 서예, 도자기와 불상 등과 같은 미술품이 아닌 공산품이었기 때문에, 미술관이 아닌 인쇄사진관에 전시되었으며, 심사기준도 미학적 관점이 아닌 기술 수준에 따랐다고 한다. 즉 공산품의 하나로서 출품된 등신대 크기의 기생사진은 처음부터 선진 인쇄기술과 확대기술을 자랑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2020년 10월 25일 (일) 16:44 판

  • 경복궁 건물: 흠경각/평수: 141.6평

인쇄사진관은 경회루와 교태전 사이에 있는 45평 규모의 흠경각이었으며 설명 문안 및 인쇄물과 함께 109점의 사진이 전시되었다. 조선인 1명과 일본인 49명 등 총 50명이 출품하였으며, 사진들은 4절 내지 전지 크기로 풍경과 인물사진 등이 대다수였다. 출품된 사진들은 견직물, 모직물, 마직물, 일본종이, 서양종이, 가죽 등이 포함된 제 6부 공업부문의 제 30류(인쇄사진 및 문구)로 분류되어 문구류 및 인쇄물과 함께 전시되었다. 특이한 것은 출품된 사진들 중 조선총독부인쇄소 및 일한인쇄주식회사의 인쇄물 등과 나란히 칸막이로 사용한 등신대 크기의 기생사진이 전시되었다는 점이다.

  • 매일신보 1915년 10월 29일

출품된 사진들이 회화나 서예, 도자기와 불상 등과 같은 미술품이 아닌 공산품이었기 때문에, 미술관이 아닌 인쇄사진관에 전시되었으며, 심사기준도 미학적 관점이 아닌 기술 수준에 따랐다고 한다. 즉 공산품의 하나로서 출품된 등신대 크기의 기생사진은 처음부터 선진 인쇄기술과 확대기술을 자랑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