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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__NOTOC__ ==Definition== 집경당과 내부에서 서로 왕래할 수 있도록 복도 삼간으로 이어져 있는 함화당의 기둥에는 18개의 주련이 붙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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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
 
==Definition==
  
[[집경당]]과 내부에서 서로 왕래할 수 있도록 복도 삼간으로 이어져 있는 [[함화당]]의 기둥에는 18개의 주련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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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녕합과 옥호루, 정시합의 기둥에 붙어 있다.
<ref> 문화재청, 『궁궐의 현판과 주련1』, 문화재청, 2007, 182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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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 문화재청, 『궁궐의 현판과 주련1』, 문화재청, 2007, 230쪽.</ref>
<ref>[http://www.cha.go.kr/newsBbz/selectNewsBbzView.do?newsItemId=155487774&sectionId=ocp&pageIndex=1&strWhere=title&strValue=%ed%9d%a5%eb%b3%b5%ec%a0%84&mn=NS_01_02 문화재청, 궁궐의 현판과 주련-경복궁_흥복전 권역]</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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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http://www.cha.go.kr/newsBbz/selectNewsBbzView.do?newsItemId=155544811&sectionId=ocp&pageIndex=1&strWhere=title&strValue=%ea%b1%b4%ec%b2%ad%ea%b6%81&mn=NS_01_02 문화재청, 궁궐의 현판과 주련-경복궁_건청궁 권역]</ref>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big>(1) 可釣可?盤谷序(가조가경반곡서) 낚시질할 만하고 밭갈이할 만하니 반곡서(盤谷序)이고,</b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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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陌上堯樽傾北斗(맥상요준경북두) 밭두둑의 요 임금 술잔은 북두(北斗)를 기울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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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樓前舜樂動南薰(누전순악동남훈) 누각 앞의 순 임금 음악은 남쪽 훈풍 불어 오게 하네.
  
은거하며 유유자적하는 은자의 자족적인 생활을 그린 구절이다. 탈세속의 공간에서 자족하는 모습을 노래하였다. ‘반곡서’는 당나라 한유의 「송이원귀반곡서(送李愿歸盤谷序; 이원이 반곡으로 돌아감을 전송하는 글)」을 가리킨다. 벗인 이원(李愿)이 반곡에 은거해 살면서 세상의 명리에 초월하여 홀로 유유자적하겠다고 말하자 한유가 이에 찬동하여 쓴 글이다. 이 구절은 이 곳이 한유가 이원을 전송하며 쓴 글에 나오는 그 반곡과 같다는 말이다. 원나라의 양공원(楊公遠)이 지은 「초하여중(初夏旅中)」 오수(五首) 중 제 5수에 나오는 구절을 따온 것인데, 짝이 되는 뒷 구절은 현재 분실되었다. 창덕궁 낙선재(樂善齋)에 같은 문구의 주련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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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은 태평한 세상에서 백성들이 논밭에서 일하다가 근심걱정 없이 술잔을 기울이니 하늘의 북두칠성도 거기에 응하여 술잔을 기울이는 듯 보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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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준(堯樽)’은 ‘요 임금의 술잔’이라는 뜻이지만 태평한 세상에서 근심걱정없이 마시는 술잔을 의미한다. 『공총자(孔叢子)』라는 책에 ‘요주천종(堯酒千鍾)’이라고 하여 요 임금이 천 잔의 술을 마셨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로 인하여 사람들은 요 임금이 술을 즐겼다고 인식하였으며, 아울러 그 당시의 백성들도 태평을 구가하면서 술을 즐겼다고 보았다. 북두는 북두칠성의 머리 부분이 형성하는 국자 모양을 가리키며, 여기서는 술잔이란 뜻으로 쓰였다.
분실된 뒷 구절은 다음과 같다.
 
堪詩堪?輞川圖(감시감화망천도) 시 지을 만하고 그림 그릴 만하니 망천도(輞川圖)라네.
 
 
 
 
 
 
 
 
 
<big>(2) 雲裏帝城雙鳳闕(운리제성쌍봉궐) 구름 속 도성에는 한 쌍의 봉궐(鳳闕)이요,</big>
 
 
도성 안의 구름 속에 우뚝 솟아 있는 궁궐의 모습을 묘사하였다.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 701~761 또는 699~759년) 5)의 「봉화성제 종봉래향흥경각도중 유춘우중 춘망지작 응제(奉和聖製 從蓬萊向興慶閣道中 留春雨中 春望之作 應制;임금께서 지으신 「봉래궁에서 흥경궁을 가는 행각에서 봄비에 취해」 작품에 화답하여 짓다)」에서 따온 구절인데 짝이 되는 뒤의 구절은 현재 분실되었다. 분실된 뒤 구절은 다음과 같다. 창덕궁의 연경당(演慶堂)과 한정당(閒靜堂)에도 같은 문구의 주련이 짝이 갖추어져 걸려 있다.
 
 
 
雨中春樹萬人家(우중춘수만인가) 빗속의 봄 숲에는 수많은 인가로다.
 
 
 
 
 
 
 
 
 
<big>(3) 能招過客飮文字(능초과객음문자) 과객을 불러 시문을 음미할 만하고,</big>
 
 
혼자 조용히 은거하면서 손님이 찾아오면 문장을 논하기도 하면서 산수의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하고 사는 즐거움을 노래하였다.
 
송나라 때의 정치가이자 문장가인 왕안석(王安石, 1021~1086년)이 지은 장편고시 「화왕미지등고재(和王微之登高齋)」 가운데 제 1수의 한 구절인데 짝이 되는 뒤 구절은 현재 분실되었다. 분실된 뒤 구절은 다음과 같다.
 
 
 
山水又足供歡?(산수우족공환해) 산수는 또 기쁜 웃음을 제공하기에 충분하네.
 
 
 
 
 
<big>(4) 閒眠東閣修花史(한면동각수화사) 한가로이 동각에서 잠자며 『화사(花史)』를 수정하고,
 
(5) 偶坐南池注水經(우좌남지주수경) 우연히 남지에 앉아 『수경(水經)』에 주석을 하네. </big>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은자를 그렸다. 동쪽 누각에서 한가로이 화사, 곧 화초에 대한 책을 다듬어 보고, 남쪽 연못에서 『수경』에 주석을 다는 은자의 모습을 표현했다. 창덕궁 낙선재에도 같은 구절의 주련이 걸려 있다.
 
 
 
 
 
 
 
동각(東閣)은 양(梁) 나라 때 사람인 하손(何遜, ?~518년)이 자신의 동각을 개방하고 문인(文人)을 초빙하여 매화를 감상했던 고사에서 따온 말로 여러 시에서관용적으로 쓰이곤 했다. 이를테면 두보(杜甫, 712~770년)의 시에 “동각 관아의매화가 시흥을 일으키니, 하손이 양주에 있을 때와 흡사하네.”라는 구절이 있다.
 
『추구(推句)』에도 “서쪽 정자에는 강 위에 달 뜨고, 동각의 눈 속에 매화가 피었네(西亭江上月, 東閣雪中梅)”라는, 작자 미상의 구절이 실려 있다.
 
‘남지(南池)’는 중국의 호남성(湖南省) 영릉현(零陵縣)에 있는 지명으로 당나라의 시인 유종원(柳宗元, 773~819년)이 여기서 잔치를 한 적이 있다. 이와 관련해 유종원이 지은 「배최사군유연남지서(陪崔使君遊宴南池序)」라는 글이 있다.
 
 
 
제작 정보 : 왼쪽에 필사자를 나타내는 ‘鐵保(철보)’라는 글이 적혀 있고, 아래에는 ‘又字鐵卿(우자철향)’이라는 낙관이 새겨져 있다.  
 
철보(1752~1824년)는 호가 매암(梅庵), 자가 야정(冶亭)으로 만주 출신의 청나라 서예가이며 당대의 명가인 유용(劉墉, 1719~1804?년), 옹방강(翁方綱, 1733~1818년)  등과 명성이 나란하였다. 조선의 북학파 학자인 박제가(朴齊家, 1750~1805년)와 교유하여 자주 서신을 왕래하였으며, 박제가는 연작 「회인시(懷人詩)」에서 세 차례나 그에 대해 읊었다.
 
 
 
 
 
 
 
 
 
<big>(6) 平生所學爲何事(평생소학위하사) 평생에 배운 바는 무슨 일을 위함인가?
 
(7) 後世有人知此心(후세유인지차심) 후세에 뉘 있어서 이 마음을 알아 주리. </big>
 
 
 
평생 동안 공부한 경륜이 지금 쓰이지 못한 한탄과 함께 후세에는 알아 줄 사람이 있으리라는 위안을 가져 보는 내용이다.
 
남송의 시인 육유(陸游, 1125~1210년)의 시 「서창독작(西?獨酌)」의 한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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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는 누각 앞에서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순 임금의 음악을 연주하니 거기에 맞추어 남쪽에서 따뜻한 훈풍이 불어온다고 하여, 지금의 정치도 순 임금 시대처럼 잘이루어지는 태평시대라는 것을 표현하였다. ‘남훈(南薰)’은 원래는 남쪽의 훈풍을 뜻하지만, 순 임금이 지었다는 남풍시(南風詩)의 악곡(樂曲)인 「남훈가(南薰歌)」를 가리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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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순 임금이 오현금(五絃琴)을 만들어 타면서 남풍시를 지어 노래했는데, 그 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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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풍의 훈훈함이여, 우리 백성의 원망을 풀어 줄 만하도다. 남풍이 제때에 불어옴이여, 우리 백성의 재물을 풍부하게 하리로다.”라고 하였다. 순 임금의 「남훈가」는 ‘요 임금의 술잔’과 더불어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말로 흔히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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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은 당나라 시인인 왕유의 칠언 율시 「대동전주산옥지 용지상유경운 신광조전 백관공도 성은편사연악 감서즉사(大同殿柱産玉芝, 龍池上有慶雲, 神光照殿, 百官共覩, 聖恩便賜宴樂, 敢書即事)」 중 제 6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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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天門日射黃金榜(천문일사황금방) 황궁(皇宮) 문엔 햇빛이 황금 편액을 비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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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春殿晴?赤羽旗(춘전청훈적우기) 봄 전각엔 저녁 해가 적우기(赤羽旗)를 비추네.
 
 
  <big>(8) 妙書鴻戱秋江水(묘서홍희추강수) 절묘한 글씨는 가을 강물에서 기러기가 희롱하는 듯하고,
 
  (9) 好句風行曉苑花(호구풍행효원화) 아름다운 시 구절은 새벽 화원에 바람이 지나가는 듯하네. </big>
 
 
   
 
   
  
절묘한 글씨의 품격을 가을 강물에서 기러기가 유유히 헤엄치며 노니는 것에 비유하고, 아름다운 시 구절을 새벽 화원의 꽃을 스치며 부는 바람에 비유하였다. 원() 나라 시인 유선(劉詵)의 시 「화장한영견수(和張漢英見壽)」 중에 나오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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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구가 실린 시는 두보가 문하성(門下省)에서 퇴근하여 선정전(宣政殿) 을 나서면서 지은 작품이며, 이 구절은 저녁 빛을 받고 빛나는 궁전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원래 시의 제목은 「선정전퇴조 만출좌액(宣政殿退朝 晩出左掖)」이며 이 두 구는 수련(首聯), 즉 1, 2구에 해당한다. 1구에서 ‘榜()’은‘ ()’과 통용되며 여기서는 편액을 뜻한다. 2구에서 적우기는 붉은 깃발, 또는 붉은 새의 깃털로 만든 깃발을 말한다.
 
 
 
 
 
 
<big>(10) 瓦當文延年益壽(와당문연년익수) 와당에는 ‘연년익수(延年益壽)'라고 씌어 있고,
 
(11) 銅盤銘富貴吉祥(동반명부귀길상) 동반에는 ‘부귀길상(富貴吉祥)'이라고 새겨졌네. </big>
 
 
 
 
 
기와에는 장수하라는 뜻의 글을 써 놓았고, 구리 쟁반에는 부귀와 복을 누리라는 글을 새겨 놓았다는 뜻이다. 창덕궁 낙선재와 한정당에도 같은 주련이 있다.
 
 
 
제작 정보 : 왼쪽에 필사자를 나타내는 ‘趙光(조광)’이라는 글이 적혀 있고 그 아래에 ‘蓉舫(용방)’이라는 낙관이 새겨져 있다.  
 
용방은 청나라 문인 조광(1797~1865년)의 자이다.
 
 
 
 
 
 
 
<big>(12) 誰憐?筆才名重(수련화필재명중) 그림과 글씨로 재주와 명성 높음을 누가 어여삐 여기리요. </big>
 
 
 
그림과 글씨에 뛰어난 재주를 가졌으나 알아 줄 사람이 없음을 한탄하는 내용이다. 출전 미상이며 대구(對句)가 되는 글이 없어 한 짝은 분실된 것으로 보인다.  
 
  
 
   
 
   
  
  <big>(13) 巖前倚杖看雲起(암전의장간운기) 바위 앞에 지팡이 짚고 구름 이는 모습 바라보며,</b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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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雙闕瑞煙籠??(쌍궐서연농함담) 대궐의 상서로운 연기는 연꽃을 감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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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九城初日照蓬萊(구성초일조봉래) 도성(都城)의 아침 해는 봉래궁(蓬萊宮)을 비추도다.
  
산속에 은거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사는 모습을 표현한 구절이다. 원나라 시인 조문회(曹文晦)의 시 「성수산휴서(聖壽山休暑)」의 한 구절이다. 짝이 되는 뒤 구절은 현재 분실되었다. 분실된 뒤 구절은 다음과 같다.
+
아침에 대궐 안에 상서로운 연기가 가득 끼어 연못의 연꽃을 감싼 모습과 서울 장안에 아침 해가 떠올라 봉래궁을 비추는 풍경을 묘사하였다.
松下橫?待鶴歸(송하횡금대학귀) 솔 아래서 거문고 끼고 학이 돌아오길 기다리네.
+
‘쌍궐(雙闕)’은 옛날에 궁전이나 사당 등의 정문 양쪽에 높은 누관(樓觀)을 세운 것에서 유래하여 궁궐의 문, 또는 궁궐을 가리킨다. ‘구성(九城)’은 서울을 뜻하고 ‘봉래(蓬萊)’는 원래 신선이 산다는 전설 속의 산 이름이나 여기서는 궁전의 이름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봉래궁은 대명궁을 고쳐 부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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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문인 양거원(楊巨源, 755~?년) 의 「조조(早朝; 이른 아침)」중 함련 즉 제 3, 4구에서 따온 구절이다. 문헌에 따라 ‘서연(瑞煙)’은 ‘박연(薄煙)’으로 된 곳도 있다.
  
 
 
<big>(14) 轉覺林泉興味長(전각임천흥미장) 산림 속 흥미가 길어짐을 더욱 느끼리.</big>
 
  
아래에 소개한 분실된 앞 구절과 연관지어 해석해 보면, 스님이 선물해 준 부채를 들고 아름다운 숲 속으로 들어가면 산림 속의 흥취가 점점 길어짐을 더욱 깨닫게 된다는 말이다. 송() 나라 시인 채양(蔡襄, 1012~1067년)의 시 「장주백련승종요견유지선 매선각서일수(?州白蓮僧宗要見遺紙扇 每扇各書一首)」의 제 9수 중 한 구절이다. 짝이 되는 앞 구절은 분실되었다. 분실된 앞 구절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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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碧簫雙引鸞聲細(벽소쌍인란성세) 벽옥(碧玉) 퉁소 쌍으로 끄니 난새 소리 가느다랗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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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綵扇平分雉尾齊(채선평분치미제) 고운 부채 반으로 나뉘니 치미선(雉尾扇)이 가지런하네.
直應携去林泉好(직응휴거임천호) (부채를) 받아들고 아름다운 산천으로 가게 되면,
 
  
 
   
 
   
+
(7)은 두 사람이 푸른 옥[碧玉]으로 만든 퉁소를 불어대니 그 소리가 고운난새 소리처럼 가느다랗게 흘러 퍼진다는 뜻이다. 상상 속의 동물인 난새는 봉황의 일종으로 원앙처럼 암수가 짝을 지어 다닌다고 여겨진다. 이른 아침 조회에서 궁중 악사 두 사람이 암수의 난새 울음처럼 고운 화음으로 퉁소를 부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big>(15) 渭北先殷尊酒懷(위북선은준주회) 위수 북쪽의 옛 은나라, 술잔을 그리워하네.</big>
+
(8)은 치미선을 든 의장대가 양쪽으로 나뉘어 서 있으니 부채들이 늘어선 모양이 가지런하게 정돈돼 보인다는 뜻이다. 궁중의 엄숙하고 정연한 모습을 표현하였다. 치미선은 임금이 쓰던 의장용(儀仗用) 부채의 일종으로 꿩의 깃으로 만들었다.  
 
+
문징명(文徵明, 1470~1559년)의 「봉천전조조(奉天殿早朝; 봉천전의 이른 아침)」이수(二首) 중 둘째 수의 함련 3, 4구이다.
자세한 의미와 출전 등을 알 수 없다. 대구가 되는 글이 없어 한 짝이 분실된 것으로 보인다. ‘선은(先殷)’의 뜻은 미상이며 ‘尊()’은 ‘樽(준)’과 통용된 글자이다. 두보의 시 「춘일억이백(春日憶李白; 봄날에 이백을 생각하며)」시의 “이곳 위수 북쪽에는 봄 나무에 싹이 트나 / 그 곳 강남에는 해가 구름에 지겠지 / 어느 때나 함께 술잔을 나누며 다시 한 번 글을 논하리오(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 何時一尊酒, 重與細論文).”라는 구절을 응용한 표현인 듯하다.
 
 
 
 
<big>(16) 養竹不除當路筍(양죽불제당로순) 대 기르기 좋아하여 길에 자란 죽순도 베지 않고,
 
(17) 愛松留得?門枝(애송유득애문지) 솔을 사랑해 문 가린 가지도 남겨 두었네. </big>
 
 
 
자연을 사랑하여 인위적인 손상을 가하지 않는 천연스런 삶을 읊은 구절이다.
 
 
 
당나라 스님 관휴(貫休, 832~912년)의 시 「산거시(山居詩二十四首)」 이십사수 중 제 8수의 함련(?聯)에서 따온 구절이다. ‘문(門)’은 대부분의 문헌에 ‘인(人)’으로 되어 있다. 창덕궁 선향재(善香齋)에도 같은 주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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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정보 : 곤녕합의 주련은 1895년 경에 찍은 사진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것을 판독하여 건청궁의 복원에 맞춰 다시 제작한 것이다. 판독은 이광호와 김영봉이 하였으며 글씨는 정도준이 쓰고 오옥진이 새겼다. 사진 상으로는 일부 주련의 위치가 바뀌었고 대련(對聯) 중 짝을 잃은 것도 있으나 문헌에서 찾아 채우고 위치를 바로 잡았다.
  
<big>(18) 樂意相關禽對語(낙의상관금대어) 즐거운 뜻 서로 관계하여 새들은 마주하여 지저귀고,</big>
 
  
즐거운 마음을 나누는 듯이 서로 마주 대해 지저귀는 새들의 모습을 노래하였다. 송나라 시인 석연년(石延年, 994~1041년)의 시 「금향장씨원정(金鄕張氏園亭)」에서 따온 구절이다. 짝이 되는 뒤 구절은 현재 분실되었다.  창덕궁 연경당에도 같은 내용의 주련이 짝이 갖추어져 걸려 있다. 분실된 뒤 구절은 다음과 같다.
 
  
生香不斷樹交花(생향불단수교화) 향기 풍겨 끊이지 않으니 나무에는 꽃이 흐드러지네.
 
  
 
==Semantic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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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 위키 실록사전 ||곤녕합(坤寧閤) ||  ||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곤녕합(坤寧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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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경복궁함화당(景福宮咸和堂) ||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76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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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경복궁곤녕합(景福宮坤寧閤) ||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76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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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 조선왕조실록  || 태조 4년 9월 29일 || || http://sillok.history.go.kr/id/kaa_10409029_006
 
| 참고 || 조선왕조실록  || 태조 4년 9월 29일 || || http://sillok.history.go.kr/id/kaa_10409029_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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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 조선왕조실록사전 || 함화당(咸和堂) || ||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04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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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 조선왕조실록사전 || 곤녕합(坤寧閤) || ||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04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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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5일 (토) 19:43 기준 최신판

Definition

곤녕합과 옥호루, 정시합의 기둥에 붙어 있다. [1] [2]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陌上堯樽傾北斗(맥상요준경북두) 밭두둑의 요 임금 술잔은 북두(北斗)를 기울게 하고, 
(2) 樓前舜樂動南薰(누전순악동남훈) 누각 앞의 순 임금 음악은 남쪽 훈풍 불어 오게 하네.

(1)은 태평한 세상에서 백성들이 논밭에서 일하다가 근심걱정 없이 술잔을 기울이니 하늘의 북두칠성도 거기에 응하여 술잔을 기울이는 듯 보인다는 뜻이다. ‘요준(堯樽)’은 ‘요 임금의 술잔’이라는 뜻이지만 태평한 세상에서 근심걱정없이 마시는 술잔을 의미한다. 『공총자(孔叢子)』라는 책에 ‘요주천종(堯酒千鍾)’이라고 하여 요 임금이 천 잔의 술을 마셨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로 인하여 사람들은 요 임금이 술을 즐겼다고 인식하였으며, 아울러 그 당시의 백성들도 태평을 구가하면서 술을 즐겼다고 보았다. 북두는 북두칠성의 머리 부분이 형성하는 국자 모양을 가리키며, 여기서는 술잔이란 뜻으로 쓰였다.

(2)는 누각 앞에서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순 임금의 음악을 연주하니 거기에 맞추어 남쪽에서 따뜻한 훈풍이 불어온다고 하여, 지금의 정치도 순 임금 시대처럼 잘이루어지는 태평시대라는 것을 표현하였다. ‘남훈(南薰)’은 원래는 남쪽의 훈풍을 뜻하지만, 순 임금이 지었다는 남풍시(南風詩)의 악곡(樂曲)인 「남훈가(南薰歌)」를 가리키기도 한다. 옛날에 순 임금이 오현금(五絃琴)을 만들어 타면서 남풍시를 지어 노래했는데, 그 시에 “남풍의 훈훈함이여, 우리 백성의 원망을 풀어 줄 만하도다. 남풍이 제때에 불어옴이여, 우리 백성의 재물을 풍부하게 하리로다.”라고 하였다. 순 임금의 「남훈가」는 ‘요 임금의 술잔’과 더불어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말로 흔히 사용한다. 이 구절은 당나라 시인인 왕유의 칠언 율시 「대동전주산옥지 용지상유경운 신광조전 백관공도 성은편사연악 감서즉사(大同殿柱産玉芝, 龍池上有慶雲, 神光照殿, 百官共覩, 聖恩便賜宴樂, 敢書即事)」 중 제 6구이다.


(3) 天門日射黃金榜(천문일사황금방) 황궁(皇宮) 문엔 햇빛이 황금 편액을 비추고,
(4) 春殿晴?赤羽旗(춘전청훈적우기) 봄 전각엔 저녁 해가 적우기(赤羽旗)를 비추네.

이 시구가 실린 시는 두보가 문하성(門下省)에서 퇴근하여 선정전(宣政殿) 을 나서면서 지은 작품이며, 이 구절은 저녁 빛을 받고 빛나는 궁전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원래 시의 제목은 「선정전퇴조 만출좌액(宣政殿退朝 晩出左掖)」이며 이 두 구는 수련(首聯), 즉 1, 2구에 해당한다. 1구에서 ‘榜(방)’은‘ (방)’과 통용되며 여기서는 편액을 뜻한다. 2구에서 적우기는 붉은 깃발, 또는 붉은 새의 깃털로 만든 깃발을 말한다.


(5) 雙闕瑞煙籠??(쌍궐서연농함담) 대궐의 상서로운 연기는 연꽃을 감싸고,
(6) 九城初日照蓬萊(구성초일조봉래) 도성(都城)의 아침 해는 봉래궁(蓬萊宮)을 비추도다.

아침에 대궐 안에 상서로운 연기가 가득 끼어 연못의 연꽃을 감싼 모습과 서울 장안에 아침 해가 떠올라 봉래궁을 비추는 풍경을 묘사하였다. ‘쌍궐(雙闕)’은 옛날에 궁전이나 사당 등의 정문 양쪽에 높은 누관(樓觀)을 세운 것에서 유래하여 궁궐의 문, 또는 궁궐을 가리킨다. ‘구성(九城)’은 서울을 뜻하고 ‘봉래(蓬萊)’는 원래 신선이 산다는 전설 속의 산 이름이나 여기서는 궁전의 이름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봉래궁은 대명궁을 고쳐 부른 이름이다. 당나라 문인 양거원(楊巨源, 755~?년) 의 「조조(早朝; 이른 아침)」중 함련 즉 제 3, 4구에서 따온 구절이다. 문헌에 따라 ‘서연(瑞煙)’은 ‘박연(薄煙)’으로 된 곳도 있다.


(7) 碧簫雙引鸞聲細(벽소쌍인란성세) 벽옥(碧玉) 퉁소 쌍으로 끄니 난새 소리 가느다랗고,
(8) 綵扇平分雉尾齊(채선평분치미제) 고운 부채 반으로 나뉘니 치미선(雉尾扇)이 가지런하네.


(7)은 두 사람이 푸른 옥[碧玉]으로 만든 퉁소를 불어대니 그 소리가 고운난새 소리처럼 가느다랗게 흘러 퍼진다는 뜻이다. 상상 속의 동물인 난새는 봉황의 일종으로 원앙처럼 암수가 짝을 지어 다닌다고 여겨진다. 이른 아침 조회에서 궁중 악사 두 사람이 암수의 난새 울음처럼 고운 화음으로 퉁소를 부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8)은 치미선을 든 의장대가 양쪽으로 나뉘어 서 있으니 부채들이 늘어선 모양이 가지런하게 정돈돼 보인다는 뜻이다. 궁중의 엄숙하고 정연한 모습을 표현하였다. 치미선은 임금이 쓰던 의장용(儀仗用) 부채의 일종으로 꿩의 깃으로 만들었다. 문징명(文徵明, 1470~1559년)의 「봉천전조조(奉天殿早朝; 봉천전의 이른 아침)」이수(二首) 중 둘째 수의 함련 제 3, 4구이다.


제작 정보 : 곤녕합의 주련은 1895년 경에 찍은 사진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것을 판독하여 건청궁의 복원에 맞춰 다시 제작한 것이다. 판독은 이광호와 김영봉이 하였으며 글씨는 정도준이 쓰고 오옥진이 새겼다. 사진 상으로는 일부 주련의 위치가 바뀌었고 대련(對聯) 중 짝을 잃은 것도 있으나 문헌에서 찾아 채우고 위치를 바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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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녕합 서울특별시_종로구 곤녕합 坤寧閤 37.5787304 126.974032 46.32 m (151.96 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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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ine Reference

type resource title desctription/caption URL
참고 위키 실록사전 곤녕합(坤寧閤)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곤녕합(坤寧閤)
참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복궁곤녕합(景福宮坤寧閤)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76898
참고 조선왕조실록 태조 4년 9월 29일 http://sillok.history.go.kr/id/kaa_10409029_006
참고 조선왕조실록사전 곤녕합(坤寧閤) 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04706
  • type: 해설, 참고, 3D_모델, VR_영상, 도해, 사진, 동영상, 소리, 텍스트

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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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1. 문화재청, 『궁궐의 현판과 주련1』, 문화재청, 2007, 230쪽.
  2. 문화재청, 궁궐의 현판과 주련-경복궁_건청궁 권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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