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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Definition== (신정후효정후고종명성후)상호도감의궤|(신정후효정후고종명성후)상호도감의궤((神貞王后孝定王后高宗明聖王后)上號都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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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후효정후고종명성후)상호도감의궤|(신정후효정후고종명성후)상호도감의궤((神貞王后孝定王后高宗明聖王后)上號都監儀軌)]]는 1888년(고종25) 고종 즉위 25주년을 맞아 나라를 안정시킨 업적을 기려 고종과 신정왕후, 효정왕후, 명성왕후에게 존호를 올린 사실을 기록하였다. 세자가 나라를 안정시킨 공로를 기려 존호를 올릴 것을 청하는 소를 올리고, 세자와 신하들의 다섯 번에 걸친 근정전에서의 정청(庭請)으로 마지못해 승낙한 고종은 대왕대비와 왕대비에게도 함께 올리도록 명했다. 고종의 존호는 정성광의명공대덕(正聖光義明功大德), 신정왕후는 창복(昌福), 효정왕후는 장소(莊昭), 명성왕후는 원성(元聖)으로 정하였다. 고종은 근정전에서 존호책보를 올리는 의식을 거행하고, 사신을 보내 두 대비에게 전하였다. 고종과 왕비는 각각 근정전과 흥복전에 책보를 받았다. 이 의궤는 1책으로 구성되었으며, 채색 반차도를 수록하고 있다.<ref>.</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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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진작의궤|(계유)진작의궤((癸酉)進爵儀軌)]]는 1872년(고종 9) 고종과 왕비, 대비에게 존호를 올리고 이를 경축하기 위해 베푼 진작에 관한 사실을 기록하였다. 신정왕후의 왕비 책봉 40주기인 4월에 존호책보를 올리고, 다음날에 강녕전에서 내진작과 야진작을 행하고 이튿날 회작연을 거행하였다. 이 의궤는 2책이며, 현재 상책은 없고 하책만 남아있다. 상책은 󰡔상호도감의궤󰡕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잔치용 음식과 그릇, 꽃, 의장, 내외빈, 공령(工伶), 악기, 상전(賞典), 재용(財用)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ref>.</ref>

2020년 10월 5일 (월) 14:03 판

Definition

(계유)진작의궤((癸酉)進爵儀軌)는 1872년(고종 9) 고종과 왕비, 대비에게 존호를 올리고 이를 경축하기 위해 베푼 진작에 관한 사실을 기록하였다. 신정왕후의 왕비 책봉 40주기인 4월에 존호책보를 올리고, 다음날에 강녕전에서 내진작과 야진작을 행하고 이튿날 회작연을 거행하였다. 이 의궤는 2책이며, 현재 상책은 없고 하책만 남아있다. 상책은 󰡔상호도감의궤󰡕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잔치용 음식과 그릇, 꽃, 의장, 내외빈, 공령(工伶), 악기, 상전(賞典), 재용(財用)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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