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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Definition== 김주국(金柱國, 1710-1771)은 학봉 김성일의 7세손으로 자는 원석(元石),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이상정의 대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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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국|김주국(金柱國, 1710-1771)]]은 학봉 [[김성일]]의 7세손으로 자는 원석(元石),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이상정의 [[대산집|『대산집(大山集)』]]에 따르면 김주국은 어려서부터 호방하고 뜻이 컸으며, 박학하고 글을 잘 지었고, 세속의 흐름이 휩쓸리지 않는 성품을 지녔으며, 좋은 벗들과 사귀는 것을 좋아하였다고 한다.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ref>이원배, "[http://people.aks.ac.kr/front/tabCon/ppl/pplView.aks?pplId=PPL_6JOc_A1710_1_0026045 김주국]",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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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잠의궤|친잠의궤(親蠶儀軌)]]는 1767년(영조43) 정순왕후가 경복궁에서 친잠례를 거행한 사실을 기록하였다. 영조는 경희궁을 나와 경복궁의 근정전 터에 앉아 세손과 백관의 하례를 받고 왕비는 근정전 뜰에서 하례를 받았다. 왕비는 왕세손과 혜빈, 세손빈, 내·외명부를 거느리고 선잠에게 작헌례를 행하고, 이어서 채상례(採桑禮)를 행하고 잠실로 가서 뽕잎을 잘게 썰어 누에에게 먹여주는 의식을 행하였다. 다 끝나서는 근정전에서 영조에게 조현례를 행하였다. 이 의궤에는 제단과 음식배설도 등의 도설과 친잠 절차 등이 수록되어 있다. <ref>.</ref>

2020년 10월 5일 (월) 12:41 판

Definition

친잠의궤(親蠶儀軌)는 1767년(영조43) 정순왕후가 경복궁에서 친잠례를 거행한 사실을 기록하였다. 영조는 경희궁을 나와 경복궁의 근정전 터에 앉아 세손과 백관의 하례를 받고 왕비는 근정전 뜰에서 하례를 받았다. 왕비는 왕세손과 혜빈, 세손빈, 내·외명부를 거느리고 선잠에게 작헌례를 행하고, 이어서 채상례(採桑禮)를 행하고 잠실로 가서 뽕잎을 잘게 썰어 누에에게 먹여주는 의식을 행하였다. 다 끝나서는 근정전에서 영조에게 조현례를 행하였다. 이 의궤에는 제단과 음식배설도 등의 도설과 친잠 절차 등이 수록되어 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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