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정전 현판"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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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__NOTOC__ ==Definition== 임진왜란때 소실되었던 광화문경복궁 중건과 함께 1867(고종4)년 재건되었다.<br> 1927년 총독부 청사가 들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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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때 소실되었던 [[광화문]]은 [[경복궁]] 중건과 함께 1867(고종4)년 재건되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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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勤政)’은 ‘정치를 부지런히 함’을 의미한다. 정도전이 ‘치세가 이루어지려면 정사를 부지런히 해야 한다’는 뜻을 여러 경전의 표현을 빌려 작명하였다. 정도전이 임금에게 올린 ‘근정(勤政)’의 뜻은 다음과 같다.
1927년 총독부 청사가 들어설 때 [[건춘문]]의 북쪽으로 옮겨졌다가 한국전쟁시 폭격으로 소실되었던 광화문은 1968년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915710&cid=50320&categoryId=50320 石築] 일부를 수리하고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633274&cid=50360&categoryId=50360 문루]를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복원했었는데, 2006년 12월 광화문 제모습 찾기 사업에 따라 원래의 위치로 옮겨 복원하게 되었다.<br>
 
2006년까지 광화문에 걸려있던 현판의 글씨는 박정희(1917-1979) 전대통령이 썼으며 한글체이다. 한국전쟁시까지 걸려 있던 것은 1865년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59966&cid=40942&categoryId=31778 경복궁 중건] 당시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9723&cid=41826&categoryId=41826 훈련대장]으로서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7187 영건도감(營建都監)]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1396 제조(提調)]직을 맡아 공사를 총지휘했던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47713 임태영(任泰瑛)]의 글씨였다.<ref> 문화재청, 『궁궐의 현판과 주련1』, 문화재청, 2007, 26쪽. </ref>  2010년 8월 임태영의 글씨를 복원하여 한자체로 되었다.
 
<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5140600001&code=960100#csidxa9af2727ed04a71815fc440435ea985 이기환, 「광화문 현판, 훈민정음체가 어떤가…시민모임, "한자 '門化光'은 시대착오" 주장」, 경향신문, 2020.05.14 06:00]</ref>
 
  
'광화(光化)'는 천자나 군주에 의한 덕화(德化)를 의미한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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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전과 근정문(勤政門)에 대하여 말하자면,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다스려지고 부지런하지 못하면 폐하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작은 일도 그러한데 하물며 정사처럼 큰 일이야 어떻겠습니까? 『서경』에 말하기를, ‘경계하면 근심이 없고 법도를 잃지 않는다.’고 하였고, 또 ‘안일과 욕심으로 제후들을 가르치지 말고 삼가고 두려워하십시오. 하루이틀 사이에 일만 가지 기틀이 생긴깁니다. 여러 관원들의 직책을 폐하지 마십시오. 하늘의 일을 사람들이 대신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순 임금과 우 임금의 부지런한 바입니다.
중국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601456&cid=50356&categoryId=50356 동한(東漢) 영제(靈帝)]와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783501&cid=40942&categoryId=33394 당나라 제22대 황제인 소종(昭宗)]이 연호로 사용하기도 했다.  
 
  
태조 이성계가 정도전에게 법궁(임금이 거처하는 궁)이 될 [[경복궁]] 건설 책임을 맡겼을때, 정도전은 태양을 바라보고 있는 남문을 사방에서 어진 사람이 오가는 정문이라는 뜻의 사정문(四正門)으로 이름 붙였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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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말하기를, ‘아침부터 해가 중천에 뜰 때와 날이 기울어질 때까지 밥 먹을 겨를도 없이 만백성을 다 즐겁게 하셨다.’고 하였으니, 이는 문왕(文王)의 부지런한 바입니다. 임금의 부지런하지 않을 수 없음이 이러합니다. 그러나 편안하게 봉양 받기를 오래 하면 교만하고 안일한 마음이 쉽게 생기기 마련입니다. 또 아첨하고 아양 떠는 사람이 있어서 말하기를, ‘천하와 국가의 일로 임금의 정력을 소모하고 수명을 손상시킬 까닭이 없습니다.’ 하기도 하고, 또 말하기를,‘이미 높은 자리에 있어서 어찌 스스로를 낮추어 노고를 하십니까?’ 하기도 합니다. 이에 혹은 여악(女樂)으로, 혹은 사냥으로, 혹은 구경거리로, 혹은 토목(土木)일 같은 것으로써 무릇 황음무도(荒淫無道)한 일을 말하지 않음이 없으니,임금은 이것이 자신을 사랑함이 두텁다고 여겨, 자연히 태만해지고 거칠어지게 되는 것을 알지 못하게 되니, 한(漢)^당()의 임금들이 예전 하(夏)은(殷)주() 삼대(三代) 때만 못하다는 것이 이것입니다. 그렇다면 임금으로서 하루라도 부지런하지 않고 되겠습니까? 그러나, 임금의 부지런한 것만 알고 그 부지런할 바를 알지 못한다면, 그 부지런한 것이 너무 복잡하고 너무 세밀한 데에만 흘러서 볼 만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선유(先儒)들이 말하기를, ‘아침에는 정사를 듣고, 낮에는 어진 이를 찾아보고, 저녁에는 법령을 닦고, 밤에는 몸을 편안하게 한다.’는 것이 임금의 부지런한 것입니다. 또 말하기를, ‘어진 이를 구하는데에 부지런하고 어진 이를 쓰는 데에 빨리 한다.’ 했습니다. 신은 이로써 이름짓기를 청하옵니다.
경복궁 사정문(四正門)이 지금의 [[광화문]]으로 이름이 바뀐 것은 세종 때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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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래에는 약간의 이론이 있는데 첫 번째 설은 경복궁 수리가 이뤄진 이후 집현전에서 서경의 '광피사표 화급만방(光被四表 化及萬方·빛이 사방을 덮고 교화가 만방에 미친다)'에서 따와서 광화문(光化門)이라 이름을 지어 올렸다는 것이다. 온 나라에 가득한 임금의 공덕을 백성들에게 각인시키겠다는 뜻이다.<ref>[https://www.sedaily.com/NewsView/1VN0OT4HBP 홍병문, "만파식적/광화문 현판", 서울경제, 2019.08.18 18:13:10]</ref>
 
<ref>[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1055 윤태곤, "광화문, 38년 만에 콘크리트 옷 벗는다. 이제는 '광피사표 화급만방' 할 수 있을까?", 프레시안, 2006.12.04. 15:20:00]</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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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제로 《尚書•堯典》에 "光被四表,格于上下"는 있지만, "光被四表 化及萬方"으로 이어진 구절은 찾아 볼 수 없다.<ref>[https://ctext.org/shang-shu/zh?searchu=%E5%85%89%E8%A2%AB%E5%9B%9B%E8%A1%A8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ref>
 
<ref>[http://daily.hankooki.com/lpage/coverstory/201202/wk20120223104514121180.htm  박대종, "박대종의 어원 이야기/ 光化門(광화문)의 명칭", 데일리한국, 2012.02.23 10:45]</ref><br>
 
두 번째는 [https://zh.wikisource.org/wiki/%E9%AD%8F%E6%9B%B8/%E5%8D%B721%E4%B8%8A#%E5%92%B8%E9%99%BD%E7%8E%8B 『위서(魏書)』「함양왕희전(咸陽王禧傳)]」에, "[https://blog.naver.com/pure11004/120169640522 禧]가 대답하였다. '<font color=#6B9900>폐하의 성스러움은 요순보다 뛰어나 중원을 광화(光化)하셨습니다......</font>'"라 하였던 구절에서 왔다는 것이다.<ref> 문화재청, 『궁궐의 현판과 주련1』, 문화재청, 2007, 26쪽. </ref>
 
<ref>[http://www.cha.go.kr/newsBbz/selectNewsBbzView.do?newsItemId=155429614&sectionId=ocp 문화재청, 궁궐의 현판과 주련-경복궁_광화문,건춘문]</ref><br>
 
첫 번째 설은 출전의 오류로 두 번째 설을 따르지만 모두 군주에 의한 덕화(德化)를 의미하는 것은 같다. <br>
 
  
([https://namu.wiki/w/%ED%9A%A8%EB%AC%B8%EC%A0%9C 高祖]引見朝臣,詔之曰:「卿等欲令魏朝齊美於殷周,為令漢晉獨擅於上代?」禧曰:「陛下聖明御運,實願邁迹前王。」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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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祖曰:「若然,將以何事致之?為欲修身改俗,為欲仍染前事?」禧對曰:「宜應改舊,以成日新之美。」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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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 문화재청, 『궁궐의 현판과 주련1』, 문화재청, 2007, 54쪽. </ref>
高祖曰:「為欲止在一身,為欲傳之子孫?」禧對曰:「既卜世靈長,願欲傳之來葉。」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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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http://www.cha.go.kr/newsBbz/selectNewsBbzView.do?newsItemId=155429614&sectionId=ocp 문화재청, 궁궐의 현판과 주련-경복궁_근정전, 근정문, 월화문, 일화문]</ref><br>
高祖曰:「若然,必須改作,卿等當各從之,不得違也。」禧對曰:「上命下從,如風靡草。」 <br>
 
高祖曰:「自上古以來及諸經籍,焉有不先正名,而得行禮乎?今欲斷諸北語,一從正音。年三十以上,習性已久,容或不可卒革;三十以下,見在朝廷之人,語音不聽仍舊。若有故為,當降爵黜官。各宜深戒。如此漸習,風化可新。若仍舊俗,恐數世之後,伊洛之下復成被髮之人。王公卿士,咸以然不?」禧對曰:「實如聖旨,宜應改易。」 <br>
 
高祖曰:「朕嘗與李沖論此,沖言:『四方之語,竟知誰是?帝者言之,即為正矣,何必改舊從新。』沖之此言,應合死罪。」乃謂沖曰:「卿實負社稷,合令御史牽下。」 <br>
 
沖免冠陳謝。又引見王公卿士,責留京之官曰:「昨望見婦女之服,仍為夾領小袖。我徂東山,雖不三年,既離寒暑,卿等何為而違前詔?」<br>
 
禧對曰:「<font color=#6B9900>陛下聖過堯舜,光化中原</font>,臣雖仰禀明規,每事乖互,將何以宣布皇經,敷贊帝則。舛違之罪,實合刑憲。」 <br>
 
高祖曰:「若朕言非,卿等當須庭論,如何入則順旨,退有不從。昔舜語禹,汝無面從,退有後言,其卿等之謂乎?」 <ref>[https://zh.wikisource.org/wiki/%E9%AD%8F%E6%9B%B8/%E5%8D%B721%E4%B8%8A#%E5%92%B8%E9%99%BD%E7%8E%8B 魏書/卷21上, 维基文库]</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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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17일 (목) 04:46 판

Definition

‘근정(勤政)’은 ‘정치를 부지런히 함’을 의미한다. 정도전이 ‘치세가 이루어지려면 정사를 부지런히 해야 한다’는 뜻을 여러 경전의 표현을 빌려 작명하였다. 정도전이 임금에게 올린 ‘근정(勤政)’의 뜻은 다음과 같다.

“근정전과 근정문(勤政門)에 대하여 말하자면,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다스려지고 부지런하지 못하면 폐하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작은 일도 그러한데 하물며 정사처럼 큰 일이야 어떻겠습니까? 『서경』에 말하기를, ‘경계하면 근심이 없고 법도를 잃지 않는다.’고 하였고, 또 ‘안일과 욕심으로 제후들을 가르치지 말고 삼가고 두려워하십시오. 하루이틀 사이에 일만 가지 기틀이 생긴깁니다. 여러 관원들의 직책을 폐하지 마십시오. 하늘의 일을 사람들이 대신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순 임금과 우 임금의 부지런한 바입니다.

또 말하기를, ‘아침부터 해가 중천에 뜰 때와 날이 기울어질 때까지 밥 먹을 겨를도 없이 만백성을 다 즐겁게 하셨다.’고 하였으니, 이는 문왕(文王)의 부지런한 바입니다. 임금의 부지런하지 않을 수 없음이 이러합니다. 그러나 편안하게 봉양 받기를 오래 하면 교만하고 안일한 마음이 쉽게 생기기 마련입니다. 또 아첨하고 아양 떠는 사람이 있어서 말하기를, ‘천하와 국가의 일로 임금의 정력을 소모하고 수명을 손상시킬 까닭이 없습니다.’ 하기도 하고, 또 말하기를,‘이미 높은 자리에 있어서 어찌 스스로를 낮추어 노고를 하십니까?’ 하기도 합니다. 이에 혹은 여악(女樂)으로, 혹은 사냥으로, 혹은 구경거리로, 혹은 토목(土木)일 같은 것으로써 무릇 황음무도(荒淫無道)한 일을 말하지 않음이 없으니,임금은 이것이 자신을 사랑함이 두텁다고 여겨, 자연히 태만해지고 거칠어지게 되는 것을 알지 못하게 되니, 한(漢)^당(唐)의 임금들이 예전 하(夏)은(殷)주(周) 삼대(三代) 때만 못하다는 것이 이것입니다. 그렇다면 임금으로서 하루라도 부지런하지 않고 되겠습니까? 그러나, 임금의 부지런한 것만 알고 그 부지런할 바를 알지 못한다면, 그 부지런한 것이 너무 복잡하고 너무 세밀한 데에만 흘러서 볼 만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선유(先儒)들이 말하기를, ‘아침에는 정사를 듣고, 낮에는 어진 이를 찾아보고, 저녁에는 법령을 닦고, 밤에는 몸을 편안하게 한다.’는 것이 임금의 부지런한 것입니다. 또 말하기를, ‘어진 이를 구하는데에 부지런하고 어진 이를 쓰는 데에 빨리 한다.’ 했습니다. 신은 이로써 이름짓기를 청하옵니다.” .


[1] [2]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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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전_현판 Object 물품 현판 근정전 현판(勤政殿 懸板) 근정전 현판 勤政殿 懸板 http://dh.aks.ac.kr/hanyang/wiki/index.php/근정전 현판

Additional Attribu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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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xtu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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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전_현판 근정전 isPartOf

Spatial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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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전_현판 서울특별시 종로구 근정전 현판 勤政殿 懸板 37.5759369 126.9768157 38.49 m (126.28 ft)

Spati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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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l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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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ine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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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ype: 해설, 참고, 3D_모델, VR_영상, 도해, 사진, 동영상, 소리, 텍스트

Bibliography

author title publication edition URL

Notes

  1. 문화재청, 『궁궐의 현판과 주련1』, 문화재청, 2007, 54쪽.
  2. 문화재청, 궁궐의 현판과 주련-경복궁_근정전, 근정문, 월화문, 일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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