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ft 식민 지배의 극복과 남겨진 과제(위안부)

Korea100
Haewonk (토론) 사용자의 2017년 1월 19일 (목) 16:56 판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이동: 둘러보기, 검색

틀:논의 Top icon

문제의식

일본이 위안소를 설치하고 여성들을 강제동원 하여 일본군의 성노예로 삼음.

외국교과서에 일제의 한국에 대한 경제적 수탈, 민족에 대한 억압정책 등에 관해 서술되는 사례들이 있지만 위안부 서술은 많이 나타나지 않음.

오류사례

  • 호주 교과서: Ken Webb(2008). Analysing Australian History, CAMBRIDGE, p. 159, p. 161.
    • p. 159: Figure 7.10이 전쟁 포로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학대에 관해 나와 있고, 생체실험에 관한 내용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져 있다. 전쟁기간 만주에서 일본인은 731부대를 운영했다. 731부대에서 포로들은 생체실험의 대상이 되었다. 이 비운의 생체실험의 주 대상자는 한국인과 중국인의 포로들이었다. 일본의 전쟁포로 처우문제는 계속 자극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의 전시 잔학행위 인정 거부는 오늘날 종종 중국, 한국과의 껄끄러운 관계를 유발한다.
    • p. 161: 한국, 중국, 필리핀, 호주 등에서 동원된 약 2십만 명의 위안부 여성들의 원한과증오가 다시 재조명되어지고 있다고 한국 국회의원인 유기홍은 그가 일본 정부 관리자에게 전달한 성명서에서 말했다. 한국의 열린우리당 소속의 유기홍은 우리는 일본총리에게 세계의 목소리에 주의를 기울이고 진심으로 경청할 것을 강경히 요청한다고 그의 성명서를 통해 밝혔다. 역사가들은 주로 한국에서도 동원되었지만, 대만, 인도네시아, 필리핀, 중국에서도 동원된 2십만 명 가까이 되는 어린 위안부 여성들이 일본군의 매춘소에서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성 노동을 제공하도록 했다고 말한다.
  • 캐나다 교과서: Howard Spodek(2010). The world’s History, Pearson education, p. 702, p. 708.
    • p. 702: 수천 명의 한국, 중국, 필리핀 여성들을 일본군을 위한 “성노예”로 징집한 일본의 잔인한 소행은 전쟁이 끝나고 50년이 지난 후에서야 국제 사회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 p. 708: 자료 <전쟁의 전리품 여성: 일본 위안부>

역사가 기록된 처음부터 전쟁 이야기는 군인들이 여성을 학대하거나 승자가 승리에 대한 보상으로 여성을 취하는 사건들을 포함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 “위안부”는 이러한 사건들의 이례적 잔인함의 극단을 잘 보여주고 있다. 1932년에서 1945년까지 수천 명의 여성들(몇 천에서 이십만 명까지 예측이 다름)이 일본군에 의해 ”위안소“에서 일하는 “위안부”로 징집되어 성노예로 강제 동원되었다. 한마디로, 일본군이 관리하는 사창가에 갇힌 성노예가 된 것이다. 비록 이러한 상황은 군대 내에 널리 알려지고 1947년에 발표되어 후에 영화로 만들어진 일본 소설의 주제도 되었지만 대체적으로 은폐되었다. 1990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일본군에 의해 강제 징집되고 해당 사건 발생 40년 후 공개적으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한국 여성들의 사연을 수집하고 발표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한국인을 비하하였기 때문에 한국 여성에 대한 대우는 특히 더 심각했다. 이 후, 일본 정부는 위안부 여성들에게 사과를 하고 배상을 할 것을 요청받았다. 일본 은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거부하였지만 위안부 여성에 대한 일본 내 민간 기부를 장려하고 공식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일부를 지불하였다. 일본 정부는 빈번히 해당 여성들이 군인들에게 접대 서비스를 제공한 단순한 성매매자였다고 주장해왔다.

다음은 성노예와 인종차별의 잔인함에 대해 1992년 북한에서 인터뷰한 김영실씨의 증언이다.

내 방 옆에 한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나보다 어렸고 일본 이름은 토키코였다. 어느 날 한 장교가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을 엿들었고 한국어(금지됨)로 이야기했다고 그녀를 비난하였다. 그는 들판으로 그녀를 끌고 나갔고 우리 모두에게 바깥으로 나오라고 명령하였다. 우리는 그의 말을 따랐다. 그는 “이 소녀는 한국어를 사용했다. 그래서 반드시 죽어야 한다. 만약 너희들도 한국어를 사용한다면 죽임을 당할 것이다. 자, 이제 이 소녀가 어떻게 죽는지 보아라”라고 말했다. 그는 칼을 뽑았다. 두려움에 질린 나는 두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눈을 떴을 때 그녀의 잘린 머리가 땅에 있는 것을 보았다.

일요일은 특히나 더 바쁜 날이었다. 군인들은 방 앞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 그들은 다리에 차고 있는 각반을 풀어 말아 올려 손에 쥠으로써 자신의 차례를 준비했다. 그들은 수치심도 없이 발정난 동물처럼 자신들의 욕망을 드러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고 “마다카? 하야쿠! 하야쿠!(아직도 안 끝났어? 빨리! 빨리!)”라고 외쳤다. 그들 중 일부는 행위가 다 끝나기도 전에 내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그 어떠한 모욕감이나 존엄성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없었다. 내 자신이 살아있는 송장처럼 느껴졌다. 군인들이 내 방으로 들어와 한명씩 차례대로 할 때, 그것은 마치 죽은 몸에 하는 것과 같았다. 다시. 또 다시. 또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