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ft 유교

Korea100
김현규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7월 30일 (일) 16:0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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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교
집필자 신현덕
인물/기관/단체 성균관, 공자, 소수림왕
장소/공간 성균관, 향교, 서원
개념용어 석전, 오륜, 관례, 계례, 당파, 오복제도, 성년의 날



원고

성균관[1] 홈페이지에 따르면 “유교는 바로 인간의 관계 속에서 윤리 도덕을 기초로 한 철학이고 종교”이며 “근본 사상은 인(仁)”이다. 유교의 시조인 공자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며, “단계적으로 사랑을 베풀어 모든 인류에게까지 확산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또 유학의 근본 윤리는 오륜(五倫)인데 “부모와 자식 사이의 친함(父子有親)”, “임금과 신하 사이의 의리(君臣有義)”, “남편과 아내 사이의 분별(夫婦有別)”, “어른과 어린이 사이의 질서(長幼有序)”, “친구와 친구 사이의 믿음(朋友有信)”을 뜻한다. 즉 유교의 교리는 일상의 생활에서 드러나며,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주요덕목이다.

유교의 예경(禮經)으로 불리는 것 중 중요한 세 가지가 『주례』·『의례』·『예기』이다. 이들 모두가 한국인이 일상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예의를 다루고 있으며,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국에 유교가 전래된 정확한 연대는 기록이 없으나 고구려는 유교에 근거를 두고 사서를 편찬하고, 교육기관인 태학(372 소수림왕 2년)을 설치했으며, 경전을 실생활에 활용했다. 유교는 계속해 신라 고려 조선으로 이어졌으며, 조선에서는 특히 군왕 통치이념의 근간이었다.

지금까지도 한국인 사이에서 자주 이야기 되는 것이 인의예지이며, 많은 한국인은 과거 군왕의 덕치 개념을 현대의 위정자들도 발휘하기를 바란다. 유교는 그러나 종교로써 믿기보다는 인간이 지켜야할 근본소양, 통치의 근본, 학문의 기초 등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더 많았으며, 그 같은 상황은 지금도 같다. 이는 한국 정부의 통계로 잘 드러난다. 한국에서 유교를 종교로 믿는다고 답한 사람은 7만6천여 명으로 총인구의 0.2%를 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인의 실생활에서는 공자의 가르침에 따르는 경우가 어느 종교인 수보다도 많다.

그 예로 가정에서는 종교로서가 아니라 인간 생활의 근본도리로써 가례를 따라야 했다. 대표적인 것이 관혼상제(冠婚喪祭)이다. 성균관 전례위원회에 따르면 관혼상제는 사람이 태어나서 어른(인간)이 되고(관례), 결혼하고(혼례), 죽으며(상례), 그 후에 행하는 제사(제례) 등을 통틀어서 말한다. 종묘 제례 때 사용되는 제례악은 세계무형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이처럼 대부분의 한국인은 유교에 따르는 관혼상제가 종교 활동이라기보다는 생활이라고 생각한다. 즉 유교가 어느 종교보다도 더 실생활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나 종교로서 크게 발전하지 못한 이유다.

유교의 큰 행사로 문묘에서 공부자(孔子)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식을 석전이라 하는데 매년 2월과 8월 두 차례 거행된다. 석전대제는 중국이나 일본에도 남아 있지 않는, 우리나라에만 남아 있는, 예로부터 전해오는 악기와 제기를 사용한다. 석전대제 때는 문묘제례악을 연주하고 팔일무를 춘다.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었다. 성균관은 선비학당, 한림원, 석전교육원, 예절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지방에는 서원과 향교가 있다. 유교는 유능한 관리를 양성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교육되었다.

끝으로 유교는 중국에서 발생했으나 한반도에서 크게 발전했다. 백제의 왕인은 일본에 천자문 등을 전하며 유학도 함께 전했다. 신라 최치원은 중국에서 과거에 합격했고, 고려의 이재현 이색 정몽주 등도 걸출한 학자들이다. 조선에 들어와 억불숭유정책이 시행되었고, 중기에는 조선 성리학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당시 이기일원론을 확립한 이황의 학문은 일본의 주자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독일 등 유럽에서 퇴계학으로 연구되고 있다. 이이의 주기설은 송시열 등으로 이어졌다. 유학은 조선 개국에 이론적 배경이 되었으나 말기에는 지나친 이론에 치우쳐 당쟁으로 나라가 망하는 한 이유가 되기도 했다.


출처 및 관련자료

출처

성균관, 무형문화재 제85호, 통계청

관련자료

연구원 검토

검토의견
이 글에서 관혼상제 중 관례, 상례, 제례에 대해서는 언급되고 있으나, 혼례가 빠져있다. 밑 줄 친 부분 ‘지금도 …(중략)…의미이다’ 부분을 삭제하고 혼례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면 좋을 것 같다.
- 성균관이 어떤 기관인지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덧붙였으면 합니다.

- 성균관 OO에 따르면 ~~ : 해당 문구가 적혀있는 문헌을 정확하게 알려주었으면 합니다. 또한 출처 OO에 대한 설명도 해주었으면 합니다.
- 고조선 시대라고 하면 그 시기상 범주가 너무 넓지 않을까요? 유교가 고조선시대에 들어온 것으로 주장하는 학자의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였으면 합니다.
- 한국에서 유교를 믿는다고 답한 종교인 수는 7만6천명에 가까울 뿐이다. → 한국에서 종교로서 유교를 믿는다고 답한 사람은 7만 6천명으로 전 인구의 O%에 불과하다.
- 관혼상제가 무엇인지 간단하게 설명해주어야 이후 상제에 대한 설명을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상제를 특히 중시 여겼던 이유도 유교 교리 등과 연결하여 설명해주세요.
- 관혼상제에 대한 내용은 좀 줄여도 되겠습니다. 특히 상제의 내용 중 상복과 음식에 대해서는 요약 정리해도 될 듯합니다.
- 과거 여성의 계례는 혼인하는 날 시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염집 여성이 혼인하지 않고 머리를 올리는 경우는 없었다고 알고 있는데 확인해서 서술해주세요.
- 이날은 나이가 그 정도에 이르렀다는 것이 아니라 “어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일깨운다는 책성인지예(責成人之禮)”에 있었다. → ‘성년의 날(관례?)’의 의미는 나이가 그 정도에 이르렀다는 것이 아니라 “어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일깨운다는 책성인지례(責成人之禮)”에 있(었)다.
- 관례를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과 연결시킬 수 있을까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귀족성은 의무를 갖는다"를 의미로, 주로 사회지도층에 대한 사회에 대한 책임과 도덕성, 보통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 유교의 통치이념인 덕치, 인정, 군왕의 도리 등을 설명에 넣었으면 합니다.
- 유교의 가장 중요한 용어인 인의예지신에 대해서도 설명하였으면.
- 한국의 유교 사상(철학)의 발전 정도와 그 깊이, 특정 유학자에 대한 언급, 타국으로의 사상 전파 등을 설명하면 좋겠습니다.

- 다른 동아시아 국가와는 다른 한국 유교만의 특징이 없을까요? 이에 대해 서술했으면 합니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조선시대에 인재양성을 위하여 서울에 설치한 국립대학격의 유학교육기관이다